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에도 적어 놓았듯이 스포일러 충만한 글입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 저는 박소담이 좋습니다. (단호)



- 박찬욱 월드에서 봉준호 캐릭터들이 뛰어노는 이야기다... 라는 듀나님 말씀이 딱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 설정이나 사건 진행 같은 부분은 박찬욱식 해외 장르 번안물 느낌인데 그 와중에 기생충 패밀리의 캐릭터와 그들의 행동은 봉준호스럽네요.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을 못 하게 하며 관조하듯 놀려대듯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좀 박찬욱 스타일 같구요.

 뭐 꼭 그걸 '박찬욱 스타일'이라고 부를 것 까지 있겠냐... 고 따지고들면 할 말이 없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게 설명하기 편하잖아요. ㅋㅋㅋ



- 두 시간이 넘는 영화인데 전개 속도가 빠른 듯 느린 듯 오묘하더군요. 쉴 틈 없이, 거의 여백이 없을 정도로 사건들이 연달아 몰아치는 이야기인데도 뭔가 좀 느긋한 느낌이. 대놓고 챕터가 나뉘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결국 1) 기생충 가족의 취업 2) 술잔치의 밤&폭우 3) 생일잔치 4) 후일담. 이렇게 네 파트로 이야기가 나뉘어지고. 그 중에서 가장 큰 분량을 차지하는 술잔치의 밤부터 생일잔치까지는 고작 24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후닥닥닥 벌어지는 일이잖아요.

 영화의 기본 설정을 들었을 땐 당연히 주인공 가족과 부자 가족이 함께 생활하면서 벌어지는 일상에서의 이런저런 사건들, 갈등들을 넉넉하게 보여주며 감정과 관계를 쌓아가다가 막판에 폭발시키는 식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의외였습니다. 



- 부자집 식구들의 모습과 그 정체(?)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선균이 갑부이고 좀 재수 없는 캐릭터이긴 한데 그 부를 축적한 과정이나 현재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같은 걸 전혀 안 보여주고요. 조여정이 곱게 편하게만 자라서 생각 없고 없고 악의도 없이 모자란 캐릭터라는 건 분명한데 그걸 딱히 풍자하고 비꼬는 태도로 비추지도 않아요. 풍자가 작동하기엔 너무 귀엽습니다 딸래미가 연애질 좋아하는 과외 선생 킬러라는 건 맞는데 딱히 그 내면을 보여주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아들래미는 그냥 기능성 캐릭터로 작동하는 정도에 머물죠.

 게다가 이 부자집 부부는 기생충 패밀리에게나 기타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무해합니다. 반복되는 '냄새' 이야기도 본인들끼리나 주고 받지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그런 소리는 안 하죠. 이선균이 막판에 송강호에게 좀 정떨어지는 소릴 한 번 하긴 하지만 그것도 뭐 나름 이해 가능하구요. 이 이야기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나쁜 짓을 하지 않아요. 오히려 예의를 갖추고 대하는 편이죠.


 다만 딱 한 가지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부자들의 모자란 점. 나쁜 점이 있다면 '타자화'입니다.

 이선균이 반복해서 말하는 '선을 넘는 행위'란 대사가 좀 중의적으로 쓰인 것 같아요. 1차적으로는 업무 관계를 넘어서 사적인 영역을 침범해 오는 행동이 싫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보고 나면 '고용인들 주제에 감히'라는 의미도 포함된 걸로 보이거든요.

 암튼 그래서 이 부부는 (특히 이선균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고용인들(=가난한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자신들과 다른 세상 사람들 취급을 하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철야 개고생으로 멘탈이 나간 송강호의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이선균의 그런 태도였죠.


 아마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부자 가족을 '평소엔 꽤 괜찮은 사람들'로 그린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혼자 맘대로 해 봅니다.



- 가난한 사람들 쪽으로 가면 뭐 별로 할 얘기가 없네요. 그냥 현실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들의 축약판 같았습니다. 어쨌든 부자님들이 흘려 주시는 콩고물로 먹고 살고. 부자들을 부러워하고 선망하면서도 동시에 또 이용하고 무시하면서 정신 승리도 하고. 그러면서 그 쪽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차지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끼리 싸우고 밀어내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은 '제가 먹고 사는 건 다 부자님들 덕분입니다!! 사랑해요!!!!' 뭐 이런 태도도 보이구요. 막판에 심판을 내리시는 어떤 분이 기생충 가족들만 공격하는 것도... 뭐 그렇죠. 



- 어쨌든 현실의 부자들 입장에선 좀 보기 불편한 영화일 것 같기도 합니다. 직설적으로 부자들을 야유하고 '니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책임이 있어!!' 라고 말하는 이야기도 아니긴 하지만. 폭우 장면 같은 걸 보면 살짝 노골적이잖아요. 폭우 속에서 부자집을 빠져 나온 송강호 가족은 쏟아지는 물과 함께 계속해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위에서 아래로 더 아래로 쭉쭉 내려만 가고 그렇게 내려가고 내려가고 내려간 후에 도착하는 곳은 자신들의 반지하 집이고 그 집은 이미 물에 잠겨서...



