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의 흥망성쇠를 체험해보지 않은 입장에서 저는 개인적인 추측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마 당사자보다는 외부적 관찰자의 시점을 갖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는 평균 조회수가 2000에서 4000을 호가하던 듀나게시판이 지금은 어림잡아 평균 400에서 600의 조회수만 나오고 있다는 건 명시적인 현상입니다. 즉 이 게시판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를 게시판의 노화 현상이라고 하셨는데요. 아마 신체적인 노화에 빗대어 게시판의 글도 반응도 이전보다는 훨씬 더 침체된 상태를 가리킨 표현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듀나게시판은 갑자기 늙었냐는 것입니다. 어떤 커뮤니티들은 활동하던 고정닉들이 물갈이가 되고 커뮤니티의 성격도 변화하지만 그래도 글의 리젠이나 조회수는 어느 정도 평균점을 유지합니다. 궁금해서 다른 영화커뮤니 디브디 프라임을 살펴봤습니다. 10년도 10월 게시물의 조회수가 2000에서 3000정도 나오는데요. 현재 22년도 8월 최근의 게시물들의 조회수는 떨어져서 1000 아래의 게시물도 꽤 있습니다. 디브디 프라임도 게시판이 노화됐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평균적으로 조회수 1000이 넘는 게시물들이 듀게보다는 훨씬 더 많습니다. 올라오는 글의 갯수도 많구요. 익무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익무가 시사회 당첨이라는 현실적 보상으로 회원 이탈을 막고 있어서 조회수가 잘 나오고 있었다면, 디피는 왜 듀게보다 덜 노화됐냐는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디피에서도 시사회나 다른 이벤트를 하긴 합니다. 그런데 익무보다는 훨씬 더 당첨자 수도 적고 올라오는 시사회들의 양도 적습니다. 그러니까 딱 시사회하는 만큼만 디피가 듀게보다 덜 늙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럼 반대로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시사회도 잘 안하는데 초창기 듀게에는 뭣 때문에 조회수가 잘 나오고 글들도 더 많이 올라왔냐는 겁니다. 지금이나 그 때나 듀게가 시사회로 활발해진 곳은 아니었으니까요. 시사회가 없으니까 회원들이 이탈한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 반대의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왜 시사회도 없는데 여기 듀게가 초창기에는 조회수가 많이 나왔냐는거죠. (듀게를 찾아보니 이 게시판에서 최초의 시사회는 2013년 5월달입니다. 업그레이드를 하기 전 이 게시판의 최초 게시물은 2010년 6월달입니다)


시사회 여부보다 더 주요한 유인력이 이 듀나게시판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은 사라져있죠. 노화라 함은 시간의 흐름을 뜻합니다. 그런데 듀게의 이 노화 속도는 다른 영화 커뮤니티들보다 유난히 심합니다. 1000단위의 평균 조회수를 유지하던 게시판이 갑자기 100단위로 훅 늙어버렸습니다. 특정 회원들의 풍파 때문에 회원들이 이탈했다는 것은 커뮤니티 경험 상 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커뮤니티에서 특정회원들이 다수의 불편을 사면 그 회원이 축출되는 쪽으로 진행되지 그 회원 때문에 수천명의 회원들이 다 나가거나 활동을 중단하진 않습니다. 이런 단순한 커뮤니티에서는 집단이 개인을 무조건 이깁니다. 


정말 면밀하게 살펴보려면 각 연도별, 월별 조회수를 비교해봐야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무리...


듀나게시판은 초창기에도(현재 이 게시판을 뜻합니다) 글들이 올라오는 형태가 이렇더군요. 영화글들이 일상글들 사이에 올라오던 형태입니다. 그러니까 이 커뮤니티에 주력으로 올라오던 컨텐츠들의 분포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듀게의 가장 큰 핵심은 영화라는 컨텐츠보다도, 이 커뮤니티를 차별적으로 만드는 게시판지기의 존재 자체가 듀게의 유인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종의 팬까페에 더 가까운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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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연역적으로 말해서 민망스럽지만, 저는 페미니즘 이슈가 듀나게시판의 회원 이탈을 불러오지 않았나 추측해보고 있습니다. 공개된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남초 커뮤니티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듀나게시판은 남초 커뮤니티의 성격이 비교적 옅은 편이지만 그래도 여초 커뮤니티는 절대 아닙니다. 이런 공간에서 페미니즘 이슈로 충돌이 생기면 회원들이 이탈하는 결과만 생길 것입니다. 남자회원들은 남자들대로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자회원들은 여자들대로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 회원들에게 실망해서. 궁금해서 페미니즘 키워드로 검색을 해봤더니 메갈리아 이슈도 나오고 그 안에서의 격렬한 논쟁들도 보입니다. 그리고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메갈리아에 대한 정확한 진단글들도 여럿 보입니다. 


