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보고 왔습니다

2021.04.09 18:37

Sonny 조회 수:468

774AVFDJQFSV7WSTLGG27HUYWQ.jpg많은 이들이 칭찬하는 이 영화에 왜 이렇게 공감되지 못하는지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그건 아마 삶을 삶의 감각 자체로 만족하라는 초정치적인 태도에 대한 반감인 것 같아요. 영화에서는 꼭 꿈을 이루지 않아도, 그저 하루하루 적당히 살아나가는 삶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하죠. 꿈과 삶이 서로 대립하는 이분법의 전제라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성찰이라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삶이 반드시 꿈과 대립하지만은 않는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삶의 영역에 계층이나 빈부같은 격차의 문제, 즉 사회적인 묘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 주장은 한없이 나이브해집니다. 


주인공은 지금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꿈을 따라서 재즈 피아니스트 공연자가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음악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선택할만한 이유가 있고 도전할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이것이 과연 대다수 사람들의 삶인가 하면,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댇수의 삶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죠.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의 사회적 성공을 전제합니다. 물론 주인공은 영화에서 그렇게 풍요로운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쨌거나 그는 꿈 혹은 안정이라는 두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선택지를 만들기 위해 온 생을 갈아넣죠. 꿈을 꿀 여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제게는 조금 한가해보였습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저승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만 유효해집니다. 아무도 개똥밭에서의 삶을 자처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삶과 꿈이 아니라, 죽음과 삶을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똥밭에서 구를 수 밖에 없을 때 역으로 삶다운 삶은 남지 않게 되니까요. 출생률이 0.9로 떨어지고 대다수 청년의 장래희망은 공무원입니다. 그 공무원조차도 연금이 깎여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죽음이라는 끝을 기준으로 삼아 삶을 긍정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역으로 <소울>의 세계관에서 영혼이 육신을 걸치고 환생을 해야하는지 고민했습니다. 영혼만의 극도로 편안하고 아름다운 내세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오히려 소울이 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영화는 그걸 이뤄지기 직전의 꿈이라는 갈등으로 말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육신지옥 내세천국의 프레임으로는 저연령층을 위협할 뿐인 이야기가 되겠죠. 픽사의 다정한 태도에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아무 불안도 상실도 통증도 없는 대신 아무 감각적 쾌락도 없다는 정신적 무미무취의 세계를 조금 더 강조했다면 그래도 저는 수긍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내세에서도 내내 소란스럽고 쾌활하니 피자맛을 못느끼는 씬에서도 그게 크게 와닿진 않더군요. 역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완벽한 자유는 허무가 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통제하지 못하는 삶의 결핍을 어디까지 참아낼 수 있는가. 삶에 대한 영화라 그런지 죽음을 묻게 되는군요. 어쩌면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도취된 감각이야말로 시궁창 삶을 잊기 위한 최후의 도피처는 아니었는지 좀 독한 반문을 던져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못된 어른은 <소울>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기어이 <위플래시>로 대답하고 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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