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군상...(존경)

2017.10.17 07:36

여은성 조회 수:1272


 1.운동다니는 곳의 트레이너들 실력은 좋아요.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뭔가를 엉뚱하게 잘못 알고 있어서 잘못 가르치거나 하는 건 못 봤으니까요. 하기야 모든 게 전문화 되어가는 요즘은 자격 없는 트레이너 보기도 힘들겠지만요.


 물론 그들은 좋은 트레이너겠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요. 운동을 좋아하고 곧잘 하는 사람들에겐 동작을 정확하게 수행하는 법만 알려주면 알아서 운동을 잘하거든요. 그들에게는 운동의 즐거움이라는 보상이 따라오니까요.



 2.하지만 나는 아니거든요. 게으름의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아무리 pt를 해도 그때 뿐이예요. 제아무리 잘 가르치는 트레이너가 있어도 이러면 소용없죠. 운동을 안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내게 트레이너는, 지식만이 아니라 동기부여도 전달해 줘야 하는 존재죠. 그야 동기부여라고 해도 멋진 몸을 가지거나 예쁜 여자를 만나야 한다거나 건강해져야 한다...뭐 이런 건 동기부여가 안 돼요.


 그리고 내게 운동은 절대 즐거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늘 최고의 효율을 추구해요. 운동도 노동이니까요. 똑같은 시간과 귀찮음을 들여서 할 거면 최대의 효율을 내야죠. 그래서 트레이너가 운동 메뉴를 짜줄 때도 일일이 설명을 듣곤 해요. 운동 메뉴에 겹치는 건 없는지, 똑같은 시간을 들여서 좀더 효율좋게 할 수 있는데 놓친 게 있는지 등등요.


 언젠가 썼듯이 모든 건 밀도와 농도의 차이잖아요. 단련과 혹사는 사실 같은 말이예요. 회복이 가능할 정도로 혹사시키면 단련인거고,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혹사시키면 혹사인거죠. 어차피 같은 시간동안 운동할 거면 할 수 있는 만큼 혹사에 가깝게 단련하고 싶은 마음이예요. 


 

 3.그래서 덤벨을 배울 때는 혹시 각각 한손씩이 아니라 양손으로 해서 시간을 2배로 단축할 수는 없는가...상체운동(대흉근)을 할 때는 인클라인벤치, 스미스머신, 덤벨벤치 중 뭐가 가장 동시간 대비 힘든 운동인가를 꼬치꼬치 물어대곤 했죠. 


 그러면 트레이너들은 왜 덤벨을 한손씩 해야 하는지...비슷한 동작으로 보이는 상체운동을 왜 따로 병행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줬어요. 정확한 동작을 수행하는 법과 함께요. 많은 질문을 하고 나면 '트레이너님도 알겠지만, 인간들은 게으르잖아요. 보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죠. 그래서 내가 이걸 하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뭔지 물어봐야 했어요.' ...라고 한마디 덧붙이곤 했죠. 이해해달라는 뜻으로요.


 

 4.휴.



 5.몇 개월 전 새로 온 여자트레이너가 있는데 지금까지 본 트레이너들 중에선 가장 뛰어난 트레이너인 것 같아요. 


 여담인데, 어느날 골프 트레이너와 한 아저씨의 대화를 보게 됐어요. 골프 트레이너는 어떤 시즌에서 8위인가를 달성했다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그녀의 자랑거리인 것 같았어요. 아저씨는 골프 트레이너에게 따지듯이 왜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묻고, 골프 트레이너는 차가운 표정으로 레슨하느라 바빴다고 대답하는 상황이었어요. 나는 아저씨에게 외쳐주고 싶었죠.


 '이봐 아저씨! 그 여자의 표정을 봐! 지금 아저씨를 전신전령으로 거부하는 중이잖아! 모르겠어? 저 여자는 절대 바쁘지 않았다고!'


 라고요. 어쨌든 나는 그 광경을 보고 결심했어요. 앞으로는 절대로 트레이너들에게 전화걸거나 카톡을 하지 말자고요. 밖에서 만나고 싶으면 얼굴을 보고 직접 얘기해야겠다고요.  



 6.그리고 나는 위에 쓴 새로 온 여자트레이너에게 밖에서 만나자고 하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라고 하겠지만...여자트레이너는 그렇거든요. 실력이 '충분히' 좋지 않으면 '트레이너'는 사라지고 '여자'만 남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 본 여자트레이너 중에 실력이 '충분히 좋은' 여자트레이너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혹시 오해할까봐 써두자면, 남자트레이너들에게도 그 기준을 적용하면 '실력이 충분히 좋은' 남자트레이너 역시 한 명도 못 봤어요.


  

 7.하지만 이 트레이너의 설명이 시작되면 나는 20세기 과학자들의 명언을 떠올리게 돼요.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말을 말이죠. 똑똑하건 아니건, 자신의 인식 밖에 있는 건 물어볼 수가 없잖아요? 사실 질문이란 건 그래요. 내 생각에, 진실을 가리키는 제대로 된 질문은 진실에 딱 한 발짝 모자랄 때에야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진실과의 거리가 너무 멀 때...내가 뭘 알아야 하는지도 모른다면 물어보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거예요.


 나는 30년 넘게 살면서 묻지도 않은 걸 지껄이는 놈들은 많이 봤어요. 그들이 떠드는 내용의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요. 한데 이 트레이너는 뭔가를 설명할 때마다 문제도 안 듣고 정답을 척척 맞춰내는 것처럼 설명을 하거든요. 내가 듣기 전까지는 듣고 싶었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말해주죠. 그녀의 강의을 듣고 있다 보면 인간의 몸에 독립된 부위는 없고 모든 부위가 서로서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라는 걸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귀찮아서 스트레칭따위는 안하지만, 그것도 그녀의 설명을 듣고 나면 하게 되곤 해요.


 각각의 부품을 상호작용시켜서 좀더 고기능의 유기체가 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머리로 이해하면, 나는 며칠동안은 운동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는거죠. 



 8.그래서 그녀에게 밖에서 만나자는 둥의 헛소리를 절대 안 하는 건 나름대로의 존경의 표현이예요. 자신이 하는 일을 충분히 잘 하는 장인인 걸로 그녀의 기능은 다 발휘되니까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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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능보다는 고성능이 맞는 말이겠네요. 


 밤을 새버려서 조금이라도 자야 하나 하는 중이예요. 달콤한 원수가 한 시간 후면 시작하는데...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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