SNS로의 이탈을 많은 분들이 이야기해주셨는데, 저는 왜 듀게에서 SNS(특히 트위터)로 이탈했는지 그 이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듀게에는 있기 싫고 트위터에는 있을만한 그런 이유가 저는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메갈리아의 대두로 인해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급부상했고 그 때문에 해당 이슈가 보다 즉각적으로 수용되는 트위터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테니까요. 트위터에서는 페미니즘 이슈로 굳이 반목하거나 한 공간에 상주하면서 다른 의견에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거든요. 그리고 그리고 "이해자"들의 숫자는 훨씬 더 많습니다. 다른 커뮤니티들에 비해 듀나게시판의 변별점이 사라지는 거죠. 애초에 이 커뮤니티가 영화에 대한 호응보다 듀나님의 정치성향에 대한 지지로 활성화된 것을 상기해본다면요.


페미니즘 이슈가 보다 생존에 직결된 이슈로 소비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이슈에 대한 입장차이는 단순한 차이로 남지 않습니다. 반대자들과는 한 공간에 머무를 수조차 없는, 강력한 결별의 이유가 됩니다. 이것은 듀게가 다른 영화 커뮤니티들에 비해 훨씬 더 정치적이었고 급진적이었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을련지요. 단순한 취향의 공간이 아니기에 정치적 대립이 훨씬 첨예하게 일어납니다. 익무나 디피는 듀게에 비해 조금 더 영화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왔었구요. (물론 익무 같은 경우 반대방향으로 운영자가 첨예하게 대립한 끝에 회원들의 대거 탈퇴를 일으켰지만...)


요약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듀나게시판은 애초에 '듀나'라는 정치적 아이콘이 구심점이 되어 사람들이 모였던 커뮤니티다, 이 커뮤니티의 정치성이 페미니즘 이슈와 합쳐졌다, 해당 이슈에 정치적인 다수 회원들이 타협하는 대신 동조자들이 훨씬 많고 반대자들은 직접 차단할 수 있는 트위터로 이동했다... 이렇게 길게 써봐도 그냥 제 뇌피셜에 가깝습니다. 메갈리아 이슈 이후의 조회수 변화 여부를 확인해볼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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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페미니즘 이슈가 단순히 안티페미니스트나 회색분자를 자처하는 무당파와의 충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이슈는 페미니즘 자체가 아니라, 갈등주의자와 안티갈등주의자의 대립의 측면도 큰 것 같습니다. 이른바 비정치성의 환상으로 가장 정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과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성을 가진 사람들이 충돌하는 구도인거죠. 예를 들어 무슨 시위를 보든 꼭 저렇게 시위를 해야하나 쯧쯧... 하면서 시위 자체에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안티갈등주의자들일 것입니다. 시위의 내용은 상관없습니다. 어떤 소란이 일어나거나 어떤 사회적 충돌이 일어나면 그 자체를 고까워하면서 그냥 싫어하는거죠. 대립이나 갈등을 일단 덮어놓고 화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습니다. 메갈리아를 두고서도 그런 주장들이 대세를 이뤘었죠. 여성인권에 관한 문제의식은 공감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 과격하고 욕을 하고 미러링을 해야하느냐는, 갈등(의 방식)에 대한 반대파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모든 민주주의사회가 이슈에 대한 찬반파의 대립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찬반파의 싸움으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저는 이 대립이 듀게 회원의 대규모 이탈을 일으키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듀게에 그런 안티갈등주의자가 유난히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라는 형태가 이 안티갈등주의자들을 양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깔립니다.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보수적이며 안티갈등주의자들이 더 선호하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니까요. 다수가 모이면 당연히 그 다수가 다 같이 친하게 지낸다는 공통의 목적을 수행하려 애씁니다. 커뮤니티는 친목과 화합을 위한 보수적 공간입니다. 무엇을 위한 친목이 아니라, 친목 자체가 목적이기에 다른 모든 분쟁과 개인적 입장들을 묵살합니다. 저는 듀게의 회원들이 애초부터 정치적이었기에 이 보수적인 '커뮤니티'의 구조를 견디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사람이 더 많았다면 그런 강제적 평화의 압력은 더 강했지 않았을련지요. (익무 사태는 반대로 운영자가 이 안티갈등주의를 밀어붙인 결과입니다. 한 개인이 한 집단의 갈등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만이죠)


