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름도 찬란한 '독전: 익스텐디드 컷' 이라는 버전으로 봤습니다. 원작 대비 8분 분량을 추가해서 런닝타임은 두 시간 십 분 남짓. 어차피 오리지널도 이것도 다 무료라서 걍 이 버전을 봤죠. 스포일러는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읽다보면 뭔가 좀 후반 전개에 대해 눈치채실 부분들이 생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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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리지널 포스터와 비교해보면 재밌습니다. 원작은 경찰 우루루에 범죄자는 끄나풀 한 명만 나오는데 이 포스터는 정확하게 그 반대에요)



 - 시작하면 난데 없이 무슨 눈밭이 나옵니다. 외국 분위기... 인데 찾아보니 노르웨이였다네요. 조진웅이 차에 기름을 넣고 어딘가로 출발, 하염없이 이어지는 눈밭 사이로 난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와 조진웅의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여주며 화면 전환. 아마도 방금 그게 현재이자 결말 직전이고 지금부터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면...' 이 나오겠죠.


 장면이 바뀌면 롯데리아에서 조진웅이 엄청 화려(?)하게 꾸민 여고딩을 만나고 있습니다. 대충 보아하니 조진웅은 형사, 고딩은 뭔가 사연이 있어서 조진웅과 얽힌 정보원 비슷한 건가 봐요. 미성년자 데리고 뭐하는 건가... 싶지만 암튼 조진웅이 갸한테 뭔 일을 시키는데, 갸는 곧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태로 발견됩니다. 그리고 그 건에 대한 상사와의 대화씬을 통해 대략적인 설정이 전달되죠. 한국 마약계의 끝판왕이자 아무도 정체를 모르는 어둠의 흑막 '이선생'이란 놈이 있고 조진웅은 갸 하나 잡자고 십년이 넘게 매달리고 있었나봐요. 하지만 수확은 없었고 오히려 그쪽에서의 경고성 메시지로 조진웅의 정보원까지 시체가 된 거죠. 이제 그만 손 떼라는 상사에게 '잡을 거라능!! 나 좀 그냥 냅두라능!!!'이라고 외치는 조진웅씨.


 이번엔 고급진 대형차를 타고 뭔가 '마님' 같은 차림새를 한 김성령이 등장합니다만...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 장면은 정말 철저하게 잉여네요. 잠시 후 이 양반이 설명충이 되어 영화의 배경 설정을 조진웅과 관객들에게 다다다다 떠들어대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혀 몰라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러니 생략.


 그리고 또 장면이 바뀌면 아까 폭발한 그 공장이에요.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들은 활활 잘도 타버린 그곳에서 빈사 상태의 개 한 마리와 정신만 잃었을 뿐 매우 멀쩡한 상태의 류준열을 줍줍하고. 우리 조진웅 팀장님은 류준열을 미끼 겸 정보원 삼아 '이선생'을 잡으려는 계획을 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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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주인공이다!!!)



 - 사실 시작하고 대략 10분쯤 지나고 나서부터 느낌이 왔습니다.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아니, 많이 아닌 것 같아... 라는 느낌.

 뭐 리메이크 영화를 보면서 원작과 비교하면서 까는 건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 일입니다. 되게 식상하잖아요. 할 말도 뻔하고.

 원작의 내용을 이리저리 고치면서 원작의 핵심적인 컨셉이자 매력 포인트를 내다 버렸다, 이럴 거면 왜 그걸 원작으로 했는지 모르겠다, 원작이랑 비슷한 부분들은 대부분 원작보다 떨어지고 원작과 다르게 만들어 넣은 부분들은 매력이 없으며 심지어 남아 있는 원작의 매력도 깎아 먹는다, 배우들 캐스팅은 화려하고 할 일 열심히 하지만 이야기가 망하니 크게 보탬이 안 되더라... 등등 뭐뭐 이런 얘기들 늘어놓게 되는 게 흔한 시나리오 아니겠습니까.


 근데 이 영화도 그래요. ㅋㅋㅋ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원작보다 못한 리메이크'의 모범 사례 같은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그 자체가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따라서 이 글도 클리셰(?)가 될 예정입니다.



 - 그러니까 대략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도입부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야기 자체는 거의 같아요. 원작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도 거의 다 (살짝 바꿔서) 등장합니다. 

 다만 원작은 '경찰팀' vs 끄나풀의 구도로 전개가 되었다면 이 영화는 '반장님' & 끄나풀... 이라는 식이에요. 확고한 주인공 캐릭터 둘을 두고 그 둘의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거죠. 그래서 원작과 다르게 반장과 끄나풀에겐 다 과거지사가 있고, 그걸 열심히 보여주고, 또 그러는 과정에서 둘이 느끼게 되는 친밀감 같은 걸 강조합니다. 원작이 끄나풀이 언제 뒷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분위기를 잡으면서 긴장감을 주는 데 주력했다면 한국판은 둘이 함께 고생하면서 서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니 이야기는 같아도 분위기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겠죠.


 또 한 가지 차이라면 후반의 전개인데... 원작에서도 '이선생'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소소한 반전이 있긴 했거든요. 근데 이 한국판은 그 반전의 내용을 바꾸고 거기에 엄청 크고 무거운 방점을 찍습니다. 아마도 이게 이 리메이크의 핵심 아이디어 아니었나 싶어요. 그걸 이렇게 바꾸면 훨씬 드라마틱하고 재밌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은데... 글 적는 꼴을 보면 아시겠지만 전 그게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생각하구요.


