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1 14:59
본문에 앞서,
최근에 성범죄 관련 무고에 대한 수사지침과 관련하여 사회적인 논란이 일어나고 있고,
또한 관련 문제에 관한 법적인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정보의 제공 차원에서 적는 것일 뿐
보배드림 판결의 당부당을 따지거나 '피해여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아래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임도 아울러 밝힙니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는 내용의 고소가 있었고, 제1심 법정에서 피해자는 동일한 취지로 증언을 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이 인정되어 강제추행죄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상황입니다.
이에대하여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주장이 인정되어
'신체접촉사실은 인정되나 움켜쥔 것이 아니라 실수로 부딪힌 것이므로 피고인에게 강제추행의 고의가 없어 무죄'
라는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우선 무고죄에 관해서.
형법 제156조(무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어? 법원에서 움켜쥔게 아니라 부딪힌거라고 했으니 여자는 거짓말한거네? 그럼 무고아냐?"
라는 생각을 해봄직도 합니다.
그러나,
범죄피해를 신고하는 사람은 억울한 마음에 다소 사실을 과장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입니다.
일종의 인지상정이지요.
심각한 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에게 냉정함과 객관성을 잃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사실만을 신고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따라서 무고죄의 요건인 '허위의 사실'을 글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억울한 사람을 두번 죽이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그래서 이에 관해 우리 대법원은 "설령 고소사실이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에는 무고에 대한 고의가 없다 할 것이고, 고소내용이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 아니고 사실에 기초하여 그 정황을 다소 과장한 데 지나지 아니한 경우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도5939 판결 참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고소내용이 사실과 반하더라도 이는 착오에 의한 것이어서 허위성에 대한 인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설사 스친 것으로 느꼈는데 '움켜쥐었다'고 고소한 것이라도 판례의 기준에 따르면 '정황의 과장'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두 사람 간에 사전에 어떠한 원한관계가 있었다거나 원한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거기까지 검토하는건 이미 가정이 아나라 망상의 영역이겠으므로 일단 여기까지만.
그다음 위증죄입니다.
형법 제152조(위증, 모해위증) ①법률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이 허위의 진술을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개된 판결문을 보면 증거의 요지 중 "증인 OOO의 법정진술"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이 증인 OOO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를 설명하려면 먼저 형사소송에서의 증거인부절차에 관해 설명해야 하고 그러러면 그 전제로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에 관한 길고 지루하며 알아먹기도 힘들고 딱히 알 필요도 없는 내용까지 설명해야 하므로 생략합니다.
그냥 제일 중요한 증거니 심리가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셔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아무튼 피해자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피고인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내지는 움켜쥐는걸 느끼고 바로 뒤돌아 항의했다'는 취지로 증언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위에 무고부분과 마찬가지로 "사실과 다른 내용의 증언을 했으니 위증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위증죄에 있어서 '허위의 진술'은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진술'을 의미합니다.
즉, 객관적인 사실 여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설령 객관적인 사실과 반하더라도 자신의 기억에 따라 진술했다면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설령 착각일지라도 정말 움켜쥔 느낌으로 기억하여 그대로 증언했다면 위증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경우 판결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움켜쥔 느낌인지 단순하게 부딪힌 느낌인지가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다루어진 상황이므로
만약 단순히 부딪힌 기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과장하여 '움켜쥔 느낌'으로 증언한 것이라면 이론상으로는 위증이 성립할 수도 있겠으나
이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고 또한 실무상 이정도 내용이라면 설사 기억에 반하는 진술이라고 하더라도 위증으로 기소하지는 않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면,
설사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주장이 인정되어 무죄판결이 선고되더라도 피해자가 무고나 위증으로 처벌받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가 되겠습니다.
끗.
2018.09.11 17:46
2018.09.11 18:06
변변찮은 글인데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9.11 17:54
무죄와 거의 같은 형사 처벌은 없나요.
2018.09.11 18:08
'선고유예'라는게 있습니다.
'집행유예'하고는 다른건데요,
분류상 유죄판결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는 하는데,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라는 판결 주문이 나고, 2년이 경과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하여 전과가 남지 않습니다.
2018.09.11 18:19
흠.....
아,,,,모르겠습니다.
움켜쥐었다면 유죄이고 죄값을 치뤄야 합니다. 그게 6개월이든 1년이든...
가능한 형량 내에서 선고가 내려졌겠죠....
하두,,,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아서...
전혀 터치가 없었는데, 혹은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스쳤는데,,,, 이렇더라도 6개월 유죄선고가 가능한 상황이란게 황당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움켜쥐었다면, 6개월이든 1년이든, 전 상관하지 않습니다. 과하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아요.
