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작입니다. 한국에선 그 다음 해에 개봉했지만요. 런닝타임은 국내 개봉(삭제)판이 1시간 50분, 무삭제판이 2시간 13분이구요. 스포일러... 있어요. 이 정도 영화면 굳이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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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추억의 영화류의 포스터를 고를 땐 그냥 제게 가장 익숙한 걸로 고릅니다.)



 - 어쩌다보니 본의가 아니게 여러 번 보게된 영화였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일이 일찍 끝나 집에 돌아가려다가, 벌건 대낮에 귀가하는 게 싫어서 극장에 갔더니 요게 하고 있길래 그냥 봤어요. 뭐 재밌었죠. 며칠 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저 빼고 다 이걸 안 봤다길래 또 봤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친구랑 비디오방(아마 거의 초창기였죠)에 갔는데 그 놈이 이걸 보고 싶다길래 또 봤구요. 연말엔 누나가 비디오를 빌려왔길래 또 보고. 그러다 언젠간 명절 티비에서 해주는데 다른 할 일이 없어서... 등등등. 근데 아마 저 정도로는 특별히 많이 본 편에 속하지도 않을 거에요. 그 시절 이 영화의 한국 인기를 생각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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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장면과 의상, 조합은 대체 한국에서 몇 번이나 패러디됐을까요. ㅋ)



 - 그렇게 많이 봤지만 21세기 들어오고나선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거에요. '확장판'도 안 봤습니다. 그렇게 20여년만에 다시 보면서 당연히 '지금 보면 아무래도 좀 별로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봤죠. 그 세월 동안 뤽 베송의 네임 밸류도 많이 변했구요. 또 나이 먹은 아저씨와 12세(...)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것도 거슬릴 것 같고. 혹시 게리 올드만의 스탠 연기도 지금 보면 똥폼 아닐까? 등등 생각을 하며 봤는데요.


 어라? 의외로 지금 봐도 되게 재밌네요. ㅋㅋㅋ 처음 재생할 땐 조금 보고 끌 생각이었는데 그냥 끝까지 한 번에 달려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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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김 없이 촥촥 내달리다가 조용히 마무리 되는 도입부의 액션 시퀀스는 지금 봐도 참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감 있게 잘 짜여졌다 싶었구요.)



 - 그러니까 영화가 되게 소박하면서 알찹니다. 

 당시에도 블럭버스터 같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 보면 훨씬 더 그래요. 배경이 뉴욕이라지만 리틀 이탈리아라는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또 실제로 이런저런 사건들이 벌어지는 공간은 빈민가의 아파트 아니면 허름한 모텔방과 그 앞 복도로 끝. 대단한 폭파씬도 없고 뭐뭐... 요즘으로 치면 한국산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 해도 '액션 영화'라는 타이틀을 걸고 만든다면 이보단 훨씬 스케일이 클 거에요.


 그런데 거기 들어가 있는 액션 장면들이 하나 같이 다 아이디어가 있고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도입부의 그 공포 영화삘 연출도 좋구요. 스탠과 부하들이 마틸다 가족들을 살해하는 부분도 복잡한 아파트 구조와 음악을 활용해서 평범한 학살 장면(?)을 되게 긴장감 넘치게 만들죠. 또 마지막 경찰 특공대와 레옹이 벌이는 일전은 도입부의 그 호러삘을 재활용하는 듯 하면서도 그 좁아 터진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면서 레옹의 먼치킨급 전투력을 맘껏 과시합니다. 뭐 좀 능력치가 과다해서 만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영리하게 잘 찍어서 재미란 게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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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뻔히 문 열어줄 상황인데도 긴장감 있게 연출을 잘 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 연기도 훌륭하구요. 특히 문 열리는 순간이 참.)



 - 정말 의외였던 건 드라마 쪽이었습니다.

 어차피 다 아는 이야긴데 뭐 별 거 있겠어... 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장면장면에 디테일과 캐릭터에 대한 암시 같은 게 가득 채워져 있더라구요. 마틸다의 고통과 당돌함이나 레옹의 외로움과 순박함, 둘이 만나서 서로에게 주는 위로. 이런 게 처음부터 주욱 참으로 착실하게 빌드업이 되어 채워져갑니다. 따져보면 참 단순하고 나이브한 이야기이긴 한데, 어쨌든 되게 성실하게 들려주는 단순하고 나이브한 이야기였어요. ㅋㅋ 뤽 베송이 이 시절까진 참 유능한 감독이었구나.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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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가아가한 포트만씨 보세요. 어이구...)



