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몽어스를 좋아하는 이유

2021.01.05 18:35

Sonny 조회 수:606

어제 또 어몽어스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임포스터를 누구인지 추리하는 과정에서 용의자를 제외해놓는 바람에 크루원들이 서로 헛발질에 잘못 추리를 하면서 정신적 삿대질까지 하는 판이 벌려졌습니다. 초반에 일찍 죽었던 진범인 저와 또 다른 진범 모님은 그 광경을 보면서 아주 많은 ㅋ을 연타했습니다. 확증편향이라든가 잘못 끼운 첫단추라든가 여러가지 단어들이 떠올랐구요. 본인들끼리만 유력했던 용의자가 마피아가 아닌 게 밝혀지자 다들 기가 막혀하면서 사운드가 엄청나게 물리면서 각자의 필리버스터가 터졌습니다. 거의 국회의 날치기 투표와 그 투표를 막으려는 국K-1의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강한 확신으로 오답을 찍는 사람을 몰래 구경하면서 웃음을 참는 기분은 뭐랄까... 이 맛에 완전범죄를 하는구나 싶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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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질을 지켜보는 저와 모님>




아마도 여러모로 저희 사이에서 레전설 판으로 회자될 것 같습니다. 끝나고 온라인 공방을 돌았는데 오히려 헛헛하더군요. 추리도 맥아리가 없고...


이 게임이 왜 저를 이렇게 꽂히게 만드는 것인지 좀 생각을 해봤는데요. 그건 어몽어스가 바로 "생산적 갈등"을 게임의 주 컨텐츠로 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있고 갈등에 부딪히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후자에 더 가깝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그러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은데, 사실 현실에서는 갈등을 허용해주지도 않으니까요. 갈등이 허락되고 그 갈등이 정반합의 한 과정으로 더 나은 결론을 도출해낸다면 저는 충돌과 합의를 기어이 끌어내야 하지 않을까 믿는 쪽입니다. 세상의 많은 투쟁은 일어나지도 못하는 갈등을 어떻게든 일으키게 하려는, 점화 자체에 그 목적이 있기도 하구요. 그러니 갈등이 필연적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고, 갈등을 겪어 어떤 결론이라도 끌어낼 수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갈등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죠. 물론 대다수의 갈등은 일어나지도 못하고 꺼지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만...


보통의 게임은 일대일의 갈등을 전제로 합니다. 그 갈등은 "내가 승자가 되고 너가 패자가 되어야한다"는 단순한 명제인 동시에 갈등을 일으키고 극복하는 방법은 게임 설정 안에서의 대결을 통해 자신의 우월한 게임능력으로 상대를 압도하죠. 그러나 어몽어스는 다대다, 일대다의 갈등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게임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필히 다수를 설득해야 하며 때로는 게임실력과 무관하게 설득에 실패하여 갈등의 책임을 고스란히 물어야 할 때가 생깁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다수에게 어필하고 다수의 합의를 이끌어내서 임시적 결론에 연속으로 도달해나가는 상황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양상과 비슷하다고 느껴지거든요. 이런 과정은 생계와 권리가 얽힌 경우 대단히 고통스럽고 지리멸렬하지만 어몽어스라는 게임에서는 이 이상적 갈등해결을 즐겁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선악과 무관하게, 반드시 부딪혀야하는 갈등에서 어떤 식으로든 답을 내니까요. 서로 의견을 묻고 상대 의견의 합리성을 따지고 그래서 다수의 합의에 도달하는 이 과정이 저는 "생산적 갈등"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첨예하게 주장을 하고 맞부딪혀도 그저 동어반복에 그치는 일이 많다면, 어몽어스는 어떤 식으로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설령 투표를 스킵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임포스터가 크루원을 죽이고 갈등을 해소한 하나의 단계인 거니까요.


사실상 저희는 이렇게 평등한 상태에서 각자의 합리만을 가지고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던 인터넷이라는 수단조차 비아냥과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더 많이 쓰이곤 하죠. 하지만 어몽어스는 다릅니다. 설령 억울하고 부정확할지언정 누군가를 찍고 추려낸다는 과정과 그 과정을 밟아나가기 위한 미션수행 (사보타쥬)을 각각 펼치죠. 자기 뜻을 펼치기 위해 뭔가를 실천하고 공론장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공격과 방어를 펼칩니다. 너도 의견을 내고 나도 의견을 내고, 의견을 내기 위한 뭔가를 너도 하고 나도 하고. 물론 그 과정에서 트롤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논리 아니겠습니까. 모두가 평등하니까 잘못된 의견조차도 공론장에서 한 개인의 엄연한 의견으로 소비되고 받아들여지죠.


평상시 말이 없던 모님과 모님이 임포스터인걸 알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지... 이 게임은 어떤 면에서는 참 공평합니다. 임포스터가 노력과 경쟁의 측면을 상징한다면 그 임포스터를 추려내는 점은 민주사회의 작동체제를 구현해놓은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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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임포스터를 너무 열심히 하면 사회 전체를 확증편향이 지배해서 차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 공론장에서는 어떻게 선동꾼을 효과적으로 걸러낼 것인가,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그 고압적인 설득에 맞설 것인가 다같이 고민해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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