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54분. 스포일러는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크게 중요한 얘긴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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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영화'라는 정직한 카피.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두 분의 차림새와 표정 연기가 살짝 부담스럽습니다. ㅋㅋㅋ)



 - 로토스코핑으로 만든 꽤 고퀄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합니다. 80년대 골목길에서 숫기 없는 남자애가 동네 개구쟁이 빌런들에게 모자를 빼앗겨요. 그 모자를 나무 위에 던져 놓고 사라진 빌런들 때문에 남자애는 울상이 되어 그 모자를 내려 보려고 돌멩이를 던져 봅니다만...

 암튼 현재 & 현실로 오면 그 골목과 비슷한 동네의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커플이 나와요. 제목 그대로 '와니'와 '준하'겠죠. 김희선의 와니네 집입니다. 아빠는 없고 엄마는 시골 살고, 그 틈을 타서 남자 친구 준하와 동거를 하고 있네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라 재택 라이프를 살고 있는 준하가 살림 다 해주는 상냥한 남자 친구고요. 현직 애니메이터로 일하는 와니는 살짝 좀 어둡고 까칠한 구석이 있는 캐릭터지만 암튼 당장 둘의 사이는 좋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럽으로 유학간 와니의 남동생 영민이 잠시 한국에 들어온다는 연락을 하구요. 그 때부터 와니가 좀 이상해지는 가운데 갑작스레 와니랑 친하게 지냈던 동네 동생 소영이 쳐들어와서 며칠 신세 지겠다 그러고. 여러모로 어리둥절해지는 준하의 연애 전선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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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퀄도 괜찮은데 움직임이 좀 괴이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했더니... 그 시절에 이것도 유행이었죠. 로토스코핑!)



 - 2001년이니까 '봄날은 간다'랑 같은 해에 나온 영화였네요. 상대적으로 화제도 덜 됐고 흥행도 잘 되진 않았죠. 그래도 완성도는 괜찮다는 평이 많아서 언젠간 봐야지... 하다가 21년만에 챙겨봤습니다. 사실은 완전히 까먹고 있다가 얼마 전 제 글에 노리님께서 달아주신 댓글 때문에. ㅋㅋㅋ 올레티비에선 유료로 올라와 있는데 신나게도 왓챠에 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OTT 사업자 여러분들. 왓챠야 너무 아프지 말고 변하지 마...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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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도 안 한 젊은이들이 그냥 막 동거를 하다니! 와 쿨하다!!! 뭐 이런 감성이랄까요. 그래도 영화가 그런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긴 합니다만. 결국 못 참고 대사로 한 번 언급을 하긴 하더군요. ㅋㅋ)



 - 시작하고 끝날 때의 애니메이션. 와니의 직업. 그리고 회상씬에서 와니가 그리는 그림들. 이런 부분들이 영화의 정체성을 대변합니다. 그 시절 감성의 순정 만화를 실사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 중에서도 고풍스럽게 예쁘고, 담담한 분위기로 슬픈 만화들 말이죠. 배다른 남매간의 금지된 사랑, 삼각 관계에서 거의 사각 관계에 가깝게 꼬인 관계 설정. 스포일러라서 말할 수 없는 갑작스런 비극 등. 온갖 막장스런 상황들이 던져지지만 악당은 하나도 없고 주인공들도 한 없이 착하고 예쁘기만한, 그래서 막장 기운이 별로 안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살짝 미츠루 아다치 생각도 나더군요. 선량한 사람들만 나오는 순한 맛 막장극이 특기인 분이시라. 근데 그래도 그냥 보통의 순정만화 톤에 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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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 남매의 슬픈 로맨스. 이런 거 참 인기(?)였죠 그 시절에.)