 - 사실 그 이야기 자체는 뭐랄까... 문제(?)도 있고 또 한계도 있고 그렇죠.

 일단 거의 동화나 어린이 소설 수준으로 이야기가 심플하고 나이브합니다. 고독한 두 사람이 살았대요. 그러다 둘이 함께하게 되어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나아쁜 사람들 때문에 영영 이별을 하게 되구요. 남겨진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을 생각하며 굳세게 살았답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다지 '현실적'으로 치장할 생각 없이 걍 직설적으로 들려주는데요. 레옹, 마틸다, 스탠 요 세 사람의 캐릭터가 그런 동화풍 이야기에 잘 맞게 설계가 되어 있어요. 레옹의 비현실적인 순박함이나 스탠의 초현실적인 사악함, 그리고 마틸다의 맥락 없이 격렬한 사랑 같은 것들은 하나하나 궁서체로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그게 적절하게 잘 어울립니다.


 물론 단순하게 캐릭터 설계에만 공을 돌리자면 섭섭한 게 배우님들이죠. 장 르노, 게리 올드만에다가 뤽 베송이 발견해 데뷔 시킨 나탈리 포트만까지. 이 세 사람은 정말 문자 그대로 '완벽합니다'. 셋 모두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 끌면서 어떤 의미로든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요. 이 분들의 기나긴 연기 경력들에 당연히 이 영화의 역할보다 훨씬 깊이 있고 멋진 역할들이 있었겠지만, 제게 이 세 분은 이 영화가 베스트입니다. ㅋㅋㅋ 어쩜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아주 맞춤으로 딱딱 뽑아놨는지. 캐스팅 담당자 상 받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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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 분입니다. 레옹 껒...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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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까지도 사이코 악당류 캐릭터 중 갑이라고 생각해요. 캐릭터와 배우가 서로서로 너무 잘 만났죠.)



 - 그리고 뭐냐 그... 지금 와서 즐기기에 이 영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그 40대 아저씨와 12세 소녀의 사랑. 이건 좀 애매합니다.

 물론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영화가 개봉됐던 9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에서도 '아 영환 좋은데 그건 좀'이라는 반응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와서야 말 할 것도 없죠.

 근데 여기에선 좀 아이러닉하게도, 인정사정 없는 검열의 칼날이 한 몫을 해줬습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관객들 반응 때문에 잘라낸 버전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튼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리지널에 존재하는 선을 넘는 듯한 부분들을 다 퍄퍄퍅 잘라내 버려서 딱 '그냥 불쌍한 애들끼리 동병상련인지 진짜 연애질인지 애매하군' 이라는 선을 지켜줍니다. 물론 마틸다는 처음부터 대놓고 '내 사랑~' 이러고 달려들긴 하지만 뭐 12세니까 그러려니 할 수 있잖아요. 문제는 레옹의 반응인데, 국내 개봉판의 이 정도 선이면 대충 '아 뭐 그냥 인류애라고!' 라고 정신승리를 시도할 수 있을만큼은 돼요. ㅋㅋ


 그리고 이걸 좀 거들어주는 게 앞서 말한 캐릭터들의 비현실성입니다. 특히 레옹이요. 20년 넘게 살해 기술자로 살아온 40대 아저씨지만 순수하고 순박한 영혼의 소유자라구요!! 라는 말도 안 되는 설정 덕에 '저런 놈이라면 진짜로 걍 순수하게 사랑할 수도 있겠네' 뭐 이런 기분이 들거든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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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옹이 잡힌 마틸다를 안 구하러 갔다면 이런 식의 해피 엔딩이!!!)



 -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참으로 새삼스럽게 감탄했던 건 당시 뤽 베송의 단짝 파트너였던 에릭 세라의 음악입니다. 분명한 20세기 스타일 영화 음악이거든요. 자신의 존재감을 팍팍 드러내며 화면을 휘어잡는 식의 음악 사용이 많은데요. 영화 속 장면들에 아주 맞춤으로 리듬 박자 마무리까지 딱딱 맞아 떨어지게 만든 이 음악들은 그냥 듣기에도 좋으면서 영화의 비장하고 애잔한 분위기를 참 잘 살려줍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생각이 났죠. 저 이 영화 OST 사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거든요. 아마 그 테이프가 베란다 박스 어딘가에 아직도 처박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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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느낌이 맘에 들어서 올려보는 사진.)



