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나왔구요. 2022년작이구요. 스포일러는 없을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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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는 노멀한 포스터로군요.)



 - 영문을 알 수 없는 결투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외딴 곳에 있는 좀 허름하고 별로 안 큰 운동장 같은 데서 남자 둘이 만나고, 각자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무기 하나를 주워들고 사투를 벌여요. 당연히 관객들도 있고 심지어 사회자도 있네요. 어찌저찌하다 한 놈이 다른 놈을 죽이고 살아 남아 사회자에게 칭찬 받고... 그러다 죽은 남자의 얼굴을 보니 이긴 남자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새라가 등장합니다. 멀리 출장(?) 간 애인 집에서 혼자 지내는데, 아무리 카렌 길런의 비주얼이지만 '난 관리도 안 하고 인생 대충 막 살고 있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분장과 메이크업 덕에 삶에 아무 의욕이 없는 여자로 보여요. 남자 친구도 주인공을 그렇게 막 사랑하는 느낌은 아니고 보아하니 하나 뿐인 가족인 엄마랑도 관계는 개판인 것 같구요. 그렇게 멀뚱멀뚱 생기 없는 일상을 보내던 새라는 어느 날 각혈을 하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복제 인간 서비스를 제안 받습니다. 자기랑 똑같이 생긴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본인이 죽기 전까지 교육을 시켜서 새라 Mk.2로 살게 하라는 거죠. 꽤 비싸지만 얼떨결에 덜컥 제안을 받아들여 버린 새라.


 그러고 거의 배달의 민족 일반 배달 수준의 대기 시간 끝에 자신의 복제 인간을 만나 집으로 돌아와 교육을 시작합니다만. 새라와 똑같은 이 새라 마크 투는 사실 새라와 좀 다릅니다. 갓 태어난지라 삶에 의욕도 넘치고, 같은 유전자라지만 대충 막 산 경험이 없어서 몸매도 피부도 매끈매끈. 애인놈도 엄마도 새라보다 마크 투를 더 좋아하는 게 대놓고 티가 나요. 맘 상하게시리.


 하지만 여기에서 더 큰 문제는 나중에 발생합니다. 이제 슬슬 마크 투에게 일 넘기고 퇴장하려는데, 농담처럼 병이 나아버렸네요. 그리고 이 세상엔 해괴한 법이 있으니, 지금 새라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면 원본과 복제 둘에게 1년간 시간을 준 후 결투를 시켜서 이긴 쪽이 살아남게 한다는 겁니다. 무조건 한 쪽이 죽어야 끝이니 진 쪽은 생각할 필요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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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s 1 버전 '배틀로얄' 처럼 시작하면서 사기를 시도합니다만. 본편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



 - 어... 이거 적어 놓고 나니 도입부 스토리 소개가 역대 최고로 길군요. 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제가 이야기를 심플하게 요약하는 능력이 심히 딸려서... ㅠㅜ 핑계를 좀 대보자면 영화가 좀 슬로우 스타터에요. 느릿느릿 태평한 페이스로 흘러가는 영화이고 그래서 '발단'에 해당하는 부분이 저렇게 좀 깁니다. 그러면서 괴상한 설정들이 많아서 '이게 어떤 이야기인가'를 설명하는데 저런 무책임한 분량이 나와 버렸네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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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은 이런 영화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 진지한 표정이 너무 웃겨요. ㅋㅋㅋ)



 - 제목에 '무책임 SF'라고 적어 놓은 이유는 그런 겁니다. 딱 봐도 그냥 말이 안 되잖아요? ㅋㅋㅋ 진짜 그냥 하나부터 열까지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복제 인간의 인권을 챙겨주는 사회라고 해도 복제 인간은 복제 인간이고 원본은 원본이죠. 쓸모가 없어진 복제 인간에게 새 신분을 부여하든가 하면 될 일이지 뭐땀시 저런 걸 시킵니까. 어차피 태어나자마자 원본과는 다른 개체이자 인격이라는 게 보자마자 뻔한데요. 합법적 살인쇼를 만들고 그걸 티비로 중계까지 하는 것도 그렇구요. 


 물론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들도 그걸 잘 압니다. 그래서 새라의 복제 장면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황당하게 묘사한 거겠죠. 혓바닥 살살 긁어서 유전자 채취하고 한 시간 커피 마시고 오면 완성품이 뙇!!! 바로 자기 운명과 할 일을 다 알고 있고 거기에 거부감도 없구요. 그러니까 "이게 말도 안 되는 건 나도 잘 아는데 내가 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일단 좀 장단 맞춰줄래?"라는 류의 영화인 겁니다. 그러니 설정의 개연성 같은 건 따지지 말기로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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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대결을 벌여야 하는지, 그런 데 신경 쓰시면 지는 겁니다.)