2018.09.11 18:25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딱히 반박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님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양형이라는건 의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2018.09.11 20:22
얼마 전에 과학수사 관련 다큐에서 종이에서도 지문 채취가 가능해졌고 완전한 지문이 아닌 조각 지문으로도
범인을 밝힐 수 있어서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죽은 성폭행 피해자의 살갗에서 지문을 채취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고요.
https://news.joins.com/article/2834255
조만간 천에서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게 되면 이런 논란을 조금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장갑을 끼고 성추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여름에 장갑 끼고 성추행할 사람은 없겠죠?
=========================================================================
성추행은 용의자가 눈 앞에 있으니 이런 방법을 써서 수사하면 안 될까요?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73XXXKSN5346
2018.09.12 10:57
과학수사가 확대되는건 분명히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문제가 있어요.
일단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된 방법이 아니라면 재판에서 증거능력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전국적으로 대규모 조직을 갖추고 있고 제식화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군대와 유사한데,
새로운 과학기술이 발견된다고 해서 군용소총을 그때마다 전부 갈아치울 수 없는 없는 상황과 비슷한거죠.
과학수사인력은 고학력+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한 고급 수사인력이고 관련 장비를 갖추는 데도 상당한 비용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고급인력을 전국에 걸쳐 대규모로 운용하기에는 예산과 인력풀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 돈 많은 미국에서도 모든사건에 CSI를 투입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CSI드라마가 히트한 후 미국 검사들이 고생이 많이 늘었다는 풍문을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배심원들이 드라마에서 보니 과학증거 뚝딱뚝딱 나오던데 왜 그런거 없이 재판하냐면서 따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하드라구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몇년전부터 성범죄 피해자가 아동이거나 정신지체 장애인인 경우에는 피해진술에 관하여 수사단계에서부터 학식을 갖춘 진술분석전문가로부터 의견조회를 하도록 법에 명시를 해 놨습니다.
근데 우리나라에 이런거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 사실 많지 않거든요. 근데 성범죄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져요.
결국 제대로 된 교육이나 수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명목상 전문가랍시고 되도않는 의견서를 써제껴서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2018.09.11 23:35
모르는걸 또 하나 배웠습니다. 무고와 위증에 관하여 본문에서 설명하신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무고와 위증이 정확히는 저런 뜻이구나라고 이제야 알았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것이 있다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무고/위증도 아닌 단순 과장 진술 같은 상황에서 1심에서 나온 판결이 실형구형이라하고 2심에서 무죄가 나온다 할 때.
1심의 판결만으로 가해자 측이 직장에서 해고 된다거나 (복직불가) 자영업자 같은 경우 1심의 판결로인해 영업적 손실이 나온다면 (영업적 손실을 법적으로 입증가능하다고 할때),
아무리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는다해도 이미 일어난 손실의 경우에는 어떻게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가 궁금해집니다.
2018.09.12 00:13
억울한 옥살이에 대해 국가에 대한 보상청구는 가능할 겁니다. 어차피 기소는 검찰이 한거니까 피해자나 증인과는 관련이 없죠.
2018.09.12 10:36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무죄판결을 선고한 법원에 신청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이런저런 듣기좋은 내용들이 써 있기는 합니다만,
핵심적인 내용은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보상은 구금일수 1일당 최저임금액x5배가 상한선입니다.
실제로는 벌금형 선고시 환영유치처분 액수에 준해서 일당 10만원으로 계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밖에 형사소송법상 비용보상으로 변호사비용중 일부(국선변호료에 준하여 심급당 150~200만원)가 보상됩니다.
기소한 검사나 판결한 판사의 고의나 과실 입증이 가능하다면 그 밖의 손해에 대해 형사보상 이외의 국가배상청구도 '이론상으로' 가능하긴 합니다만,
군사정권시절의 시국사건 류 이외에는 청구가 인용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노동법쪽으로 보면, 근로자가 구속으로 인하여 출근하지 못함을 이유로 하는 해고는 근기법상 해고의 정당한 이유로 인정되므로 해고 이후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해고는 유효하고, 회사가 해당 근로자를 복직시켜야 하는 등의 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게 판례의 입장입니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형사보상금으로 지급되는 금액을 넘는 손해는 피고인이 뒤집어 써야 합니다.
물론, 무고가 인정된다면 상당인과관계 내의 손해에 관해서는 무고한 사람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하구요.
사안에 대한 견해를 떠나 어쨌든 많은 도움이 되네요.
바쁘실텐데 의견적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