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확인해 주세요. 시작부터 초강력 스포일러 밭입니다. 







1.

결말 부분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더기 존스 가족의 결말이었습니다.

제정신을 되찾은 쿠퍼... 를 보는 순간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이 '혹시 얘가 지금껏 있었던 일, 그 감정들을 기억 못 하나?' 하는 거였어요. 

쿠퍼가 바보 상태의 더기 존스로 지내면서 아내, 아들과 조금씩 관계를 맺어 가는 부분들이 저는 참 좋았거든요.

그런데 쿠퍼가 제정신을 찾으면 당연히 밥과 배후들을 추적하러 갈 것이고, 당연히 그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담 도대체 더기 가족은 어쩌나... 라는 걱정이 있었는데.

쿠퍼의 분신을 하나 더 만들어서 더기 가족에게 보내주다니. 이런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라니 데이빗 린치 당신은 도대체... ㅠㅜ

고작 3초 밖에 안 되는 분량으로 지나가긴 하지만 어쨌든 더기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품에 안는 장면. 이것 때문에 제게 트윈픽스 시즌3은 해피 엔딩입니다. ㅋㅋㅋ 로라 따위 알 게 뭐람.


그리고 쿠퍼 입장에서도 딱히 배드 엔딩은 아니었다고 봤어요.

전 진짜 충격과 공포라길래 착한 쿠퍼는 다시 갇히고 나쁜 쿠퍼가 돌아다니며 끝난다거나. 아니면 쿠퍼 주변 인물들 중 누군가가 다시 밥이 된다든가 하는 식의 암울한 결말을 생각했거든요.

지금 결말은 그저 쿠퍼의 여정이 또 다시 시작된다는 것 뿐이지 딱히 '아 이제 다 망했네' 같은 느낌은 아니어서 우울하진 않았습니다.

게다가 어차피 다음 시즌 같은 거 안 나올 거라는 거 우리 모두 알잖아요. ㅋㅋ 감독님하의 악명은 말 할 것도 없구요.


나머지 사람들의 결말 얘길 하자면...

노마와 빅 에디가 린치의 편애를 몰빵 받다시피 한 결말을 맞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뭐 FBI 요원들과 보안관 사무실 사람들도 나름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라고 짐작할만한 하게 마무리되긴 했지만 이 커플은 유독 특별하게, 린치 월드에선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행복하고 로맨틱한 결말을 선사 받아서 말이죠.


셜리도 나름 잘 살고 있긴 하지만 딸래미 인생이 그 모양이고.

바비는... 뭐 원래 이 놈은 인생 잘 풀리길 바랄만큼 멀쩡한 인간이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감지덕지라고 해야겠지만 어쨌든 좀 짠한 상태로 끝났구요.

벤은 완전 인생 피곤한 상태로 폭삭 늙었고 (다시 흑화 안 되고 계속 착한 사람이라 괜히 웃겼습니다 ㅋ) 심지어 오드리는 코마 상태에서 못 깨어난 건지 이미 죽어서 이세계에 가 있는 건지 괴상한 악몽에 갇혀 있는 상태. 

파머 가족이야 다 박살난 상태로 엄마만 살아 있는데 그 엄마는 이미 인간이 아니고, 제임스는 동네 찌질 노총각에 도나는 일언반구 언급도 안 되고 해리는 그냥 은퇴한 것도 아니고 중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뭐뭐... 암튼 결국 노마와 에디만 그토록 러브러브한 엔딩을 맞으니 괜히 궁금합니다. 왜죠. ㅋㅋㅋ



2.

시즌 1, 2에 대해 헷갈리는 것이.

2시즌 방영 중에 시청률이 떨어지자 방송국에서 로라 사건의 빠른 종결을 요구했고 그래서 윈덤 얼이 급조되고 어쩌고 하다가 완전히 망해서 조기 종영했다... 라는 게 위키피디아 등지의 정보이고 중론인 듯 합니다만. 또 어떤 소스를 보면 애초에 두 시즌 에피소드를 한 번에 몰아서 찍었단 얘기도 있단 말입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모양새를 보면 아무래도 전자의 '중론' 쪽이 사실인 것 같은 것이 로라 에피소드가 종결된 이후로 완성도가 급격히 떨어지죠. 특히 기존 등장 인물들 중 퇴장 시킬 사람들을 처단하는 방식이 정말 조악하기 그지 없는데. (르노도, 행크도, 리오도 그렇지만 특히 조시 스토리 쪽 라인 캐릭터들은 정말 막장이라고 밖엔 ㅋㅋㅋ)


