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작입니다. 역시 90분이 안 되는 짧은 영화구요. 스포일러 없게 적을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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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그 시절, 세기말 & 뉴 밀리니엄 분위기 물씬 풍기는 제목 폰트가 인상적입니다. ㅋㅋㅋ)



 -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 PTU(폴리스 택티컬 유닛, 대충 경찰 기동대쯤 되는 것 같습니다) 대원들이 차에 실려 어딘가로 향하며 라디오 뉴스를 듣습니다. 경찰 한 명이 은행 강도를 잡다가 세상을 떠났다네요. 그걸로 농담을 하는 부하들을 임달화 대장이 호되게 혼을 내죠. 동료다 이것들아!!! 장면이 바뀌면 우리의 홍콩 유민상, 임설씨가 식당에 밥 먹으러 가서 경찰이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진상 부리다가 조폭들과 시비가 붙어요. 그러다 결국 어두컴컴한 뒷골목에서 흠씬 두들겨 맞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총이 없어졌습니다!! 때 마침 현장에 도착한 우리의 의리남 임달화님께선 승진 심사가 코앞인 임설을 위해 '일단 오늘 동 틀때까지는 보고를 미루고 찾아보겠다'고 약속을 하고. 잃어버린 총을 찾기 위한 긴 하룻밤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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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까지만이다!!! 라며 정의로운 부하를 압박하는 의리남 임달화씨.)



 - 그러니까 일종의 군상극입니다. 중심 인물들은 있어도 '주인공'은 없이 흘러가죠. 군상극이란 말을 쓰니 문득 로버트 알트만 같은 분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성격은 많이 다르죠. 일단 영화 시간이 90분도 안 되게 짧구요. 이 영화에선 군상 중의 개개인이 부각되는 게 아니라 다른 뜻과 의도를 품고 충돌하는 '무리'들이 중요합니다. 다 본인 잘못임에도 어쨌거나 승진을 위해 법을 마구 어기고 사건을 키워가며 독자 행동을 하는 임설. 이딴 것도 동료라고 지켜주겠다는 의지로 조폭들 두들겨 패고 다니는 임달화 패거리. 상사의 말이라 마지 못해 일단 눈은 감아주지만 같이 덤탱이 쓸 생각은 없는 소미기의 무리,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이들을 감시하는 윗분과 그 부하들, 복수심에 불타는 조폭들과 세상 억울한 조폭들, 그리고 쌩뚱맞게 말려드는 후반의 어떤 무리들 등등. 이 많은 '무리'들이 여섯 시간도 채 안 되는 영화 속 시간 동안 홍콩의 텅빈 밤거리를 누비며 서로 얽히고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에요.


 그렇게 딱 정해진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형식이 아니다 보니 종종 뭔가 느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워낙 등장 인물 거의 모두가 악에 받쳐 있고 덕택에 매 장면마다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에 딱히 지루할 틈은 없습니다. 또 우리의 옴므 파탈 임설씨가 워낙 창의적으로 상황을 꼬이고 꼬이게 만들어서 그걸 보는 재미도 상당하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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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최강 진상이자 옴므 파탈 역할을 맡으신 임설씨)



 - 그리고 뭐랄까... 위에서 주인공이 없다고 적긴 했지만 다 보고 나면 주인공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홍콩의 밤거리. 그 분께서 주인공인 영화라고 대략 우겨볼 수 있겠습니다. 매 순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역은 바뀌어도 변함 없이 펼쳐지는 게 텅 빈 심야의 홍콩 길거리 풍경이고, 그 풍경을 정말 리얼하면서도 운치 있게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그 풍경은 각자의 어긋난 욕망으로 찌질거리는 인간들이 뛰어다니며 뻘짓들을 하고 다니는 와중에도 기묘하게 아름답습니다.


