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영화네요. 런닝타임은 105분. 장르는 본격 감성 SF랄까(...)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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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같았음 전국 카페 인테리어 필수템이 되었을 삘의 포스터입니다.)



 - 1952년에 혁명적인 의학 발전이 있어서 세상에 못 고치는 병이 없어졌다는, 그래서 60년대에 이미 기대 수명이 100을 넘기게 됐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다음엔 간병인으로 일한다는 젊은 여성의 나레이션이 나오구요. 장기 기증,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뭐 이런 얘길 하네요. 그러고는 1978년 영국의 '헤일셤'이라는 기숙 학교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돼요. 


 말이 기숙 학교지 분위기를 보면 고아원 같은데 그런 것치곤 여건이 상당히 좋습니다? 교사들도 다 인간적이고 시설도 뭐 그럭저럭 나쁘진 않으면서 결정적으로 애들이 그냥 다 즐겁고 행복해요. 그리고 그 행복한 애들 중 캐시라는 여자애와 절친 루스, 그리고 캐시와 애틋한 사이로 시작해서 알 수 없게 어느새 루스랑 사귀고 있는 토미라는 남자애. 이렇게 셋이 주역입니다. 얘들이 그 알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인연을 맺고, 관계가 꼬이고, 그러면서 서로 안타까운 관계로 이어지다가 결국 성인이 될 때 즈음엔 작별하게 되는 게 영화 내용의 절반 정도 되구요. 


 아. 그 전에 대략 20여분쯤 지나서 나오는 중요한 정보가 있죠. 어차피 공식 예고편에도 나오는 것이고 하니 그냥 적겠습니다. 모르고 보는 게 제일 재밌겠지만 그냥 영화를 봐도 초반에 충분히 짐작을 하게 하거든요. 일단 디즈니 플러스가 초기 화면에서 보여주는 시놉시스가 이겁니다.


 '영국 기숙 학교의 절친한 친구들은 자신들이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키워지는 복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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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얘들이 그거라는 겁니다 그거. 이 귀여운 아이들이!!!)



 - 무려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2005년 소설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읽어보진 않아서 몰라요. 그래서 그냥 순수하게 영화만 놓고 얘기하겠습니다만. 그런 입장에서 보면 좀 당황스러운 문제가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일단 명색이 SF인데, 그것도 21세기에 나온 소설인데 발상과 시각이 정말 올드해요. 교환용 장기 적출을 위한 정부 운영 복제 인간 농장이라굽쇼. 허허. 보통 인간과 똑같은 속도로 자라는 복제 인간을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서 내장을 빼가요? 게다가 갸들을 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회 생활까지 시킨다구요. 하다 못해 '아일랜드'처럼 대충 쓴 SF에서도 회사가 복제 인간들의 인권 문제를 피하기 위해 별도의 공간에 몰아 넣고 키우고, '우리 제품들은 식물 인간처럼 수면 상태로 키워진다' 라고 뻥을 치다가 문제가 생긴다는 설정 정도는 넣어줬는데요. 좀 선을 많이 넘습니다.


 또 하나는 주인공들, 그리고 영화 속 복제 인간들이 보여주는 태도입니다. 얘들 중엔 자신들의 이 끔찍하도록 불공평한 인생을 제대로 거부하려는 놈이 하나도 없어요. 끽해야 어디서 주워들은 루머 갖고 뭐뭐를 하면 장기 적출을 얼마간 '유예'할 수 있다더라! 그럼 우리도 뭐뭐를 해보자!! 라는 정도에요. 정말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순하고 착하다 못해 멍청해 보이는 놈들 밖에 안 나오는데. 사실 이 정도면 '복제 인간은 영혼이 없다!'고 나아쁜 사람들이 주장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싶구요. 니들이 정말로 영혼이란 게 있으면 이러면 안 되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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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애 비주얼 역시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 말 하는 김에 하나 덧붙이자면. 이 믿을 수 없는 세계관에 대한 디테일이 정말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제거되어 있다는 것도 상당히 난감합니다. 듣자하니 원작 소설에선 설명 되는 부분도 영화에선 싹 다 빼 버린 모양이죠. 대표적으로 복제인간들의 불임 처리 얘기라든가. 