 - 기본적인 장르는 코미디입니다. 다만 감독의 전작인 '호신술의 모든 것'처럼 아주 느릿하고 다크하며 마가 뜨는 류의 블랙 코미디죠. 왜 누군가가 '이거 코미디 영화야' 라고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안 웃고 이게 코미디라는 것도 눈치 못 채게 되는 그런 코미디 있잖아요. 있나요? 시작부터 끝까지 상황은 거의 언제나 진지하고 주인공들도 늘 절실하고 절박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상황은 빠져나갈 틈 하나 보이지 않는 절망과 어둠 그 자체구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 대응하는 인물들의 반응이 자꾸만 슬쩍 어긋나 있고. 행동의 결과는 언제나 기대와 다르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기가 막힌 상황이 자꾸 벌어지고. 뭐 그런 걸로 웃기는 영화에요. 당연히 굉장히 취향을 탈 이야기겠고. 시니컬하고 좀 위악적인 스타일의 이야기 싫어하는 분들은 안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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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이렇게 뚱... 한 표정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영화의 성격을 대변합니다.)



 - 단점이라면, 뭔가 핵심이 간결하게 잡히질 않습니다. 하고픈 말이 너무 많아요 감독님이. ㅋㅋ 그냥 우리네 삶 전반에 대해 말하고팠던 것 같은데. 가뜩이나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런 무리수 설정을 던져 놓고 그걸 갖고 이 얘기 저 얘기 건드리는 느낌이라 메시지가 그렇게 튼튼하게 와닿진 않았습니다. 좀 산만한 느낌이랄까요. 분명히 시작부터 끝까지를 일관되게 관통하는 테마가 있긴 한데 그 괴상한 설정 때문에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결말은... 뭐랄까. 부족하다기 보단 그냥 호감을 주기 쉽지 않은 마무리여서 역시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구요. 뭐 도입부에서 예상할만한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을 했고. 또 결말 직전의 전개를 보면 '아 그렇게 되겠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워낙 가차 없이 뚝 자르고 맺어 버린달까요. 잠시 헉. 하게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ㅋㅋㅋ '호신술의 모든 것'보다 훨씬 냉소적인 이야기다... 라고만 해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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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 그대로 '죽어라고' 싸워 이겨서 얻을 수 있는 전리품님들이십니다.)



 - 스포일러 없이 두리뭉실하게 대충 언급해보자면... 전 그냥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주인공과 그 복제품이 고심해서 뭔가를 결정하고 행동에 옮겼을 때 그것이 자신이 의도한 결과를 불러오는 일이 전혀 없어요. 그냥 모든 노력과 시도가 다 실패해버리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중반 이후에 확실하게 보여주듯이,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이긴다고 한들 얻을 수 있는 건 시한부 판정 전의 누추하고 지리멸렬한 삶 뿐이니 주인공에게도 복제품에게도 참 암울한 이야기이구요. 결국 누가 이기든 지든 결말은 달라질 게 없었던 거죠. 그렇게 삶은 부조리하고 누추하고.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내 삶이니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기에 집착하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고. 뭐 이런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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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면 끝장, 이기면 시궁창이라는 거지 같은 상황에서 그래도 둘 중 하나는 다른 길을 경험하긴 합니다.)



 - 그래도 괜찮았던 건 이게 결말을 맞이하는 순간의 그 느낌과 다르게, 다 보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냉소적이고 철저하게 냉정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뚱하고 짓궂은 유머들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에 분명히 주인공과 복제품의 처지에 공감을 하게 되고. 또 이들이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들은 연민의 정을 품기에 충분했습니다. 둘의 운명이 갈리는 마지막 순간을 본 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거의 철저한 배드 엔딩이긴 한데, 그래도 묘하게 '그게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닌 듯?'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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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이렇게 달려가서 다 죽여 버리면 속은 시원했을 텐데!!!)



 - 스포일러 없이 적는다고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뭔 소린지 짐작도 못할 뜬구름 잡는 소리를 늘어 놓는 건 이만하는 게 좋을 것 같구요.

 암튼 '호신술의 모든 것'의 유머 스타일이 맘에 드셨던 분들이라면 한 번 보실만한 영화입니다. 유머의 난이도(?)가 좀 더 올라가긴 했지만 어쨌든 스타일은 그 스타일 맞기 때문에 전 키득키득거리며 재밌게 잘 봤습니다. 결말도 맘에 안 들 수는 있어도 나름 합리적인 마무리이기도 했구요.

 그나저나 감독님 차기작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전작보다 더 험하고 매니악한 길로 가버리셔서 앞으로 투자 받기 쉽지 않으실 듯. ㅋㅋㅋ 관객평이나 평론가들 평도 전작보다 떨어지구요. 




 + 카렌 길런의 연기는 좋았습니다. 감독의 그 뚱하고 벙 찌는 스타일을 잘 표현하더라구요. 다만 이 분이 격투술을 배우는 장면에서 몸치에 운동치 모습을 보이는 걸 보니 괜히 웃겼습니다. 그간 맡았던 캐릭터들 때문에 위화감이... ㅋㅋㅋㅋ



 ++ 아니. 근데 이거 감독님이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의 전남편이었군요. 이제 알았습니다.



 +++ 근데 이 영화의 '시한부 환자를 위한 대체 복제 인간 서비스' 아이디어는 사실 몇 년 전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솔로' 앤솔로지에서 앤서니 맥키가 맡았던 에피소드가 그 내용이었죠. 물론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갑자기 낫지도 않고, 또 그 세상엔 이런 거지 같은 법은 없습니다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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