- 그래서 좀 쌩뚱맞지만 보는 내내 지붕 뚫고 하이킥, 감자별 같은 김병욱 시트콤들이 생각났어요. 다루는 주제가 거의 같은 데다가 설정까지 비슷하죠. 물론 이야기를 다루는 태도면에선 큰 차이를 보입니다만 결론은 또 거의 같아요. 결국 그 쪽과 그 쪽은 죽었다 깨어나도 서로 마주보고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러니 차라리 죽... (쿨럭;)



- 배우들은 모두 정말 잘 캐스팅 되었더군요. 누구 하나 콕 찝어 말할 것도 없이 다 잘 어울렸지만 그 와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배우를 꼽아 본다면 아줌마 두 분이 인상적이었네요. 둘 다 집사(?) 모드와 집사가 아닌 모드에서 연기 톤에서 비주얼까지 확 달라져 버리는 게 참 놀라운 구경거리였어요. 특히 원래 집사 아줌마는 재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끝까지 어찌나 위협적이던지. ㄷㄷ

 ...하지만 저는 박소담을 좋아합니다. 경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박소담은 그냥 좋아요. 박소담 만세!!!

 


- 이 영화가 칸에서 상을 받으니 연세대학교에서 '자랑스런 우리 동문!!!' 운운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길래 피식 비웃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럴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명문대'의 상징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니까요. 고마울만도 하네요. ㅋㅋㅋ



- 가끔 등장하는 카톡 대화창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리던데 이유가 뭐였을까요. 굳이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면 촌스러워서? 



- 근데 이 영화 15세치곤 좀 센 장면이 있지 않나요. 예전에 블레이드런너2049를 보다가도 한 생각이지만 요즘 15세 관람가들이 다들 수위가 좀 세네요. 뭐 굳이 따지자면 19금 주기엔 모자란 자극(?)이긴 한데. 그렇다고해서 중2, 중3들이 랄랄라 놀러와서 보라고 하기도 좀 거시기한... 뭐 이런 느낌이 그냥 제 늘금의 증거일 수도 있겠죠. ㅋ



- 암튼 막차로 허겁지겁이라도 극장에서 보길 잘 했습니다. 즐거운 두 시간이었네요.



- 맞다. 보고 나서 한 가지 의아했던 게, 결국 인디안 덕후 아들래미가 전등 모르스 부호를 읽던 장면은 그냥 맥거핀이었던 건가요. 후일담에 대한 복선으로 끝이었던 건지. 나중에 아들 메모장을 잠시 비춰주긴 하던데 너무 금방 지나가버려서 못 읽었네요. ㄷㄷ



- 대왕카스테라 드립 때문에 피식 웃고 나중에 그걸로 기생충들간에 살짝 유대감이 형성되는 장면에서 센스에 감탄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그 드립에 웃지 못 했을 관객이 최소 수천명은 있었겠죠. 이영돈 이 나쁜...



박소담 만세!!!!!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74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1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661
124546 이스트반 사보의 중유럽 삼부작 ‘메피스토’ ‘레들 대령’ ‘하누센’ [6] ally 2023.10.22 215
124545 ENTJ에 대해 catgotmy 2023.10.22 194
124544 장르소설 영어 [3] catgotmy 2023.10.22 189
124543 "인셀 테러" 라는 책의 소개기사 입니다. [1] 나보코프 2023.10.22 296
124542 준플 1차전 NC: Ssg [11] daviddain 2023.10.22 114
124541 [영화바낭] 늑대인간 말고 늑대인간 엄마 이야기. '울프킨' 잡담입니다 [3] 로이배티 2023.10.22 210
124540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이태원참사 다큐 "크러시' [7] 사막여우 2023.10.22 633
124539 수원 점집 금화당을 보니 가끔영화 2023.10.21 321
124538 짧은 바낭ㅡ 와카 전 보고 떠오른 14년 두산 야구 [2] daviddain 2023.10.21 141
124537 플라워 킬링 문 [2] daviddain 2023.10.21 318
124536 프레임드 #589 [4] Lunagazer 2023.10.21 65
124535 양자갈등의 환상 Sonny 2023.10.21 243
124534 [넷플릭스바낭] 남자가 잘못했네요. '페어 플레이'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3.10.20 463
124533 마린 르펜,"벤제마 극우 이슬람 사상에 친숙한 거 안다" daviddain 2023.10.20 252
124532 히 트 2 이즈 커밍! [6] theforce 2023.10.20 280
124531 프레임드 #588 [4] Lunagazer 2023.10.20 82
124530 대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님 시즌 432529752회째 연전연승 중...... 모르나가 2023.10.20 228
124529 후쿠오카 여행 가서 위스키 신나게 마시고 온 이야기 [6] 칼리토 2023.10.20 529
124528 여초 커뮤니티와 남초 커뮤니티의 차이 [2] catgotmy 2023.10.20 464
124527 배속보기와 요약보기 등에 관한 이동진의 견해(온전한 감상이란) [6] 상수 2023.10.20 39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