이 전제에서 저는 다른 질문을 이어가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제의 듀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는 거죠. 가장 끝과 끝을 일단 정해볼 수 있겠습니다. 갈등주의자라서, 페미니즘 논쟁의 시기를 지나면서 이 커뮤니티 안에서조차 갈등을 일으키거나 제시하며 활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한쪽 끝에 있습니다. 반대쪽 끝에는 

페미니즘 논쟁의 시기를 겪고서도 모든 갈등을 불편해하며 일단 여기 모인 사람들끼리는 갈등하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이 사이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더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듀나라는 갈등주의자의 커뮤니티안에서도 안티갈등주의를 표방하며 꿋꿋하게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민감한 사람의 커뮤니티에 머물면서도 자신의 안티갈등주의를 관철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보수성이 보통은 아니겠지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들은 본인들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눈치채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무감각함으로 이 커뮤니티에 머무르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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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암울한 결론으로 이 글을 끝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듀게의 회원수는 과연 반등할 수 있을 것인가. 제가 볼 땐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커뮤니티"라는 구조의 보수성에 질려서 사람들이 떠났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집합과 의견 교류를 굳이 다시 찾아올 이유가 없거든요. 갈등주의자들의 보다 급진적이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트위터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에는 그런 의견 개진이 없습니다. 듀나님도 당장 트위터에서 더 많이 떠들고 있습니다. 어떤 갈등에 대해서는 아직도 반사적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이 커뮤니티에 많습니다. 듀게의 잠재적 소비자들이 굳이 듀게에서 활동할 메리트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정치성과 무관한 (영화) 컨텐츠들은 다른 커뮤니티들에서 훨씬 더 빠르고 많이 올라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에서의 질적 발전을 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남아있는 갈등주의자들이 더 첨예하되 안정적인 컨텐츠들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원들의 유입을 불러오기는 어려오도 이 게시판이 유지가 되는데는 도움이 되겠죠. 이런 질적 개선이 만약 일어난다면 안티갈등주의자들의 활동은 더 줄어들 것입니다. 굳이 머리아프고 피곤하기만 한 글들을 읽을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반대로 안티갈등주의자들의 글은 갈등주의자들의 이탈을 더 자극할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익무를 보면 조금 예상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 일어난 정치적 갈등을 막기 위해 운영진은 극도의 일상성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운영진이 아무 잘못도 한 게 없고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운영진이 직접 영화글을 올리고 정치성의 개입을 틀어막고 있으니까요.


또 하나의 방향은 보다 내밀한 친목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 게시판에 남아있는 갈등주의자들이라면, 이 안에서의 안정을 추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등주의자들이라고 시종일관 싸우고 피곤한 대립을 원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갈등이란 것은 목적이 아니라 조금 더 엄밀한 기준을 갖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가 볼 때 듀게는 이미 이런 방향으로 이미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커뮤니티 자체의 존속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갈등주의자들끼리의 보수화에 그칠지 (이미 다 아는 갈등이고 의견이 얼추 합치되어있어서 갈등을 굳이 전개시키지 않음) 갈등주의자들끼리의 심화된 갈등으로 이어질지.


그렇다면 일단 달성가능한 현실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죠. 이미 모범사례 회원들이 몇분 계시니 전 그분들을 본받으며 심폐소생에 더 박차를 가해야겠습니다 ㅎㅎ


@ 어제 저녁에 쓰다가 잠들었습니다... 맥거핀님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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