 - 역시나 인상적인 건 비주얼입니다.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애니메이션의 퀄도 상당히 좋구요. 영화 내내 화면을 메우는 김희선, 주진모에다가 최강희, 조승우의 비주얼들도 예쁘구요. 뭣보다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와니네 집이 참 예쁩니다. 옛날 생각나는 단독 주택인데, 겉에서 봐도 예쁘고 속도 예쁘고 다 예뻐요. 로케이션에 들일 열정과 에너지를 이 집 하나에 다 때려 박은 느낌.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을 꼽아 보라면 일단 첫번째로 주저 없이 이 집을 택하겠습니다. ㅋㅋ 그리고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옛스럽게 멋진 분위기로 영화의 톤을 차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줘요. 자칫하면 '철지난 트렌디'로 늙어 버리기 쉬운 오래된 '젊은이 영화'의 문제를 요 집이 해결해주더군요. 덕택에 영화가 촌스러운 느낌이 없습니다. 물론 그걸 그렇게 잘 잡아낸 제작진의 능력이 제일 중요했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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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제일 예쁜 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배우들보다 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살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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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자체도 참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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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꾸며 놓기도 참 열심히 꾸며 놨겠죠. 자연스럽게 어지러운 척하지만 예뻐야해!! 라는 제작진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 이야기는... 하하. 이걸 뭐라 해야 하나요. 사실상 이야기랄 게 거의 없는 영화에요. 그러니까 사각 관계까지 벌어지는 이야기이긴 한데, 놀랍게도 이 꼬인 관계의 핵심인 조승우의 '영민'이 나오지를 않거든요. ㅋㅋㅋ 와니의 회상 장면에는 계속 나오지만 현재 파트에선 두 번 목소리만 나올 뿐 와니의 집에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서 다른 인물들과 상호작용도 하지 않습니다. 현실 파트의 등장 인물인 와니와 준하 + 최강희의 '소영'은 모두 영민에 대한 기억과 싸우지 현실의 영민과는 (와니 빼곤) 얽히지 않아요. 그래서 보다보면 이 영민이라는 놈은 꼭 귀신 같기도 하구요. =ㅅ=

 암튼 그래서 이야기는 그게 답니다. 이루지 못하고 묻어뒀던 사랑의 기억 때문에 잘 살던 커플의 관계가 흔들리고, 갈등하다가 봉합되는 거. 그 과정에서 딱히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말하자면 '잔잔한 일상물' 같은 느낌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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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고 두 분 뽀송... ㅋㅋㅋ 대체 조승우는 언제 출동하는 거야? 했는데 그냥 끝까지 추억에만 머물러서 저를 당황시켰습니다.)



 - 근데 여기까지는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죠. 컨셉도 닮은 점이 있고 그림도 충분히 예쁘구요. 또 주인공들의 일상 묘사도 괜찮아요. 상당히 보기 좋게 찍어 놓았고 디테일도 풍성하구요. 주인공들의 직업 같은 부분도 대충 다루지 않고 잘 써먹는 편이고. 그렇습니다만. 이야기가... 뭐랄까. 묘하게 좀 산만하고 정돈이 덜 된 느낌이 듭니다. 당시 기준 꽤 준수한데, 살짝 모자란 부분들이 눈에 밟혀요.


 말하자면 이 영화도 저 허진호의 영화들처럼 '굳이 자세히 설명 안 함' 신공을 쓰고 있거든요. 와니와 준하가 어떻게 만났고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와니는 어쩌다가 (아무리 '배다른'이지만) 남동생과 그렇게 애틋한 사이가 됐는지. 뭐 이런 거 잘 안 알려주고 그냥 '힌트가 될만한 감성적인 장면들'로 때우는데요. 그게 그렇게 잘 먹히질 않더라구요. ㅋㅋ 최소한 와니와 영민의 관계는 그게 이야기 전체에 미치는 중요성을 생각할 때 좀 더 납득이 가게 그려줬음 좋았을 텐데, 영화에서 보여지는 바로는 그저 '피가 안 섞인 선남 선녀가 한 집에 사는데 당연히 연애하는 거지!!' 라는 식으로만 느껴졌어요.


 이야기가 조금 산만하기도 합니다. 교통정리가 덜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최강희가 맡은 캐릭터는 사실상 그냥 지워버려도 별로 상관이 없구요. 김희선이 일하는 애니메이션 회사 장면들도 나름 성의 있게 다룬 건 좋은데, 그게 딱히 와니 캐릭터의 고민이나 성장과 연결되질 않으니 꼭 필요했나? 싶구요. 주진모의 시나리오 작가 입봉 스토리도 뭐 캐릭터의 성장을 보여주겠다는 건 알겠는데, 역시나 영화의 중심 사건과는 영 동떨어져서 전개됩니다. 아마도 감독이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닌 젊은이들의 성장담을 풀어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의도는 좋지만 그게 그렇게 잘 결합되어 있지가 않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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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그 시나리오 작가 스토리 덕에 이 분을 뵐 수 있었죠. 이정은씹니다. ㅋㅋㅋㅋㅋ)



 - 이런 산만함 속에서 주인공 캐릭터들도 좀 약해집니다. 

