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4 12:36
한글 제목이 '발칙한 동남아 산책'입니다만 영어 원제는 ' Jack Whitehall: travels with my father' 입니다.
영국의 코미디언 잭 화이트홀이 76세인 아버지를 모시고 (데리고?) 다니면서 동남아 여행을 하는 프로인데 엄청 재밌게 봤습니다.
이게 완전 다큐같지는 않고 '꽃보다 할배'처럼 어느 정도 픽션이 있.....으리라 사료됩니다만 어쨌든 엄청 자연스러워요.
잭 화이트홀이 29살이니까 나이차가 꽤 나는군요.
잭은 요새 젊은이 답게 오픈 마인드로 동남아를 즐기고 싶어하지만 76세 영국 보수꼰대 아버지는 외국인과 외국음식을 싫어하고 까다로운 취향...
이 두 사람이 지지고 볶는 자잘한 여행기가 아기자기하니 재미집니다. 시니컬한 영국식 유머의 불꽃튀는 대결...ㅎㅎㅎ
아버지 마이클 화이트홀도 영화관련 일을 하셔서 그런지 이런 프로를 재밌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윈스턴, 히틀러 등등...
매우 거부감 들고 싫을 것 같은 캐릭터인데 은근히 귀엽기도 하시고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서 폭소를 안겨주시고 하시네요.
마치 각본을 짠 영화처럼 정교하게 묘사된 두 사람의 갈등과 화해를 보면 만든 사람들이 참 대단한 능력자다 싶기도 합니다.
5주간의 여행이었다고 하는데 편집을 아주 공들여 한 것 같아요.
여행의 목적이 '동남아를 알고 싶다'가 아니라 낯선 곳을 다니며 '아버지랑 친해지고 싶다'에 방점을 찍다 보니
우리가 여행프로에서 늘상 보는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구경거리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프로였다면 여행 후 엄청 변했을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며 여행의 의미를 팍팍 강조하고 눈물짓게 만드는 나레이션과 신파가 들어갈 법도 한데
딱히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오히려 사실적이고 좋네요.
스티븐 시걸이 잠시 나오는데...아...진짜 간만에 배꼽잡고 크게 웃었습니다.
주인공 잭 화이트홀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커다란 눈망울이 동글동글...ㅎㅎ 막내아들같은 느낌. 적어도 이 작품에선 꽤 재밌네요. 실제 스탠드업 코미디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게이인가? 싶기도 했고 마이클 아버님도 '사람들이 너보고 게이같대'라며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아닌가봐요 (아...이 장면도 진심 웃겼음).
아, 한가지.
나이가 들면서 느낀 건데...여행에서 잠자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젊을 때야 딱딱한 바닥에서 하루이틀 자도 끄덕없지만...
일흔이 넘은 아버님을 모시고 도미토리 호스텔 방에서 숙박하는 걸 계획한 건 좀 무리같아요. 이건 아버님을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ㅎㅎ
또, 한가지.
한글 자막이...재밌게 하려고 시도한 건 좋은데, 너무 오바스럽다고나 할까..캐릭터상 쓰지 않을 법한 상투적인 표현이 좀 거시기 하더라고요.
시즌 2가 나올까요?
마이클 아버님은 솔직히 더 보고 싶긴 합니다. ㅎㅎㅎㅎ
2018.03.04 16:57
2018.03.05 07:55
ㅎㅎㅎㅎ 반갑습니다. 그런데...여행지가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이었는데...필리핀과 인도네시아도 있었나요? 혹시 한국판은 다른가 해서요.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선빵 날리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응대하는 그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ㅎㅎ
2018.03.05 10:00
2018.03.05 10:35
아, 한국가서 다시 봐야하나 했거든요..ㅎㅎ 이 프로가 국가별로 뚜렷하게 구별짓지 않아서 좀 애매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18.03.04 16:59
2018.03.04 17:00
2018.03.04 17:01
무슨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았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하던데, 마을 버스 대신 동네에 이거 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지요.
2018.03.04 17:01
2018.03.04 17:02
"...그러니까요, 겨우 여섯살 밖에 안되는 어린애를 기숙사 학교에 처박아 버리는 부모는 대체 죽은 다음에 어떤 지옥에 가는 거냐고요!!!"