 뭐랄까... 약간 옛날 생각이 나더라구요. 팔팔하던 시절에 맨날 친구들에게 붙들려서 늦게까지 술 퍼마시고 걷던 그 새벽의 유흥가 풍경과 분위기. 대낮의 시끄럽고 정신 없음과 반대로 적막하고 고요해서 위화감이 들면서도 왠지 매력적이었던 그런 분위기가 영화 속에서 되게 잘 살아 있는 느낌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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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시간 늘 언제나 3인 이상 집합 보행 시 대형 유지는 두기봉의 아이덴티티!!)



 - 사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합니다. 마지막에 한 번 빵! 하고 터지는 장면이 있고, 또 국면 전환도 하나 있습니다만 모두 다 처음부터 예측 가능한 거죠. 

 규모도 아주 소박하고 진짜 별다른 야심이 없어요. 두기봉 영화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하던 얘기라 식상합니다만, 이 또한 소품이며 제가 본 몇 안 되는 두기봉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작은 소품이에요.

 하지만 여러 집단의 얽힘을 절묘하게 조율해낸 시나리오와 영문을 알 수 없이 낭만적(?)인 비주얼과 연출 덕에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아' 라는 기분이 보는 내내 들구요.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땐 기대 이상의 흡족함이 들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암튼 두기봉 영화들에는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어요.

 건조한 것 같으면서도 낭만적이고, 별 거 없이 소박한 것 같으면서도 뭔가 건더기(?)가 있는 느낌이 들고 말이죠.

 한 가지 분명한 건 20세기의 홍콩 느와르와 굉장히 많이 다르면서도 그 근본은 꾸준히 계승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 그냥 제 생각이지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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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장면 기대하고 보시면 안 됩니다. 실상은 본격 홍콩의 밤거리 산책 무비!)



 - 대충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소품 중에서도 소품이구요. 스토리는 심지어 살짝 부조리극의 냄새까지 풍기는 가운데 홍콩의 밤거리 정취와 그 안에서 부딪히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대체로 관조하듯 보여주는 영화에요.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 차라리 코미디로 만드는 게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기묘한 매력도 충분히 훌륭해서 아쉽지는 않구요.

 딱히 거부감이 들만한 장면도 없고 분량도 짧으니 부담 없이 누구나 한 번 시도해보실만한 영화입니다. 넷플릭스엔 없지만 iptv vod엔 어지간하면 있을 것 같고 저도 올레티비로 봤습니다.




 + 아니 근데 대체 왜 담배에 블러를 먹이는 겁니까. ㅠㅜ 심지어 칼에다까지 블러를 덕지덕지 바르더군요. 아니 총은 되고 총을 수십발 맞아서 사방으로 피를 튀기며 쓰러지는 사람도 되는데 왜 걍 손에 들고 있는 칼은 안 되는 건데.



 ++ '암전'에서도 그랬는데, 두기봉은 두 남자가 추격전을 벌일 때 계속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헐떡헐떡거리면서 아주 일반인들처럼 힘들게 쫓아가는 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거 사실 원조는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아닌가요. ㅋㅋㅋ 갑자기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네요. 지금 봐도 재밌으려나...



 +++ 깔끔하게 차려 입은 높으신 분들... 에 대한 거부감이 또 한 번 드러나는 영화입니다만. 이게 걍 90년대 액션 영화 공식을 따르는 건지, 아님 정말로 두기봉이 그런 계층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건지 괜히 궁금하더군요. 그리고 '암전2'와 '대사건'처럼 또 그 캐릭터를 여성이 맡았습니다만. 그걸 또 그렇게 독하게 놀림감 내지는 나쁜 놈 취급하지는 않는 게 특이하더라구요. 암전2의 그 캐릭터는 나중에 개과천선을 했고, 대사건의 그 캐릭터는 어쨌거나 끝까지 아주 유능했으며, 이 영화의 그 캐릭터는 정확한 감으로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고 뭐 그렇죠.



 ++++ 아주 뻘한 얘기입니다만.


 

 '미션'의 그 유치한(!?) 테마 음악에 중독되어 계속 흥얼거리고 다니다가 결국 자식놈 둘에게 전염시켰습니다.

 집에서 셋이 이걸 흥얼거리며 놀아요.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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