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 사태

2021.01.07 12:12

Bigcat 조회 수:1825

tvN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12월12일 첫방송…언택트 스터디 - 머니투데이

지난 연말에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죠. 설민석 강사가 논문 표절 문제로 모든 방송을 하차하게 된 일 말입니다.(유투브에 사과 영상 올리고 지난해 12월 29일 부로 모든 활동을 중단했네요.)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하던 분이라 이 사태에 대한 충격이 꽤나 갈 것 같습니다.(몇 년전에는 최진기 강사 건도 있었구요…ㅠ)

사실 요근래 '인문학 강연'이 상당히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진기나 설민석 같은 유명 강사들의 공헌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네요. 이 양반들 덕분에 인문학 강좌 자체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거든요. 사실 무슨 자격증 따는 것도 아닌데 돈 들이고 시간 쓰면서 인문학 강연을 듣는다는 건 예전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죠.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인문학이라는 게 꼭 책으로만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했다는 겁니다.

바로 인문학 = 책이라는 상식을 깬 것이 바로 이들이라는 얘기.

물론 이 아쉬움 뒤편에는 심각한 문제 의식도 있습니다. 설민석 강사가 지난해 12월부터 케이블 tvN에서 새로 시작한 예능프로 <벌거벗은 세계사>가 그 논란에 다시금 불을 붙였죠.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고고학자 비판에 왜곡 논란…tvN 측 “입장 정리 중” - 조선일보



다음은 이집트 전공학자인 곽민수 선생의 페이스북 글입니다.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을 보고 있습니다. (즐겨보고 있는 경이로운 소문 본방 사수도 포기하고....) 역시 걱정했던데로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이 차곡차곡 쌓여가네요.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지도도 다 틀리고.... (설민석이 그린 지도가 엉망인 건 둘째치고, 배경이 되는 저 시대의 이집트는 해안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가 중심이었을텐데 대체 왜 이집트 내륙 깊숙한 곳에서부터 로마로 날아가는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알렉산드로스가 세웠다는 말이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 때 세워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클레오파트라 같은 이름이 무슨 성이나 칭호라며 '단군'이라는 칭호와 비교한다던가 하는 것들은 정말 황당한 수준이었고, 그에 비하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를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서 말했다고 한거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 정확히는 파르나케스 2세가 이끌던 폰토스 왕국군을 젤라 전투에서 제압한 뒤 로마로 귀국해서 거행한 개선식에서 한 말이죠. 그 이외에도 틀린 내용은 정말로 많지만, 많은 숫자만큼 일이 많아질텐데 그렇게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재미있게 '역사 이야기'를 한다고 사실로 확인된 것과 그냥 풍문으로 떠도는 가십거리를 섞어서 말하는 것에 저는 정말 큰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민석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그 극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풍문을 함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사 이야기를 할 때 관심을 끌기에 분명히 좋은 전략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그냥 '구라 풀기'가 아니라 '역사 이야기'라면 그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것은 사실이고, 이것은 풍문이다라는 것을 분명하게 언급해줘야겠죠. 게다가 이건 언급되는 사실관계 자체가 수시로 틀리니....


제가 자문한 내용은 잘 반영이 안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보지 마세요.



https://ko-kr.facebook.com/pg/forkmt/posts/?ref=page_internal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역사 왜곡 논란에도 시청률 5%대 - 조선일보

논문 표절이 터진 마당에 새삼 설민석 강사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 얘기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저런 실수가 있었던 걸까?

곽민수 선생 얘기로는 2편 클레오파트라 방영 전부터 일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제작진이 돌연 감수자 명단에서 곽선생 이름을 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곽선생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이름은 그대로 두는 걸로 했지만 방영분에는 곽선생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죠.

이게 뭘 의미하는 걸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방송에서 논란이 됐던 역사적 오류라는게 사실상 단순 실수는 아니라는 얘기죠.

제가 이런 확신이 든 이유는 곽민수 선생의 페이스북 내용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곽선생이 지적한 내용들을 보면 상당히 지엽말단적인 부분에서 오류들이 있었구나 싶습니다. 지도는 뭐 보드에 필사하다가 그랬다고 쳐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립자 얘기나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같은 명언이나, 프톨레마이오스- 클레오파트라를 단군에 비유하는 건 조금만 신경을 쓰면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측, 내용 오류 인정…“개연성 지장 없다고 판단해” - 이투데이

그런데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생각해 보면 이게 대체 뭐라고 이런 걸 다 틀릴까 싶은데(게다가 곽선생 같은 전문가가 옆에 착 붙어서 친절하게 하나 하나 다 짚어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보기에 정작 진짜 문제는 바로 그 '정확한 역사적 전달'에 있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클레오파트라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명성, 그러니까 대중적인 영향력이 과연 어디에서 온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바로 그것은 고대 세계의 최대 정복왕이었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광에서 비롯됐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클레오파트라 본인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지막 혈손이기도 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원래는 대왕이 세운 것이었다는 설이 꽤 오랫동안 정설이었거든요(80년대 중고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프톨레마이오스가 도서관 세웠다는 얘기가 끼어들면 어떨것 같습니까? 바로 흐름이 딱 끊어지는 겁니다. 강연이 물 흐르듯이 흐른다는 건 바로 이런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무슨 스릴러의 문법처럼)맞아 들어가는데도 묘미가 있는 것인데, 바로 그 점에서 오히려 '역사적 진실'이라는 게 방해를 놓는 것이죠.