 암튼 그래서 원작이 경찰 집단이 마약 범죄자 집단을 상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였고 대략 건조한 톤의 삭막한 (하지만 액션은 화려한!) 이야기였다면 이 리메이크는 아주 그냥 감정이 차고 넘치는 '두 남자!'의 이야기가 됩니다. 거기에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성격의 반전도 하나 때려 박구요. 취향에 따라 후자가 더 맞을 수도 있겠죠. 전 전혀 아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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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씬스틸러'의 이름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 하신 두 분. 결과는 나름 성공적.)



 - 뭐 애초에 방향성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이야기이니 둘 중 어느 쪽이 더 맘에 드는가는 보는 사람 취향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 외에도 리메이크는 그냥 좀 부족한 구석이 많이 눈에 밟힙니다.


 일단 너무 설명적이에요. 원작과 거의 같은 설정을 깔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이 한국판쪽에 훨씬 설명조의 대사가 많이 나옵니다. 뭔가 새로운 장소나 인물이 나올 때마다 보이스 오버로 'xx는 뭐하고 뭐하는 놈인데 뭐뭐하기로 유명한 뭐 같은 인물이다!' 라고 설명하면 '그래 그러면 우리는 이러쿵 저러쿵 해서 이러저러한 후에 이렇게 대비하면 되겠군!' 이라는 대꾸가 들리면서 전개되는 식이죠. 


 그리고 이야기의 템포가 상대적으로 좀 늘어집니다. 원작에 없던 디테일들을 자꾸 여기저기 추가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고. 그냥 연출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부분도 있구요. 예를 들어 반장&끄나풀 콤비가 마약 재료 공급책을 만나서 미션 임파서블스런 작전을 펼치는 장면 같은 걸 비교해보면 그렇죠. 분명 내용상 전개는 거의 똑같이 되는데 긴장감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리메이크판은 뭔가 좀 산만해서 속도감도, 긴장감도 떨어지는 느낌.


 마지막으로 클라이막스의 반전과 마무리... 원작도 마지막 장면의 전개는 좀 무리수가 있었지만 리메이크판의 클라이막스와 마무리는 그냥 환타지입니다. 그냥 1초만 생각해봐도 불가능한 이야기를 '충격적 반전'을 위해 무리해서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이고. 또 원작과 달리 갬성 터지는 엔딩 씬은 그동안 쌓아 올린 관계와 감정의 부족으로 인해 장면 자체의 간지와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슬쩍 헛웃음이 나옵니다.


 혹시 추가 장면이 없는 오리지널은 좀 나을까... 해서 오리지널도 재생해서 결말만 확인해 봤는데, 큰 차이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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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본편도 안 본 사람들에게 이 포스터는 너무...)



 - 리메이크판에서 가장 호평 받았던 게 아마도 강렬한 캐릭터! 좋은 배우들의 호연!! 이런 부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에 그게 사실 뭐랄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역시 좀 애매한 부분이 있네요.

 예를 들어 가장 화제가 되었던 고 김주혁씨의 그 캐릭터 말이죠. 확실히 원작의 같은 인물에 비해 굉장히 강렬하긴 합니다.

 하지만 원작의 그 '나쁜 짓으로 먹고 사는 세일즈맨' 캐릭터는 이야기의 톤과 완벽하게 잘 어울렸거든요. 근데 그걸 그냥 인간계를 초월한 이해 불가능 수준의 괴물로 그려 놓은 리메이크는... 확실히 인상적이고, 또 김주혁도 정말 잘 해내긴 했지만 뭔가 연출과 이야기의 부족함을 무턱대고 센 캐릭터와 배우의 호연으로 하드캐리하는 것 같다... 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한국판 '독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래요. 다들 배우들이 잘 해내고 있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화면을 확 장악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만, 그 캐릭터들이 모여서 굴려가는 이야기가 영 애매하니 그저 '하드캐리' 이상의 의미는 못 주겠더라구요 전.



 - 그래서 제 결론은 이랬습니다.

 재미 없는 영화도 아니고 못 만든 영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원작과 비교할 땐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구요.

 K-쏴나이들!! 이야기의 정서에 특별히 거부감이 없으시고, 배우들의 화려한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원작보다 재밌게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두기봉에 꽂혀 있고 또 그 원작을 워낙 재밌게 봐서 좀 과하게 후려쳐버린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하면, 둘 다 안 보셨다면 원작을 보시는 쪽을 추천합니다. 리메이크판은 그 후에 고민해보셔도 괜찮을 거에요. ㅋㅋ




 + 한국 영화의 관람 등급 부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였네요.

 애초에 소재가 마약이라 영화 내내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우루루 나와서  마약 하는 장면들이 나오구요.

 심지어 막판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게 처리하긴 했지만 상당히 변태적인 느낌의 성관계를 보여주는 신도 하나 나오구요.

 그냥 대놓고 여성 캐릭터가 가슴을 노출하는 장면도 나오고... 그런데 15세 관람가더군요.

 기생충,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블레이드 런너 2049, 이 영화까지 다 15세 관람가라니 요즘 15세들 부럽습니다(...)



 ++ 마약 수사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나오신 분의 비주얼이 좀 인상적이어서 찾아보니 경력 매우 화려한 패션 모델 출신이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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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아쉽게도 캐릭터는 오리지널의 같은 역할 캐릭터 대비 임팩트가 너무 없었습니다.



 +++ 김주혁씨가 이 영화 찍어 놓고 아직 촬영이 종료되기 전에 돌아가셨죠. 

 강렬한 캐릭터였고 좋은 연기였지만 제게 이 분 연기의 최고는 이 영화의 이 장면입니다.



 새삼 다시 한 번 명복을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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