 - 대충 정리하자면요.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 보면 몇 배로 더 소박한 액션물이자 동화 같은 로맨스입니다.

 "12살짜리 꼬맹이랑 뭐하는 짓이냐!!!"만 잠시 접어 두고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면 지금 봐도 촌스럽거나 모자란 부분을 찾기 힘들게 잘 만들었어요.

 위에서 했던 말을 재활용해서, 영화가 참 소박하지만 알차게. 빈 틈 없이 잘 만들어져 있더라구요. 마지막 화분 심기 장면 같은 건 지금 봐도 나름 찡하구요.

 솔직히 추억 버프를 완전히 배제한 평이라곤 말씀 못 드립니다만. 그리고 뭐 대단한 메시지나 테마를 품고 있는 영화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재밌어요. ㅋㅋ 캐릭터들 매력적이고, 액션 심플하면서 재밌게 잘 짰고, 이야기 날렵하게 딱 할 얘기만 하고 빠지구요. 다시 한 번 재밌게 잘 봤습니다.




 + 그냥 올레티비에 있는 개봉판으로 본 후에 추가 장면(사실은 '추가'가 아니라 '복원'이 맞겠죠)이 궁금해서 왓챠로 빨리 감기 해 가며 확인해 봤네요. 

 대략 마틸다가 '클린'을 배운다고 레옹 따라다니면서 실제 임무에서 도우미 활동을 하는 장면들. 그리고 후반에 레옹이 마틸다에게 결별을 선언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마틸다가 레옹이 선물한 옷을 입고 나와서 한 번 해달라(...)고 조르니 레옹이 자신의 망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정도가 추가됐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애가 범죄를 저지르고 다니는 장면, 어린애가 어른 남자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는 장면을 잘라낸 거더라구요. 이 장면들을 보면 이야기 전개가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맞게 되긴 하는데, 사실 전 잘린 버전으로 볼 때도 딱히 개연성에 문제를 느낀 적이 없어서 '이 정도면 잘 잘랐네 뭐' 라고 생각했습니다. ㅋㅋ



 ++ 거의 어디에서도 언급되는 꼴을 보지 못한지 대략 20년이 되어가는 말, '누벨 이마주'가 오랜만에 생각났네요. '누벨 바그'랑 시리즈로 붙여 준 이름이었을 텐데. 요 이름으로 묶였던 신예 감독들이 나중에 다 중구난방 버라이어티한 길로 흩어지기도 했고. 또 생각해보면 애초에 되게 애매한 개념이기도 했습니다. 그냥 개성적이고 폼나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뭐 이 정도였는데. 당시 평론가들이 뭔가 '뭐라도 새로운 사조가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맘으로 성급하게 라벨링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암튼 그래서 이 '레옹'이 나왔을 때 뤽 베송에게 진지하게 배신감을 토로하는 비평가들도 좀 있었던 게 생각났어요. 그 분들은 나중에 '테이큰'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하하.



 +++ 이 영화의 그 '누군지 맞혀보세요' 놀이 장면을 볼 때마다 극장에서 제 앞에 앉아 있던 커플, 그 중에서도 남자분 생각이 납니다. 레옹이 간신히 '진 켈리!'하고 맞히는 순간 크게 껄껄 웃으며 '야야 짐 캐리래 짐 캐리~~~ 하하하' 라고 하셨...



 ++++ 그러고보니 이런 영화들은 어린이들이 참말로 중요하군요. 다코타 패닝에 나탈리 포트만에 김새론. 짱 멋진 아저씨에게 구원 받기 위해서는 연기 신동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레옹이 보스로 모시는 '토니' 아저씨 있잖습니까. 이 캐릭터는 생각해보면 좀 신기합니다. 레옹과 이 아저씨의 관계를 보면 떠오르는 게 무슨 염전 노예라든가(...) 아님 박수홍 가족이라든가... 뭐 그렇거든요. 그런데 희한하게 별로 밉지가 않아요. 어찌보면 스탠보다 더 나쁜 놈인데 말이죠. 배우의 연기 탓일까요. ㅋㅋ 암튼 막판에 마틸다 앉혀 놓고 '은행은 망해도 나는 안 망해' 드립을 또 우리는 걸 20년만에 보면서 낄낄 웃었습니다. 그 아저씨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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