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딱히 구체적 스포일러는 없지요.



- 넷플릭스 유저들에겐 나름 유명한 작품일 것 같긴 한데 넷플릭스 뉴비인 저는 전혀 모르다가 지인 한 분이 반복, 적극 추천하길래... 미루고 미루다가 그냥 봤습니다. 짧거든요. 여덟편 짜리인데 평균적으로 편당 40분 언저리라 금방 끝낼 수 있다는 게 매력 포인트였죠.



- 페이크 다큐, 모큐멘터리, 뭐 암튼 그런 겁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한 고딩이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다큐멘터리 영상이다... 라는 컨셉이구요.

 내용인즉 미국의 한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어느 날 교사들 차량 27대에 27개의 고추(...) 그림이 그려지는 '반달'리즘이 행해지고. 평소에 고추 그림을 사랑했으며 평소에 전 교사와 학생들에게 평판이 아주 나빴고 또 평소에 원래 범죄에 가까운 장난질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 데서 삶의 보람을 느껴왔던 데다가 하필 정확하게 사건 발생 시각에만 알리바이가 없었던 한 학생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어 별다른 증거도 없이 퇴학 당해버리는데... 확실한 증거 없이 퇴학이라는 큰 징계를 내린 학교측의 결정에 의문을 품은 한 방송반 학생이 나서서 진실을 파헤친다.

 뭐 이런 얘깁니다.



- 설정에서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스테리를 파헤치는 이야기이니 수사물의 성향을 띕니다만. 주인공들이 형사도 전문가도 아닌 일반 고딩들이라 퍼즐 미스테리의 성격이 과학 수사의 성격보단 좀 강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사 이야기가 흘러가는 가운데 미쿡 고딩들의 최신 유행과 문화들. 미쿡 고딩들의 디테일한 학교 생활과 그 생태계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골치 아픈 일들. 학교라는 조직이 굴러가는 관료적인 모습과 그 구성원인 교사들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 위너&루저들의 생태계.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 진실을 파헤치는 자의 고난과 자기 반성. 음모와 반전. 심지어 훈남 훈녀의 러브 스토리도 들어가니 정말 스스로 택한 소재에서 다룰만한 내용은 다 때려 박아 만든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 일단 이런 '페이크 다큐'에서 기대할만한 사실성 같은 건 없습니다. 일반 고딩이 취미로 만들어 자기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하는 영상이라고 믿어주기엔 촬영부터 녹음, 편집까지 너무 깔끔하고 완벽하죠. 등장 인물들의 비주얼도 현실이라고 믿어주기엔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의 비중이 살짝 과한 편이구요. 사건의 전개 과정도 넘나 드라마틱한 데다가 마지막 교훈을 위해 딱딱 맞아 떨어지는 구성으로 되어 있고.... 결정적으로 주인공이 카메라만 들이대면 막 자기 주변 사람은 물론 본인의 은밀한 이야기까지 거침 없이 다 떠들어주는 인터뷰 대상들의 모습이... ㅋㅋㅋ


 하지만 뭐 이건 딱히 단점은 아닙니다. 그냥 '다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다' 라고 생각하고 보면 별 문제는 안 돼요. 그리고 이 드라마가 다큐멘터리 형식을 하고 있는 건 그 형식이 중반 이후부터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드라마의 소재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주제랑도 관련이 되구요. 아마 제작비 절감에도 큰 도움이 되었겠죠. ㅋㅋ



- 추리물로서의 퀄리티는... 일단 확실하게 해 둘 것은 뭐냐면,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깁니다. 법률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민들이 살아가는, 그리고 제 정신을 갖고 최소한의 할 일이라도 하는 공권력이 존재하는 국가에서는 절대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수가 없죠. 경찰이 딱 하루만 일을 해도 해결 가능한 일인데 아무도 경찰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는 괴상함을 일단 뭉개고 시작되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아마추어 고딩들이 몇 달간 뻘짓을 해가며 지나친 열정을 쏟아붇고 해결할 이유가 생기는 거죠.


