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20.10.08 21:09

발목에인어 조회 수:504

사실 제목을 '존중받지 않는 순간들을 산다는 것'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그럼 너무 튀는 거 같아서..

전 올 해로 한국나이 30살이에요. 곧 31죠. 사실 29살까지만 해도 서른 살이 되면 뭐가 엄청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저냥 나름 이것저것 노력하고 즐기면서 살았는데 그제 태어나서 두 번째로 아줌마 소리를 들었어요. 다니는 크로스핏장에서 수업 끝나고 관장인듯한 트레이너분1이 말랐을 때 사진을 보여달라기에 보여줬더니 놀라면서 트레이너분2에게 "진짜 말랐는데?!"라고 말하자 트레이너분2가 "아주머니 젊었을 때?"라고 하더라고요(3~4년 전 사진이긴 했지만).. 그래서 처음 '아줌마'소리를 들었을 때와는 달리 '아 나 결혼은 안했지만 이젠 아줌마구나'싶었어요.

사실 처음 아줌마 소리를 들은 건 올 해 여름 영등포 타임스퀘어 2층 에스컬레이터 앞에서였어요. 남친과 수다떨며 많은 인파 사이에서 방향을 꺾어 에스컬레이터로 가다 6살쯤으로 보이는 남자애와 부딪칠 뻔 해서 급히 걸음을 멈췄는데 그 옆에 있던 제 또래 여자가 되게 공격적이고 경멸조인 어조로 제게 "아줌마! 조심해야지!"하고 지나가더라고요. 그 순간이 10초쯤 지나고 남친이 제게 웃으면서 "아줌마래"라고 하길래 전 "뭐 20대 초중반 군인들도 초딩에겐 군인아저씨잖아~"라고 하고 말았죠. 사실 그 땐 남친과 즐거운 데이트중이라 별로 기분이 안나빴는데 집에 와서 문득 떠올라서 생각해보니 너무 어이없고 이상하고 기분 나쁜 거에요. 왜 '아줌마'라는 말을 멸칭으로 쓰는 거지? 왜 그 말이 공격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것도 같은 또래인 같은 여자가 여자에게?


제가 아줌마인 건 정말 상관 없어요. 언젠간 할머니도 되겠죠. 그리고 죽겠죠. 다 상관없고 그 때 마다의 즐거움과 노화로 인한 건강에 대한 고충도 있겠죠. 그래도 제가 지금 아줌마건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되건 상관 없는데 그런 잘못이나 나쁜 것도 아닌 특성을 가지고 남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의 피곤함을 문득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어요. 어릴 때처럼 무시당했다고 상처를 받진 않았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남을 굳이 아무런 이유없이 조롱하고 공격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오랜만에 들었어요. 돈같은 이익이 걸린 것도 아닌데요. 그런 상황들을 지나쳐왔고 또 앞으로도 그런 상황들이 있겠죠. 


전 지금 좋은 친구도 많고, 주변 사람들도 다 절 이해하고 배려해주고, 직장생활이나 학교/학원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라 사실 n년째 제 지병과 싸우는 거 말고 누군가에게 조직적으로 시달리지는 않은 지 이제 5년차인데... 문득 은따도 당해보고 전따도 당했던 어린 시절도 떠올리게 되고 각자의 이유로 부박한 세상살이를 꿋꿋이 해내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생각하게 되었네요. 산다는 건 정말이지 텁텁한 거 같아요. 사실 이런 텁텁한 삶을 살지 않으려면 매사 그럴 때마다 독하게 싸우거나 매사 그럴 때 마다 그냥 무시하고 기억속에서 완전히 지우면 되는 건데 전 둘 다 안되서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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