1.누구였더라? 쇼펜하우어인가가 이런 말을 했죠. '돈이란 것은 바닷물과도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라고요. 대충 맞는 말 같아요. 하지만 이 비유를 살짝 손보자면 이거겠죠. '쉽게 버는 돈이란 것은 바닷물과도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인 거예요.


 문제는 이거예요. 사람은 한번 쉽게 돈을 벌어보면 그 돈에 중독되는 게 아니라, 쉽게 돈을 버는 그 상황에 중독되어 버린다는 거죠. 그리고 한번 성공해본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포뮬러를 만들고, 그걸 재현해내보려고 하다가 망하곤 해요.



 2.어쨌든 그래요. 그야 쉽게 돈을 얻는 건 반대의 경우보다는 좋아요. 당연히 공돈은 좋은 거예요. 다만 그 경험이 그 사람을 중독자로 만들지만 않는다면요. 공돈이 생기면 공돈을 고맙게 여기고 즐겁게 쓸 수 있어야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데, 공돈이 생기는 순간의 짜릿함에 집착하게 되면...그건 좋지 않아요.



 3.그게 좋지 않다는 이유는 공돈을 계속 벌어보려다 가진 걸 잃기 때문에...가 아니예요. 공돈을 계속 버는 데 성공해도 망하는 거고 공돈을 계속 버는 데 실패해도 망하는 거거든요. 그야 당연히 공돈을 더 벌어보려다가 실패하는 건 빼도박도 못하게 망하는 거고, 공돈을 더 버는 데 성공해버리는 건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을 더 살 돈을 주는 거랑 똑같으니까요. 


 뇌의 구조가 '중독자의 뇌'로 전환되어버리는 것...그것 자체가 정말 안 좋은 일이란 말이죠. 공돈을 계속 버는 데 실패한 사람은 당연히 실패자가 되는 거고, 공돈을 계속 버는 데 성공해봤자 성공한 중독자가 되는 거죠. 


 문제는 그게 '오늘까지는 성공한'중독자라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아직까지는 운 좋게 망하지 않은'중독자일 수도 있다는 거죠. 만약 그 사람이 70살까지도 망하지 않고 공돈을 벌며 살더라도, 정신차려보면 매우 좆같겠죠. 왜냐면 그 사람에겐 추억은 하나도 없고 젊었을 때부터 70살까지 슬롯머신을 멍하니 바라본 기억밖에 없을 거거든요. 인생의 특별한 날에 대해 떠올려 보려고 해도 그런 게 없을거예요. 왜냐면 없으니까요. 공돈을 버는 데 성공하면 그 날을 기준으로 보면 기분좋은 거겠지만, 나중에 되짚어보면 중독자의 삶을 연장시키는 일이었던 거죠.



 4.휴.



 5.어쨌든 시간은 무서운 거예요. 2030년이면 이 글을 읽는 모두가 10년 더 나이들어 있을 거니까요. 2040년이면 이 글을 읽지 않는 모두가 20년 더 나이들어 있을 거고요. 빼도 박도 못하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중인 거죠. 



 6.이건 꼭 투자자에 대한 얘기는 아니예요. 요즘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나 유튜버들을 보니 느끼는 점이 있어서요. 잘 나가는 사람들 말고 잘 나갔었던 사람들 말이죠. 더이상 컨텐츠가 먹히지 않게 되었거나 인망을 잃었거나 해서 몰락해버린 유튜버들이요.


 그렇게 한때는 잘 나갔었지만 이제는 네티즌들의 관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든 복귀해 보려고, 어떻게든 전성기로 되돌아가 보려고 안쓰러운 행동을 하다가 조롱만 당하는 걸 보니...뭐 이해는 가요.  그들에게 '이봐 그런다고 다시 인기 유튜버가 될 거 같아? 그만둬.'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어요. 그들이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수익도 일반인 수준으로 돌아가니까요. 씀씀이는 이미 자신이 가장 잘 벌던 시기를 기준으로 맞춰져 버렸을 거고요. 하지만 어떻게든 시청자들을 돌아오게 하려해도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조롱이나 악플뿐이더군요.



 7.그야 계속 팔리는 컨텐츠를 공급하면서 대형 방송인이나 유튜버로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예요.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1~2년이라도 반짝 인기유튜버가 되어도 상당히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어요. 잠깐 동안 꿈을 꿨고 이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만 다잡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죠. 방송이나 유튜브로 땡긴 돈을 가지고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면, 원래의 인생을 많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으니까요.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서 제대로 된 물을 마시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죠.


 그러나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계속 꿈 속의 원더랜드에 머무르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스스로 힘든 거죠. 어쨌든 그런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유튜브 편집자에게 월급을 줘야 하고 시청자를 다시 돌아오게 만들 컨텐츠를 만드는 데 비용이 들어가니까요.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가면 절대로 만질 수 없을 압도적인 수익...인지도...그런 것들은 바닷물처럼 계속 마시고 싶어지는 걸 거니까요.



 8.한데 놀랍게도, 망할 뻔하다가 다시 성공한 사례도 있어요. 바로 강용석이죠. 강용석은 잘 나가던 유튜브에 노란 딱지가 붙어버린 걸 보고 난리가 났었을 거예요. 방송을 찍고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돈이 계속 들어갈 거니까요. 


 그런데 강용석은 다시 쉽게 많은 돈을 버는 데 성공해 버렸어요. 더욱 더 강한 말들과 악독한 말들을 늘어놓고 슈퍼챗을 받아내는 방법으로요. 강용석은 계속 바닷물을 마실 수 있게 됐는데 그게 결국 행복한 일일지는 모르겠어요. 


 그야 오늘은 기분좋겠죠. 어떤 수단을 썼든 많은 돈을 번다는 건 오늘 당장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할 것이 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나 순간의 기분이나 열광은 결국 지나가는 법이예요. 시간이 축적되면 인간은 자신이 축적한, 또는 축적된 시간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하죠.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요.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느끼며 죽음을 기다려야 해요.



 9.물론 강용석 말고도 자신의 품위와 바닷물을 바꿔먹는 인간들은 많아요. 하지만 굳이 그를 예로 든 이유는...강용석은 다른 선택권도 있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다른 유튜버들이나 방송인들은 품위를 더욱 더 버려가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려니 해요. 하지만 강용석은 그러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을만한 능력이 있거든요. 그가 물을 원하든, 아니면 바닷물을 원하든간에요.


 30대에 금뱃지를 달아봤던 사나이가 몰락과 부활을 반복하는 걸 지난 몇년간 계속 봐왔어요. 문제는 그가 부활-그걸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에 성공할 때마다 자신에게 남아있던 품위를 내던지고 있다는 거예요. 유비가 조조에게서 도망가며 아기를 내던졌듯이요.


 그리고 강용석의 다음 번 부활은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제는 강용석이 몰락-그의 기준에서-할 일도 없을 것 같거든요. 그가 스스로를 주기적으로 몰락시키는 방법은 그가 스스로의 품위를 손상시킴으로서 이루어져 왔는데 이제는 그에게 손상될 만한 품위가 거의 없는 것 같아서요. 지금까지...강용석이 주기적으로 몰락했었던 건 그가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손상될 품위가 조금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다 없어져버렸죠. 그가 부활의 댓가로 그것을 내던졌으니까요. 


 

 10.잘 모르겠네요. 나야 이렇게 말하지만 그의 의견은 다를지도 모르죠. 그는 자신에게 마지막 남은 '족쇄'를 벗어던진 거라고 여기고 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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