시종일관 데이빗 린치 본인 맘대로 찍은 듯한 시즌 3은 좀 달라야 할 텐데 역시 그런 난감한 부분들이 여전해서 좀 웃겼습니다. 잉여 캐릭터, 무쓸모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어 트루먼 보안관의 아내와 가족 얘기는 도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고. 벤의 손자이자 오드리의 아들 녀석도 당최 역할이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굳이 안 나와도 될 녀석이 어린애를 치어 죽이고 목격자 살인 미수까지 저지르는 식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걸 쭉 보여주다가 막판의 그 허탈한 퇴장이라니; 트레일러에서 사는 게 싫어서 동네 마실 다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도 마찬가지이고. 벤과 썸 타는 여자분은 도대체 왜 나왔으며 그 분 집안 사정은 뭐하러 보여준 건지도 모르겠고. 뭣보다 무려 배우를 아만다 사이프리드까지 캐스팅 한 셜리 딸 이야기는 음... 그냥 셜리의 남자 보는 눈이 딸에게 팔자로 계승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ㅅ=;; 게다가 그 와중에 셜리 딸 남편의 외도 상대가 시즌2에 딱 한 회 출연해서 리랜드를 위로하는 시를 읊던 그 유복한 집 모범생 소녀였단 말입니다? 


흠... 그냥 데이빗 린치의 스타일(혹은 한계)라고 봐야 하나요. 


뭐 그래도 팀 로스와 제니퍼 제이슨 리 콤비의 퇴장처럼 골 때리는 장면 같은 건 정말 좋았습니다.

진짜 말 그대로 육성으로 폭소했네요. ㅋㅋㅋ 그렇게 잔인무도한 킬러들이 주차 문제로 다투다 동네 주민 A씨의 기관총 난사에 맞아 죽다니. ㅋㅋㅋㅋㅋ

자동차 안에 앉은 채로 차벽을 관통한 총알에 죽는 걸 보니 그냥 총알도 아니고 철갑탄쯤 되는 것 같던데. 도대체 주민 A씨는. ㅋㅋㅋㅋ



3. 

아. 이게 결국 평행 우주와 시간 반복 루프물이었구나... 라는 걸 처음으로 눈치챈 건 첫 화에 나와서 끔찍한 죽음을 맞는 펜트하우스 커플 때문이었습니다.

분명히 유리 상자 구경하다 목이 날아가 죽은 사람들이 시즌 중반에 쌩뚱맞게 엑스트라로 등장을 하더란 말이죠.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게 분장 시켜 놓고도 혹시나 못 알아볼까봐 굳이 쌩뚱맞은 클로즈업을 잡아주는 친절한 린치옹. ㅠㅜ)

그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선 아예 평행 우주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끝맺기까지 하는데... 저 펜트하우스 커플 때문에 영 거슬리더군요. 결국 시즌 전체 내용들 중에 다른 우주 이야기가 아무 힌트 없이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니. 


하지만 뭐 저야 그런 거 찾아보고 따져 볼 여력이 없는 아재라서 말이죠. 그냥 '아,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맘 먹었습니다. ㅋㅋ


암튼 이런 설정들도 그렇고 8화에서 뜬금 없이 튀어 나오는 핵실험 장면과 이후에 이어지는 얘기들도 그렇고 뭔가 엑스 파일 같은 분위기가 많았습니다. 그 엑스 파일도 비슷한 시기에 새 시즌이 방영되었다는 게 좀 재밌는 우연이네요. 뭐 트윈픽스야 (원래는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넣었을) 마지막 회에서 로라의 25년후 드립 때문에 나온다면 이 때 나올 수밖에 없기도 했습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어째서 구체적으로 '25년'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선 끝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네요. 원래 이 드라마가 다 그렇지만. ㅋㅋㅋ



4. 

이토록 친절하고 상냥한 린치옹이지만 그 와중에 정말 독하다 싶었던 건 더기 캐릭터를 밀어 붙이는 그 무시무시한 뚝심이었습니다.

전 당연히 초반, 길어야 중반 들어서면 쿠퍼가 정신 차리면서 더기와는 빠이빠이하게될 줄 알았죠.

시즌 끝나기 직전까지 쿠퍼가 더기 상태를 유지할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ㅋㅋ 아오 진짜 16화 분량 내내 기다렸다구요. ㅠㅜ

오랜 기다림 덕택에 쿠퍼 특유의 그 말투와 입담이 튀어나오는 순간 쓸 데 없는 감동까지 받긴 했습니다만. (제에가 F.B.I입니다!)