2018.03.04 17:15
콰이강의 다리(태국)에서, 내내 유쾌하던 이 시리즈에서 살짝 긴장이 되던 회차였습니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여기는 바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포로 수천명이 희생된 일본군 포로 수용소의 현장입니다. 태평양 전쟁(1941~1945) 당시 일본의 전쟁 범죄 현장이면서 한편으로는 동남아를 식민 통치하던 영국과 미국 그리고 네덜란드같은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만행의 현장이기도 해서 나름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중 삼중으로 착참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도 하죠(안타깝게도 한국인들도 여기 상당수 관여되어 있습니다. 바로 군속으로 일본군에 소속되어 연합군 포로 관리 일을 맡았거든요. 물론 전후 모조리 체포되서(일본군과 함께) 대부분 전쟁범죄 혐의로 사형 선고와 함께 20년 이상의 중형들을 선고 받았죠...이 사람들은 친일파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연구나 기타 어떤 역사적 조명같은건 전혀 안되는 분위기입니다. 소수의 일본 학자들이나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서 연구서나 논문들을 좀 내놓는 것 같은데)
아버지는 뭔가 여기와 관련해서 얘기들을 하고 싶어하는 듯 했고 아들은 그냥 뭔데요...몰라...하면서 능청거리면서 넘기는 분위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하면서 지나갈 분위기더군요. 뭔가 현재 서구인들의 역사관(좁게는 영국인들의 대외관)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재밌었죠.
참고로 프랑스의 경우는 제국주의 시절(베트남과 알제리)에 대해 전혀 반성도 안하고 사죄도 안하고 있지만 애들 역사 교과서에는 열심히 이 사실들을 기술하고 있답니다.(동북아역사재단, 유럽의 역사 교과서 - 지배국 프랑스의 과거사 인식과 역사 교육, 이상균, 2017) 아무래도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 독립파들이 프랑스 사회당 출신들이 상당히 있어서 그런듯 합니다 ㅎㅎ 알제리 역시 그쪽에 섰던 프랑스 지식인들도 상당수였던 터라 그런것 같기도 하고.(이걸 제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 프랑스 학자들이 쓴 책을 보고 알았...)
2018.03.04 17:27
베트남의 프로방스 마을에서,
여기도 정말 좀 기괴했는데 말입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인들이 베트남에 만들어 둔 프랑스 마을입니다. 전후(베트남 전쟁) 프랑스 인들이 떠나고 오랫동안 방치되서 폐허가 되다시피한 것을 베트남 정부에서 논의 끝에 최근에 모두 복구하고 관광지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함께 사진 찍는 분들은 러시아 공연단 단원들입니다.
베트남전 영화에서나 볼법한 밀림을 지나 떡하고 나타나는...그런데 프랑스 마을입니다.
2018.03.04 18:25
최근 논란이 되는 구룡포 일본인 거리가 생각나는군요....
2018.03.04 19:08
그러게요...저도 사실 베트남 사람들이 이 생뚱맞은 프로방스 마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심 궁금했었는데, 저 프로만 봐서는 잘 모르겠더군요. 베트남 전역에서 놀러온 것으로 보이는 관광객들로 가득한데다가 서양인들은 공연하시는 분들하고 저 주인공 부자 밖에 안 보여서 더 판단이 안되더라는. 제 친구 왈, 아마도 서양인 관광객들한테는 전혀 관심밖의 장소일텐데 우리같은 한국인이나 일본인 혹은 중국인 관광객들은 정말 혹할 장소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와 제 친구도 이 프로 보면서 나중에 베트남에 가게 되면 저기 꼭 가자고 했더랬죠 ㅎㅎ(진짜 남프랑스 마을보다 더 진짜같더라니까요)
아마도 베트남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프랑스든(1차 인도차이나 전쟁) 미국이든(2차 인도차이나 전쟁) 다 스스로의 힘으로 내몰았으니까요. 이젠 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할듯 합니다.
2018.03.04 21:41
역사적 배경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요. 피식민국가 중에 여러가지 복합적인 측면을 전부 고려했을 때 한국처럼 대국민적으로 그러한 점이 심리적으로 극복 안 된 나라도 적을 거고요.
사담입니다만, 선배, 동료들 중에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혹은 식민 정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욕먹을 걸 각오하고 한다는 말을 항상 합니다. 이를테면 대전 같은 경우 그 시작이 철저하게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일제 주도로 만들어진 정책 도시이자 계획 도시인데, 그런 말을 대전 가서 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게 기록상의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연구 가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이런 걸 보통은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 되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그럴 수는 없는 상황인데요.