이것만이 아닙니다. 프톨레마이오스 - 클레오파트라 / 단군 얘기만 해도 엄연히 역대 임금들 이름이었던 명칭을 왜 고조선 임금의 호칭인 단군에 비유했는지도 알 수 있는게, 우리는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실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멀리 수 천년전 지구 반대편 이집트에서 일어난 일에 대중의 흥미를 더 잡아 놓으려면, 그 역사적 맥락이 비슷한 한국사 이야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더 좋은 건 없거든요.(일례로 앤 볼린 얘기할 때마다 제가 '영국의 장희빈'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아는 부분에서 관심이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도 말이죠. 이 강연의 주제가 어딥니까? 바로 이집트 아닙니까? 이집트와 로마간의 긴박한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역사적 사실이라 해도) 폰토스 왕국이라는 난데없는 지명이 끼어들면 어떨것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그냥 팍~흐름이 깨지는 겁니다. 이게 그냥 사소한 걸로 보여도 이런게 한 두번 계속 쌓이면 정말 강연이 재미없어지는 겁니다. 안타깝게도요.




대장금 이영애 포스터 - 숙현한복공식홈페이지

여러분들은 최근 사극 '철인왕후'의 역사왜곡 논란이 일각에서 꽤나 시끄럽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물론 저는 그런 건 역사왜곡 운운할 거리가 못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정작 시청률은 일취월장하고 있죠(매 방영 분마다 자체 최고 시청률 갱신 기록 중) 이는 비단 철인왕후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대부분 사극들이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데(이 점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헐리웃이나 유럽도 매한가지)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그건 바로 역사적 사실 자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기 위해 관련 역사 자료를 뒤적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진짜 역사적 '진실' 혹은 '사실' 그 자체들은 대부분 그냥 지루하고 끔찍한 일들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간혹 재밌거나 흥미있는 일들이 있어서 확인해 보면 후세에 창작된 일들이거나 가필된 경우들이 꽤 되더군요.(단적인 예로 '조선왕조실록' 과 '연려실기술' 만 비교해 봐도 이 점은 분명해집니다)

요즘 왜 <정도전>같은 '정통사극'이 제작되지 않는지 아십니까? 왜 만들었다 하면 <철인왕후>나 <선덕여왕>, <육룡이 나르샤>, <대장금> <킹덤> <미스터 션샤인>같은 퓨전사극일까요?

바로 이런 불편한 진실 때문입니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이미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왕조 국가같은 전근대 사회가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막말로 이미 '보편적 인권의식과 민주주의 이념' …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평범한 공화국 시민들인 우리들로서는 인권유린이 다반사였던 지난 시절의 역사들을 -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재현해서 볼 필요를 못 느끼는 겁니다. 실제 역사가 그랬으니까 공부는 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재현하는 걸 굳이 돈 들이고 시간 써가며 보고 싶지는 않은 거죠. 그래서 한복 입고 머리 올린 거 말고는 현대극이나 다름없는 퓨전 사극들이 인기인 것이구요.

同色2作 ③]여장남자 신윤복과 스승 김홍도, '바람의 화원'vs'미인도'

(막말로 조선 시대에 대장금같은 여자 의사가 어디 있으며, 또 여자 요리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조선의 궁정 요리사는 대령숙수로 불렸으며 전부 '남자'입니다. 수랏간 상궁들은 그저 주방 보조에 지나지 않구요. 여자 신윤복은 또 어떻구요? 조선에 여자 화가, 그것도 궁정 화가가 있었을 것 같습니까? 아예 비빈들 초상화도 못 그리게 금지한 나라인데?
실제 역사에서 조선 여인들의 현실은 경국대전 형법전에 명확히 제시되어 있습니다. '사족의 여인으로서 사사로이 여행을 한 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

드라마 얘기로 빠졌는데 이런 사정이 역사 강연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할수록 그 강연은 재미가 없어지고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진다는 것이죠.

방송국 제작진들이 바보라서 이런 걸 모르고 강사를 섭외하고, 강사들은 이런 걸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게 아닌거죠.

참 딱한 상황인데, 암암리에 이런 현실을 묵인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막말로 드라마도 시청률 3% 찍는게 보통인 요즘 설민석 역사 예능이 무려 매회 5%이상 - 최고7~8% - 시청률이 나왔죠…이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결론적으로는 이같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향후 저같은 인문학 강사들의 숙제가 될 것이네요.



벌거벗은 세계사 역사 왜곡 '사과', 결국 "설민석 고개 숙였다" - 아주경제


'설민석 하차' 후폭풍...'선녀들' 결방, '세계사'도 비상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01230173600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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