이후로 영영 빠이빠이 하는 그 순간까지 그 즐겁고 귀여운 커피 & 파이 덕후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도 안 되었다는 점에서 역시 린치 이 나쁜 놈...;


하지만 뭐 더기 스토리가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저 위에도 적었듯이 더기네 가족들이 워낙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었고. 포레스트 검프 마냥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사악한 세상의 악의와 음모들을 헤쳐 나가는 더기의 모습도 훈훈하게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미첨 형제들도 이 시즌에서 가장 재밌고 귀여운 악당들이었고 캔디... 하하하.


그저 에프 비 아이 스페셜 에이전트 데일 쿠퍼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을 뿐이죠.

뭐 카일 맥라클란이야 1인 3역으로 시즌 분량을 시종 하드캐리하고 있었지만 (게다가 참 잘 하더군요. 허허) 쿠퍼가 아니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라구요. 흑흑.



5.

뻘소리지만 어차피 이 글 자체가 뻘글이니까.

시즌 1, 2, 3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란 게 있다면 핵실험이고 우주의 악이고 자시고 간에 '배우자를 잘 고릅시다!' 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면 결국 온통 다 남편, 아내, 애인 잘못 골라서 인생 꼬인 사람들 뿐이어서 말이죠.

시즌 1, 2에선 정말 노골적이었고 (특히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가지는 여자 캐릭터가 엄청 많았죠) 막장 드라마 요소가 거의 사라진 시즌 3조차도 마찬가지더라구요.

어찌보면 데이빗 린치의 취향이 겉보기와 다르게 통속극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제너럴 호스피털' 같은 역사적 소프 드라마의 광팬이었다든가(...)


(바로 윗 문장 적다가 '제너럴 호스피털'이 아직도 방송 중이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누계 14000 에피소드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ㄷㄷㄷㄷ)



6. 

쿠퍼의 부재 중에 그나마 이야기를 이끌어가 주던 정상적인 캐릭터... 라고 하면 일단 호크가 있겠지만 제가 믿고 의지했던(?) 캐릭터는 바로 알버트였습니다.

시즌 1 부터도 그 압도적이고 초현실적인 싸가지에도 불구하고 가장 정상적으로 논리적인 인간의 사고를 보여주던 인물이었죠.

시즌 2 막판에서 개심한 덕에 시즌 3에서는 내내 그냥 정상적인 FBI 요원으로 등장해서 이 싸이코 천지 드라마에서 안정감을 전해주는 고마운 역할을 해 줬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감상 종료 후에 찾아 보니 이 분이 시즌 3이 시작하기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더라구요.

막 정들자마자... 흠. 괜히 아쉽습니다. 명복을.



7.

시즌 1, 2를 보면서 내내 의심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시즌 3을 보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슨 미식가이자 음식 비평가처럼 폼을 잡지만 결국 쿠퍼 이 양반은 그냥 커피콩 볶아서 갈아 넣은 물이라면 다 좋아하고 체리 파이라면 무조건 환장하는 아주 쉬운 입맛의 소유자였다는 걸요. 뭐 그냥 어디 가서 뭘 먹어도 매번 그렇게 행복해하니. ㅋㅋㅋㅋ



8.

암튼 그래서...




이 드라마는 해피엔딩이란 말입니다. ㅋㅋㅋ

라는 억지로 산만한 잡글을 마무리합니다.


끄읕.

덕택에 한동안 즐거웠습니다 린치옹.




+ 사족.


글을 마무리 하기 전에 오드리 팔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 보니...

제 생각과 전혀 다르게, 죽었거나 코마에 빠졌거나 한 게 아니었네요;

2시즌 막판의 은행 금고 폭발로 인한 코마 상태는 몇 주만에 끝났지만 그 후에 나쁜 쿠퍼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임신을 했고, 출산 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살다가도 그 때의 기억을 극복 못 해서 스스로 모 처에 갇힌 상태로 세상과 연을 끊고 살고 있는 거라네요. 뭐여 이게 무려 오피셜이라니... orz

안 그래도 나쁜 쿠퍼가 오드리 아들 죽었을 때 '잘 가라 내 아들' 이라길래 이건 또 뭔 소린가 했었죠. 허허;


++ 사족 2.


아무래도 데이빗 린치는 아주 소심한 인종차별 주의자이거나... 뭐 무의식 중에라도 그런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시즌들에서 유색 인종들에 대한 묘사가 좀 거시기하단 느낌을 받았었는데. 2017년으로 제작 환경이 업그레이드 되다 보니 그 정도로 괴상망칙하진 않지만 여전히 좀 그래요. 호크를 제외하곤 비중도 없고, 다루는 방식도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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