2018.03.04 22:12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 좀 대승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이 시절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 되리라는 생각이 최근에 들고 있습니다. 대전이 일제하 일본의 계획도시로 만들어졌다는 건 그냥 '역사적 사실'인데, 그런것 조차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건...확실히 많이 경직되어 있군요.
2018.03.05 01:16
음 그러니까 제가 말하는 건 학계 내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단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출판하게 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경험을 윗대부터 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문제가 발생하면 결과적으로 피해는 당사자가 보게 되는 구조적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연구비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점도 부차적으로...(어차피 연구비라는 것도 아주 가문날 가랑비 같은 수준이긴 합니다만)
고대사의 경우 유구하게, 소위 말하는 '환X' 계열 사람들이 학회에 와서 소리지르고 깽판 치고 하는 것이 전설처럼(저야 그 학회가 아니니 전해 들은 이야기 뿐이라) 전해집니다만, 근대사의 경우에도 특정 사안에 관해서 그런 상황이 드물지 않게 발생하는 탓이죠.
말하자면 연구하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도 벅찬데, 이것에 대한 이해가 없는 대중 상대까지 할 겨를이 없는 탓에, 굳이 그런 주제는 피하게 되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ㅠㅠ
2018.03.05 10:05
환X들 난동이야 고고학계나 고대사학회 쪽으로는 이미 난리죠…학회 때마다 진짜 이거 보통 일이 아니라고…대중의 감정이 그런건 아무래도 중장년층에서 확실히 더 그런것 같더군요. 그 당시 역사 교육이 딱 그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 세대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확실히 젊은 층들은 안 그런것 같은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까요...그러길 진심 바랍니다. 그러잖아도 열악한 역사학계에 이런 큰 짐덩어리가....ㅠ
2018.03.05 08:03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보는 순간 '어! 나 저기 가고 싶어!!' ㅎㅎ
모르죠, 우리가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과 동남아나 홍콩 사람들이 서구 열강국가들을 회상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런지도요. 베트남 사람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인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나 싶습니다.
저도 저 댄서분들이 우크라이나 출신(러시아 말고요)이라는 게 재밌더라고요. 첫눈에 동유럽권 사람들이구나 싶긴 했죠. 우리나라 지방의 테마파크에서도 저런 분들을 종종 봐왔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분들도 우크라이나 출신). 유럽 판타지를 불러 일으키는 외모에 저렴한 인건비 조합이 맞아서 그런 것 같은데, 무뚝뚝하게 서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국적불명의 춤을 추는 그 분위기 자체가 어떤 면에선 닭살돋아 견디기 힘들더군요. 썰렁한 것도 아니고 즐거운 것도 아닌 그 괴상한 분위기. ㅎㅎㅎ
차라리 같이 춤춰주는 저런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보람이라도 느낄텐데요. ㅎㅎ
2018.03.05 10:07
우크라이나였군요. 이제는 발트 3국이나 조지아나 우크라이나까지 다 소련 연방에서 분리됐으니 구분해야겠네요.
2018.03.04 17:29
저도 이 프로 보면서 정말 동남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저 눈부신 햇살...저 여유로움...
2018.03.04 17:37
저도 진짜 재밌게 본 프로였습니다. 아무래도 동남아에 지난 시절 영국의 식민지들(버마, 싱가폴)이 꽤 있었던터라 그것도 은근 신경 쓰였었는데 주로 필리핀(미국)과 베트남(프랑스), 인도네시아(네덜란드) 그리고 독립국 타이 등이 주무대가 된터라 불편한 이야기는 잘 비껴가더군요.
무엇보다도 세대차이에 대한 유머스러운 얘기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그 타이의 지옥사원에서 말입니다. 온갖 형벌을 받는 끔찍한 인형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잭이 아버지를 끊임없이 갈구죠. "...그러니까요, 겨우 여섯살 밖에 안되는 어린애를 기숙사 학교에 처박아 버리는 부모는 죽은 다음에 대체 어떤 형벌을 받게 되죠?" 진짜 이 소리 듣다가 빵빵 터졌...
영국 중산층들이 이제는 그렇게 안하나요? 대처 총리만 해도 쌍동이 남매들을 여섯살 때부터 기숙사 학교에 넣어버렸다고 하던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