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4관왕- 그 중 작품상까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로소 <기생충>을 보았습니다.

흥행 입소문을 몰 때도, 깐느 영화상을 탔을 때에도 이 영화를 보지 않았었는데,

별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영화라는 문화 자체에서 많이 멀어졌을 뿐더러,

개인적인 추억이나 연결고리 때문에 좋아하는 극소수의 영화 아니면

영화 자체를 찾아보는 일이 저에겐 매우 드물어졌기 때문입니다.(영화 게시판에 와서 한다는 말이...)


그래도 오늘 같은 날 안 볼 수가 없어서, 마침 상황도 맞고 VOD 포인트도 있어, 

탈탈 털어 영화를 보았습니다.

사실 위키만 돌려도 줄거리며 스포일러며 영화적 해석까지

표준전과 수준으로 쫙 안내받을 수 있으니

한김 빠진 채 감상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감상하는 게 편해요.

영화를 보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이래서 영화를 잘 안 보지만) 보다가 영화가 재미없어져서 그만 보고 싶어지진 않을지

보기 전에 이미 염려를 시작하는 것보단

이 이상한 영화 감상법이 맘이 편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냥 개인적인 한마디 평은,

국내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4관왕을 탈 영화인 줄 모르고 봤으면 더 순수하게 좋았을 뻔한 영화였어요.


일단 영화 감상중에 이건 영화다, 저건 너무 작위적이야, 그런 시니컬한 생각이 들 틈이 없이

영화의 내실 속에 실려서 감상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작위성이나 극적 장치야 이 <기생충>도 어떤 면에선 못지않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지 않게 하는 게 

영화의 내공 중 하나겠지요.


그리고, 듣던 대로 마지막 부분에서 기분 유쾌할 분들은 드물겠지만,

뭔가 순수하게 슬퍼서 좋았어요. 왜 슬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 이루어야 하지만 절대 이루지 못할 것을 뻔히 알고서

그 짐과 함께 살아가는 막막함이 슬펐다고 해야 하나...최우식 배우의 마스크가 주었던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구요


무튼, 말이 나와서 말인데,


1. 이 영화를 통해 최우식(존칭생략)에 대해 저는 '소년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열한, 통수 칠 것 같은(그간 접했던 배우의 드라마 작품 때문에 더욱 강화되었어요)'

인상이라는 생각을 덜어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의 연기에 더 주목하게 될 것 같고, 호감도가 좀더 올랐습니다.


2.박소담은 목소리도 딕션도 좋더군요. 시원시원하고, 캐릭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3. 영화 속 집 분위기가 정말 평창동(배경은 성북동이지만) 부촌에 있을 법한 집과 그 내부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해서 눈이 호강했어요.

요즘은 안 가지만 예전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사는 동네를 벗어나 같은 서울이나마 특색을 지닌 지역으로 멀리 산책을 나가는 걸로

여행을 삼곤 했거든요. 그 즈음 평창동도 가끔 갔는데, 걸어서 그 부촌 골목 곳곳을 걸어 누비다보면 왜 차 없는 사람들은 오지 못할 이곳에

그같은 집들을 지었을지 알 것도 같았어요...영화에서 보이는 그 집 대문과 주차장, 긴 담이며 

집 인테리어까지 저 역시 선망하는 (그만큼 부와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꾸민 집으로 설정되어 있으니 당연한지도 모르지만) 분위기라

부러우면서 극중 인물들의 심정에 좀더 동화도 되었어요. 특히 의자...불편하겠지만 마음에 들더군요. 같은 의자가 식탁은 물론 아이들 방에도,

공간마다 용도나 느낌은 조금씩 다르지만 통일감이 느껴져서 미적으로 좋았어요.


...아무튼 이제서야 영화를 볼 정도로 이 영화에 무관심했던 저 같은 사람조차 꿈 아닌가, 싶을 만큼 훌륭한 결과를 거두었으니

축하를 보내고 싶습니다.


 사주를 혼자 들이파는 사람으로, 이런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으레 그러듯 봉준호 감독의 사주를 봤습니다.

전에도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제가 공부와 식견이 부족해서인지 이만한 결과물과 영광이 사주 여섯글자(시간은 모르니)어디에서 빚어지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습니다. 문화적 식견이 높고, 이 사람의 본령이 되고, 늘 공부하듯 하는 분일 거라는 느낌은 듭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이렇게 방구석에서 만세력 돌려보고, '기간이 정해져 있는 근로자'는 2년 내에 계속 일하고 싶어도 퇴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된-근로계약서에 그런 문구가 없어도 합법이라는 것조차 지금 알게 된- 저 같은 사람보다는

사주 같은 거 신경도 안 쓰고 자기 길을 머리터지게 살아 온 봉감독님을 비롯한 세상 많은 실력자들의 인생이

더 알차리라는 것이겠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482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38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1732
124546 이스트반 사보의 중유럽 삼부작 ‘메피스토’ ‘레들 대령’ ‘하누센’ [6] ally 2023.10.22 215
124545 ENTJ에 대해 catgotmy 2023.10.22 194
124544 장르소설 영어 [3] catgotmy 2023.10.22 189
124543 "인셀 테러" 라는 책의 소개기사 입니다. [1] 나보코프 2023.10.22 296
124542 준플 1차전 NC: Ssg [11] daviddain 2023.10.22 114
124541 [영화바낭] 늑대인간 말고 늑대인간 엄마 이야기. '울프킨' 잡담입니다 [3] 로이배티 2023.10.22 210
124540 한국에선 볼 수 없는 이태원참사 다큐 "크러시' [7] 사막여우 2023.10.22 633
124539 수원 점집 금화당을 보니 가끔영화 2023.10.21 321
124538 짧은 바낭ㅡ 와카 전 보고 떠오른 14년 두산 야구 [2] daviddain 2023.10.21 141
124537 플라워 킬링 문 [2] daviddain 2023.10.21 318
124536 프레임드 #589 [4] Lunagazer 2023.10.21 65
124535 양자갈등의 환상 Sonny 2023.10.21 244
124534 [넷플릭스바낭] 남자가 잘못했네요. '페어 플레이'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3.10.20 463
124533 마린 르펜,"벤제마 극우 이슬람 사상에 친숙한 거 안다" daviddain 2023.10.20 253
124532 히 트 2 이즈 커밍! [6] theforce 2023.10.20 280
124531 프레임드 #588 [4] Lunagazer 2023.10.20 82
124530 대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님 시즌 432529752회째 연전연승 중...... 모르나가 2023.10.20 228
124529 후쿠오카 여행 가서 위스키 신나게 마시고 온 이야기 [6] 칼리토 2023.10.20 534
124528 여초 커뮤니티와 남초 커뮤니티의 차이 [2] catgotmy 2023.10.20 465
124527 배속보기와 요약보기 등에 관한 이동진의 견해(온전한 감상이란) [6] 상수 2023.10.20 39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