 암튼 당연히 스치듯이라도 묘사 될만한 이 제도(?)에 대한 반발, 저항 같은 게 아무 것도 안 나오구요. 일반인들과 복제 인간이 함께 생활하면서 생길 유대나 그로 인한 드라마 같은 것도 전혀 없구요. 뭐랄까, 세상이 그냥 진공 상태입니다. 런닝타임 내내 주인공들만 나오는 이야기라고 봐도 무방해요. 거기에다가 헤일셤 교사 두어명 정도. 좀 심하게 말하면 본인 시야 밖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대상 영속성 형성 이전의 유아 같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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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성인 배우로 바뀔 때 잠시 엄... 했습니다만. 뭐 다 예쁘고 잘 생긴 분들인 데다가 연기도 아역 연기와 잘 이어지는 느낌으로 잘 해주셔서 금방 납득했습니다. ㅋㅋ)



 - 일단 그래서 내용이 뭐냐면... 서두에 적은 대로 그냥 슬픈 운명을 타고난 세 아이가 지들끼리도 운명 꼬여서 슬프고 슬프며 슬프고도 구슬프게 사는 이야기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연기하는 '캐시'가 단독 주인공이고 키이라 나이틀리의 '루스'와 앤드류 가필드의 '토미'가 삼각 관계를 만들며 우정과 사랑을 소재로 멜로 드라마를 만들어내구요. 이야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건 당연히 다회차 장기 적출로 인한 죽음을 피해보려는 이들의 몸부림이겠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셋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정말 고풍스럽달까. 아주아주 옛날 순애보 러브 스토리를 다시 꺼내보는 기분이었어요. 특별한 사건을 포인트로 짚기가 애매할 정도로 그냥 공식적인 스토리로 쭉 흘러가다 마지막까지 전혀 새로울 것 없이 예상 그대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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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류의 순애보라면 당연히 디폴트로 들어갈 장면이기 때문에 영화에도 나온다. 뭐 그런 느낌?)



 - 문제는 이걸 또 제가 재밌게 봤다는 그런... ㅋㅋㅋㅋㅋㅋㅋ

 재밌다는 표현은 좀 그런가요. 암튼 먹혀요. 몰입이 되고 이입이 되고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던 이 이야기의 문제점들은 마지막까지 전혀 해결이 되질 않습니다. 기본 설정은 끝까지 납득이 안 되고 그에 대한 주인공들의 바보급으로 수동적인 대응도 달라지는 게 없으며 끝까지 이 세상을 현실로, 혹은 현실 실현 가능한 공상으로 받아들일만한 디테일은 주어지지 않아요. 작정하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정말 뜬구름 위를 산책하는 것 같은 이야기로 그냥 끝나거든요. 어떻게든 이 이야기에서 현실에 대입할만한 튼실한 건더기를 건져 보려고 참 열심히 머리를 굴려봤지만 실패했어요. 현실성과 개연성을 아예 작정하고 멀리 날려 버린 SF란 게 이렇구나. 라는 생각만 들었죠.

 근데 정말 단 하나, 이 영화의 아주 강력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분위기가 죽인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저런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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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스쳐가는 한 장면이라도 감성이 터지지 않는 장면은 용납치 않겠다는 만든 이들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 영상미 아주 훌륭합니다. 포스터만 봐도 느낌이 뙇! 하고 오지 않습니까. 게다가 배경이 가상을 빙자한 70~90년대 영국이고 이 시절 영국뽕이 시작부터 끝까지 아주 고퀄로 좍좍 살포가 돼요. 일단 도입부의 헤일셤에서 아이들이 헤일셤 교가를 합창하는 장면만 봐도 바로 납득 완료. 게다가 아역부터 성인역까지 배우들이 참 예쁘고 또 역할에 어울리고 연기도 잘 하죠. 덧붙여서 분량은 작지만 샬럿 램플링이나 샐리 호킨스 + 돔널 글리슨에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같은 아주 좋은, 게다가 비주얼에 강력한 영국뽕을 장착한 배우들이 받쳐주고요. 배우들이 이런 비주얼로 그런 연기들을 펼치는 가운데 감독은 시종일관 차분하면서 따뜻 애틋한 톤의 그림들로 감성을 고양시키고, 결정타는 레이첼 포트만의 음악이 날려줍니다. 사실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면서 음악에 크게 신경을 안 쓰게 됐는데. 이 영화의 음악은 참 그 자체로도 쏙쏙 꽂히면서 영화 속 장면과 상황들과 넘나 찰떡이더라구요. 유튜브 레이첼 포트만 채널을 찾아서 OST 플레이리스트를 반복 재생 중입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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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샬럿 램플링 교장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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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샐리 호킨스 담임쌤이라니. 그 학교가 대체 어딥니꽈!!!!)



