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 100> 천국과 지옥 잡담

2010.07.19 12:19

룽게 조회 수:2303

1. 퍼시픽의 펠렐리우 상륙작전 에피소드에서 이제 갓 처음 전장에 뛰어든 병사는 내일해가 뜨면 일본군의 포화를 뚫고 가로질러 가야 할 비행장을 바라보며 

어린시절 그랜드 캐년에 갔었던 추억을 이야기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직접 눈으로 봐야만 해." 

천국과 지옥을 보기전에 이영화에대한 찬사들을 먼저 주워섬기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가령 봉준호가 '승산이 없다'는 이유를 대며 이영화의 리메이크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나 '이제 유괴영화는 다만들었구나.'라고 박찬욱이 탄식했다는 

이야기 같은것들 말입니다.

(앞으로 유괴영화 만들생각 말아라. 이 꼬꼬마 색퀴들아)


2.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없이 영화를 보는것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즐거움을 누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마치  '한번에 두편을 보여드립니다'처럼 상하구조가 꾸렷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전반이 양심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 드라마였다면 후반부는 정통파 수사물의 형식을 취합니다.

놀라운점은 이 상반된 스타일의 이야기가 접합선이 안보일 정도로 너무나 솔기가 잘 이어져있고 상,하 어느부분이나 더할나위없이 훌륭하다는 점입니다.

 하나의 플롯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스토리를 뽑아내고 그것들을 어느 하나 치우지 않게 균형을 이루어내는 실력에대한 찬사는 이미 영화사속에서 충분히

이루어진것 같으니 저는 더 말을 보태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유괴사건 하나를 가지고 인생의 중요한 길목에서 양심과 선의를 위해 모든것을 포기할것인가하는 갈등,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인한 갈등과 그에 따른

증오범죄, 그리고 시민의 공복으로서 충실하게 사건에 임하는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는 충분한 오락적 요소를 갖춘 수사물로서의 기능을 함께 이루어 낸다는것

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영화를 깨끗한 프린트로 대형 스크린에서 다시만날수 있다는 것 또한 기적입니다.


3. 배우들에 대해 잠시 침을 튀자면, 일단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두 페르소나 미후네도시로와 나카다이 다쓰야는 후반부에 단 두장면에서만 조우하지만 

서로 양쪽에서 불꽃과 바람을 일으켜줍니다. '미후네는 들개같고, 나카다이는 뱀같다.'라고 했던 구로사와 감독의 평처럼  영화의 후반에서 보여지는 나카다이의

모습은 정말로 증오를 원료로 하여 인간의 형상으로 빚어진 '그 무엇'처럼 보입니다. 솔직히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후반에 선글라스 쓴 얼굴로

희생자를 바라보는 소름 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할거 같습니다. (올여름은 잠자리 라이방 볼때마다 이영화를 떠올리게 될것 

같습니다.) 화면 곳곳에 숨어있는 7인의 사무라이 배우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고요. (이부분은 저의 큰 착각이 있었습니다. 유괴범 역할을 한 배우는 

나카다이 다쓰야가 아닌 쓰토미 야마자키입니다. 카게무샤에서 나카다이 다쓰야(타케다 신겐)를 닮은 동생(노부카도)역을 했던 배우라서 그랬나 봅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신 큰고양이님과 calmaria님께 감사드립니다.


4. AK100 특별전은 새삼 영화를 본다는 즐거움이 무엇이었나를 다시 일깨우게 해준 중요한 계기가 되는것 같습니다. 아울러 흔히 '은막'이라 불리우던 흑백화면의

뛰어난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나도 다시 일깨워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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