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맙게 예매해줘서 고려대 안에 있는 작은 영화관(신기하고 예쁘던데요) 가서 같이 봤습니다.


옥자가 구현된 모습에서 살짝 떠 있는 느낌은 들었는데 애초에 넷플릭스로 풀 생각으로 만든 영화이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작은 화면으로 보면 거의 어색하지 않을 거 같아요.

첫 부분에서 옥자와 미자의 연대감을 보여주는 장면도 아주 교활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미에요)

감정이입을 위한 기능적인 장면이고 뻔하게 흘러가기 쉬운데 그러면서도 보다 보면 부드럽게 이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역시 지하상가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퀀스가 쭉쭉 이어지고 속도감도 디테일도 음악도 너무 물 흐르듯이 이어져서

옥자가 서울 지하상가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속도감과 중량감이 주는 쾌감이 산뜻하고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아, 이 장면은 스크린이 더 좋겠지요.)

듀나님인가 이동진님인가 '좁은 공간에 가득 찰 만큼 옥자와 사람들을 풀어놓고 그들이 충돌하게 했다.'는 평이 있었는데 읽고 아! 했습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봉 감독님.


아예 아무 정보도 안 찾아보고 가서 스티븐 연 나오는 것도 몰랐어요.

복면에 입만 보고 어?어?하다가 목소리 듣고 알았습니다. 복면 벗을 때 환호성 질렀습니다. 물론 마음 속으로;

최우식도 너무 귀엽게 나왔더라고요. 부산행에서 한번 삐끗했는데 좋은 배우로 순항했으면 좋겠네요.


제이크 질렌홀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긴가민가 하다가 크레딧 보고 알았어요. 

목소리를 거의 하이 테너 음으로 계속 긁던데 연기와 별개로 굉장한 육체적 노동이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일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저는 좋았습니다. 

시나리오상으로 기피해야 하는 게 맞지만, 또 이 영화처럼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제자리에 들어갔을 때 주는 즐거움이 있는 거 같아요.

쌓아올린 긴장감이 한 방에 와르르 무너질 때의 묘한 쾌감이 있지요. 젠가 무너지는 것 같은.


엔드 크레딧 올라갈 때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저는 그렇지는 않았고 약간 들떠서 와 너무 재밌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정작 주변 사람들 보니 평이 상당히 갈리네요.

뭔가 너무 즐겁게 잘 만든 오락영화고 심지어 주제의식도 좋다!고 생각하는 파가 있고 (제가 이쪽이고요)

뭐 난장판이고 플롯이 작위적이고 너무 뚝뚝 끊어지다가 용두사미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파가 있고요.


제 생각엔 캐릭터들이 다 조금씩 캐리커쳐가 되어 있고 스토리도 조금 그런 것 같습니다.

약간 뭐라고 해야 되나, 서커스 같은 느낌. 핍진성을 다소 포기하고 작위적인 형태로 (이것도 좋은 의미에요) 조각을 이어붙인 느낌이었어요.

의도적으로 기능적이고 작위적인 모습으로 세팅되어 있고, 이런 부분이 취향을 선명하게 갈리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치를 연상시키는 기계식 축산업의 묘사는 캐리커쳐가 아니겠지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친구에게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스티븐 연과 최우식이 동시에 나에게 고백하면 어떡하지? 도저히 못 고르겠어.'

친구는 입을 닫으라며 맥주를 사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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