 특히 와니가 많이 그래요. 그냥 똘똘하게 잘 살다가도 영민 생각만 나면 추우욱 늘어져서 좀비 모드가 되어 버리는데 앞서 말 했듯이 영민과의 관계가 딱히 설득력 있게 제시된 게 없으니 '아니 뭘 저렇게까지'란 생각이 자꾸 듭니다. 게다가 이런 부분들에선 김희선의 연기도 좀 부족한 티가 나서 더욱... ㅋㅋ 생각해보면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보다 이 영화의 김희선 캐릭터가 더 어려워요.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이라. 그냥 생활 연기를 할 땐 심은하에게 밀릴 것 없는 좋은 연기 보여주는데요. 좀 아쉽긴 했습니다.


 주진모의 '준하'는 상대적으로 괜찮긴 한데요. 이 분의 문제는 애초에 시작부터 완성되어 있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덩치 큰 근육질에 화려한 마스크를 뽐내지만 순진 자상하고 속 싶은 남자. 뭐 이렇거든요. 자꾸만 벌어지는 영문 모를 일에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그러는 게 제법 잘 묘사가 되고 주진모의 연기도 흠 잡을 데 없이 괜찮고 그렇습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쭉 그냥 괜찮은 상태를 유지해버리니 가뜩이나 큰 갈등이 없는 이 영화에 별다른 흥미나 재미를 만들어주진 못해요. "갑자기 까칠해진 여자 친구를 꾹 참아주다 보니 다시 좋은 날이 왔네요!!" 이 캐릭터의 드라마는 딱 이 정도입니다. 아마도 이 분은 순정 만화 갬성으로 "우와 나도 저런 남자 친구 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캐릭터 아니었나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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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기 참 자연스럽게 잘 하다가 우울한 감정만 잡히면 이렇게 '그 시절 김희선표 슬픔 연기'가 작렬해서 좀 아쉬웠구요.)



 - 암튼 뭐랄까... 컨셉도 잘 잡고 캐스팅 잘 했고 비주얼도 잘 뽑고. 또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괜찮다 싶은 장면도 많구요.

 전체적으로 웰메이드에 가깝긴 한데 중심 사건이 너무 약하고 이야기 전개도 유기적인 느낌이 떨어져서 아주 괜찮단 생각까진 안 들었습니다. 살짝 산만하기도 하고, 또 늘어지는 부분도 있구요.

 딱 그냥 '괜찮긴 한데 아주 훌륭한 건 아니고 결정적으로 내 스타일은 아닌 듯'이라고 평하겠습니다. 차라리 그 시절에 봤다면 그래도 당시 기준 세련된 감각 때문에 훨씬 좋게 봤을 것 같은데. 21년 후에 보고도 감탄할 퀄은 아니었다... 라는 것이니, 나쁘게 평하는 건 아닙니다!! ㅋㅋㅋ

 새삼 '그래, 그때 김희선도 비주얼 하난 심은하, 이영애 못지 않았지'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겠습니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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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잊고 살았지만 참 그 시절에 뭔가 비교 대상 없이 짱 예쁜 분이었죠. 심은하, 이영애랑은 나이 차이도 좀 있었고 해서 '신세대' 미녀 배우의 원탑이셨던 걸로 기억하네요.)




 + 이 영화도 배우는 둘을 동시에 내밀고 있지만 사실상 준하가 원탑 주인공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거의 준하의 입장에서 진행이 되고, 그래서 준하 쪽에 더 공감이 가고 그렇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배우로서도 주진모 쪽이 좀 더 그럴싸해 보이고 그렇더군요.

 근데... 그래서 찾아봤더니, 주진모는 그 난감한 사건 이후로 정말 거의 완벽하게 칩거 중이더군요. 대략 3년인데... 뭐 먹고 살만 하니 그런 거겠지만 좀 의외이기도 하네요. 스스로 생각해봐도 많이 쪽팔리긴 한가 보구나 싶습니다(...)



 ++ 별다른 이유 없이, 스토리 전개에도 아무 영향을 주지 않는 가운데 동성애자 캐릭터와 장애인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무심한 듯 시크... 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서 흘러가는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찾아보니 이 영화 제작자가 김조광수씨였군요. 끄덕.



 +++ '8월의 크리스마스'가 서울인 척하는 군산에서 찍은 영화라면 이 영화는 춘천인 척하는 서울에서 찍은 영홥니다. 실제로 춘천에서 많이 촬영하긴 했는데 결정적으로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경인 와니의 집이 서울에 있어서. ㅋㅋ



 ++++ 이걸로 세기말, 뉴밀레니엄 시즌 호평 한국 로맨스 영화는 거의 다 본 것 같은데요. 이제 다시 폭력과 살육의 세계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안 보던 로맨스를 막 몰아서 보니 힘드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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