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지만 대선후기 - 3

2022.03.16 18:35

Sonny 조회 수:741

5. 민주당과 정의당


이번에도 어김없이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의당 지지자들에게 표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었습니다. 완패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재명은 0.7%로 석패를 거뒀지만 왜 정의당 지지자들은 2.2%의 남은 지지율을 몽땅 더민주에 바치지 않았냐며 일종의 정의당 책임론을 떠들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대의를 위해 정의당은 당연히 이미 표가 많이 몰린 더민주 쪽으로 힘을 보태줘야 한다는, 사표흡수론일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다양함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더민주는 늘 지지율에 의한 상하관계를 강조하고 또 강요합니다. 물론 저같은 사람들은 그걸 더민주와 국힘당의 악성 공생체재라고 이해합니다. 국힘당을 막기 위해서라면 언제나 최후의 보루인 민주당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이 민주당 독식체재가 상당히 지겹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 역시 공교롭게도 패배의 예측을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 분들은 하룻밤 새에 심상정에게 12억의 후원금이 들어왔다는 걸 좀 상기해야합니다. 심상정이 정말로 인기가 없었다면 그는 후원금도 득표율만큼 형편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재명에게 표를 주는 여성유권자들이, 심상정이 선거비용까지 보전못하는 건 너무 미안하다면서 12억원을 후원했습니다. 이 금액은 윤석열만 아니었다면 심상정을 지지했을 거라는 여성유권자들의 충고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의 이번 지지율, 특히 여성유권자들의 지지율은 이준석과 윤석열에 의한 일시적 반동효과에 가깝다고 봐야할 겁니다. 그래서 이번 정의당의 지지율을 민주당에 비교하며 비웃을 게 아니라, 정의당의 잠재적 지지자들의 불가피한 이탈 정도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6.  무조건적 지지


본디 대의민주주의에서의 정치라는 게 허구적 이미지 셀링이라지만 이번 대선은 그게 정말 심했습니다. 그 허구의 이미지라는 것조차 부분적인 이미지로는 통합적인 한 인간의 인성과 정치인으로서의 됨됨이를 단언할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인데, 윤석열은 위선이 아니라 그냥 악으로서의 실패한 이미지들을 선보였습니다. 어느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워먹을 건덕지는 없는데 대통령 후보로서의 품위를 보이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통제를 아예 포기해버린 모습이었습니다. 하던 대로 쩍벌로 앉고, 대선토론 때는 자꾸 사타구니를 긁고, 지하철 건너편 좌석에 신발을 신은 채로 다리를 올리고 있고, 토론 중에는 카메라나 상대방을 보는 대신 아예 대본에 코를 박고 정수리로 의견을 발표하는 추태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유세현장이나 단체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아예 결석을 해버리기도 했고 틈만 나면 행사에 지각을 했습니다. 그는 하마타면 제주 유세를 안갈려고 했습니다. 수도권 지역의 유세가 더 중요하니 제주도에는 못간다는 굉장한 지역차별적인 이유를 본인 캠프에서 직접 발표하기도 했고 말이죠.


아무리 유세 현장에서 멋지고 믿음직스러워보여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촛불 시위 직후의 대통령이 된 문재인이 박근혜를 사면시켜줬던 사례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늘 따라다니고 굉장히 예민해지는 대선기간에는 자신의 어떤 안좋은 이미지가 포착되어 언론에 대서특필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신의 좋은 모습만 부각시켜야 하는 대선후보에게는 이미지 관리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이것조차 안합니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도 그런 걸 아예 무시하기로 합니다. 품위와 소탈함은 언제나 정도의 차이이지만 양복을 입고 다니는 현대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다수의 대중 앞에서 사타구니를 긁거나 약속을 펑크내는 등의 태도를 소탈하다고 해석하진 않습니다. 그냥 남 신경 안쓰는 추접한 아저씨로 판단하죠. 그런데 윤석열은 이 태도를 고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그런 윤석열에게 절대 호감을 잃지 않습니다. 대선후보를 검증하는 거의 모든 과정이 완전히 마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이같은 윤석열 지지는 윤석열 개인에 대한 지지도 아닙니다. 무조건 더민주와 문재인을 박살낸다는 증오에 가까웠죠.



7. 환상의 정치


이런 용어 사용이 정확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대선만큼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선거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보수 내의 분열과 반 보수 내의 분열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으니까요. 특히 두드러졌던 건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른바 '이니여리' 세력들입니다. 더민주 내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이런 세력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문재인을 지지하면서 한국에서 제일 안티 문재인을 열심히 실천하는 윤석열에게 표를 주자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힘당에서 급조한 온라인 프락치들이냐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국힘당과 무관하게, 오히려 국힘당을 미워하면서도 윤석열에게 꼭 투표하자고 합니다. 도대체 왜...? 라고 생각할 법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이유는 이재명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동원한다는 전략은 딱히 단기적으로는 틀리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최악과 차악의 경계가 이번 대선에서는 당원정치의 틀을 벗어나 인물정치의 틀로 넘어가버립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재명을 싫어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당내 경선이니까 당원으로 그 당의 미래를 위해 당연히 결과에 승복해야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호감의 기준을 문재인(과 노무현)에 맞춰놓고 이재명이 안되니까 국힘당일지라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모순된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이 민주당 당원이 아니면 상관없습니다. 혹은 문재인 지지자라는 정체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냥 일시적인 변덕이니까요. 그런데 이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에 더민주라는 당과, 문재인이라는 현직 대통령을 끌어들입니다. 당이 이재명을 선택했으니 당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당을 패배시키겠다는 논리입니다. 아니면 문재인이 사실은 윤석열을 좋아하니 그 둘은 어느 정도 잘 맞는 대통령 인수인계 파트너라든가요. 이렇게 말하면 과장같은데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아이돌팬 '악개'로 표현했고 누군가는 '적통계승'의 서사로 해석했습니다. 두 해석 다 꽤나 일리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현상은 여기에 줄여쓰기 아까울 정도이니 나중에 따로 써야할것 같네요. 분명한 건 문재인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당시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던 윤석열을 겨냥해 몇번이나 화를 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니여리'들은 문재인이 윤석열을 따뜻하게 안아줄 것 같다는 일종의 팬픽을 쓰면서 자신들의 선택을 합리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기괴한 선거를 또 본 적이 없습니다. 환상에 압도된 사람들은 마침내 실존인물마저도 무시하는 지경에 다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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