 - 재료와 조리가 이 정도로 훌륭하다 보니 앞서 반복해서 열심히 까댔던 못 믿을 뻔한 스토리도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뭔가 아련한 추억의 옛날 소설을 다시 꺼내 읽는 기분이랄까요. 어릴 때 종종 보고 읽고 접했던 참으로 답답하게 착한 애들이 나오는 수난기st. 멜로 드라마들 있잖아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모자란 데 많지만 그 시절 작품이고 클래식이니까, 그리고 추억의 작품이니까 마냥 관대하게 다시 보게 되는 그런 느낌. 그래서 사실은 초반 좀 넘기고 나서부턴 투덜거리는 거 없이 주인공들 처지에 몰입하고 안타까워하며 열심히 봤어요. 어차피 결말은 뻔하지만 이런 이야기에서 막판에 무슨 반전 같은 게 나오면 오히려 그게 깨는 느낌이었겠죠. 불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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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들 다 참 잘 했지만 그 중에서도 캐리 멀리건은 진짜 정말 너무 잘 했어요. 걍 이 분의 표정이 개연성이라는 느낌. ㅋㅋ)



 - 그냥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차피 나온지 12년이나 됐고, 보실 분들은 당시에 다 보셨을 테니 쓸 데 없는 얘깁니다만.

 제대로 된 SF 같은 거 바라는 분들은 걍 영원히 패스하시면 되구요.

 좋은 배우들이 최선의 비주얼(?)로 선사하는 영국뽕 터지는 고풍스런 순애보. 꼭 그런 게 아니어도 아련아련하고 참 말끔하게 애상적인 멜로 드라마 같은 거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만족하실 겁니다.

 계속 갬성 갬성거리면서 살짝 놀리는 투로 얘길 했는데요. 정말 이 정도로 강력하게 감성 터지는 영화는 언제 봤는지 잘 기억도 안 나요. ㅋㅋ 뭐든 이 정도로 강렬해 버리면 다른 단점들을 눌러 버리는 강력한 매력이 되는 법이죠. 이 영화가 그랬습니다. 잘 봤어요.




 + 생각해보면 뭐 제가 말도 안 된다고 신랄하게 까댄 저 기본 설정에 대해 나름 핑계를 마련해두긴 했어요. 오프닝의 자막 힌트로 추리해보자면 1950년대에 클론 + 이식 수술 기술이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주인공들 나이를 보나 극중 대사들, 헤일셤의 풍경을 보나 이 제도(?)가 시행된 건 60년대 정도의 일이었겠죠. 그 땐 사람들의 인권 의식이나 사고 방식 같은 게 지금이랑은 많이 달랐으니까. 뭐 그렇긴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도하게 생략된 디테일 탓에 이게 믿을 수 있는, 진지하게 생각해 봄직한 이야기란 생각은 안 들구요. ㅋㅋㅋ



 ++ 아역들이 참 다 예쁘고 연기도 잘 해서 지난 12년간 크게 되신 분은 없나... 하고 찾아봤는데.

 어린 루스 역의 엘라 퍼넬이 '미스 페레그린'과 '아미 오브 더 데드'(바티스타  딸 역할입니다 ㅋㅋ)에 나온 걸 제외하면 뭐 그냥... 흠;



 ++ 그냥 곡이나 한 번 들어보시죠. 이렇게 긴 뻘글을 읽느라 인생 낭비하셨으니 48초라도 보람찬 시간을... ㅋㅋ



When we are scattered

Afar and asunder
Parted are those
Who are singing today

When we look back
And forgetfully wonder
What we were like
In our learning and play

Oh, the great days
Will bring distance enchanted
Days of fresh air in the rain
And the sun
How we rejoiced as we struggled
And panted
Echoes of dreamland
Hailsham lives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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