 하지만 일단 이런 무리수를 눈 감고 넘어가주면 그 후론 꽤 괜찮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다 보면 가끔 제작진이 막 탐정 흉내를 내면서 나름대로 범인을 지목하는 에피소드들이 있잖아요. 그런 거 구경하는 느낌으로 재밌어요. 여기저기서 모은 제보들 짜맞추고 이미 밝혀진 증거들을 이렇게 들여다보고 저렇게 들여다보고 하면서 가설 만들고, 그 가설을 하나씩 검증해가고. 이런 구경은 어지간해선 재미가 없을 수가 없잖아요. ㅋㅋ 물론 이야기 전개를 위해 종종 비약이 등장하고 지나치게 편리한 우연이 등장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뭐 사실 원작 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추리물들 중에 안 그런 작품이 얼마나 있나요. 이 정도면 충분히 즐길만 했습니다.



-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주인공들간의 드라마와 막판의 교훈극들 같은 것도 준수했어요. 이 캐릭터들이 처음엔 극혐 내지는 무매력 느낌인데 보다보면 정이 들고 그래서 가끔씩 짠내 폭발하는 장면에선 적당히 애잔한 느낌이 들었구요. 마지막에 던져지는 교훈들도 무척 뻔하지만 꽤 시의적절한 것들이어서 나쁘지 않았구요.



- 단점이라면... 내용상 어쩔 수 없이 시작부터 끝까지 고추(...)가 화면을 누비는 이야기인데 초반에 그 고추 그림들로 웃겨보려는 시도들이 제겐 거의 다 안 먹혀서 초반엔 좀 짜증이 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유머의 질이 그리 높은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다행히도 그 고추 드립의 비중은 금방 옅어지고 이후로는 그런 저질 유머의 비중은 거의 없었다는 거. 


 그리고 뭐 보편적으로 요즘 세상 여기저기에서 다 먹힐만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긴 하지만 '미국 고딩들 트렌드'가 이야기 내내 디테일을 깔아주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종종 시큰둥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아니 내가 이런 것까지 알아서 뭐해' 라는 느낌? 채팅에서 hey를 칠 때 y를 여러 개 덧붙이면 끼부리는 거다... 뭐 이런 이야기를 주인공들이 범인 추정의 근거로 삼아 한참을 토론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판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채팅시 문장 뒤에 덧붙이는 ㅋ 한 개는 조롱의 의미, 둘은 무성의함, 셋은 보통의 의무 방어 수준이며 넷 이상을 써야 진짜로 웃는 거다' 같은 얘기가 등장하면 한국 애들은 웃고 어른들은 뭔가 배우(?)겠지만 외국인들이 그런 걸 봐서 뭐합니...



- 대충 정리하자면.

 겉으론 밝고 재치있는 척 하지만 실상은 어두컴컴 우중충한 교훈담입니다. 하지만 전개 속도가 빠르고 나름의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게 금방 보고 끝낼 수 있는 이야기구요. 던져지는 교훈은 다소 뻔해도 막판엔 나름 이입할만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탐정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자주 튀어나오는 비약과 행운에도 불구하고!) 좋은 아마추어 탐정물이기도 하구요. 미국 고등학생들 주인공인 이야기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그것이 알고 싶다' 팬분들에게 소심하게 추천해드립니다. 그리고 전 싫다고 적었지만 미국식 화장실 유머 좋아하는 분들도 적당히 키득거리며 보실 수 있을 듯.

 



- 근데 시즌 2는 별로 보고 싶지 않군요. 주인공 콤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반달리즘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내용이라는데... 평은 나쁘지 않은 듯 하지만 이런 페이크 다큐 형식은 왠지 연달아 보고 싶지가 않더라구요. 이제 당분간 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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