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열정' 을 다시 봤어요.

2022.10.08 20:11

thoma 조회 수:465

조용한 열정 A Quiet Passio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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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데이비스 감독. 신시아 닉슨(에밀리 디킨슨)

별 이유없이 생각이 나서 시리즈온에서 다시 봤어요. 

실제로 에밀리 디킨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1830년에 나서 1886년에 사망했다는 거, 기록에 남은 다닌 학교나 가족 구성원 정도, 그 이외에 삶에서의 개인적인 선택의 이유 같은 건 알기 어렵겠지요. 생전에 정식 출판된 시집도 없고 자전적 기록도 없으니 대부분 시간을 은거하며 지낸 이유 같은 건 정확하게 알기 어렵겠습니다. 외부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 남은 자료와 함께한 주변 사람들이 전해 주는 조금의 일화들로 알 수 있을 뿐인데 그 중에서 이 영화는 중요한 자료인 시로, 표현될 수 있는 시인의 삶을 함께 건져 올려가며 보여 주는 방법을 씁니다. 

일부 정원 산책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실내에서 진행되는 영화입니다. 카메라의 시점은 디킨슨의 눈높이에서 실내를 훑어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실내의 소품들과 벽지와 커튼들은 이 영화에 차분함과 고상함을 조성하고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드라마를 겪어 나가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이분의 세계를 이루는 대부분은 가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며 부모의 죽음을 차례로 겪고 본인에게도 병이 찾아오니 그 인생 고난에 대한 반응들을 가지고 드라마틱한 상상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그런 고난의 극적인 성격을 지그시 누르며 전개합니다. 그러면서 화면 한 쪽에 시가 뜨고요. 

발작적인 병의 고통과 새벽의 글쓰기는 말년까지 계속됩니다. 

어느 저녁 손님들과 가족이 모여 연주를 듣는 거실을 디킨슨이 조금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 봐요. 이런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영화가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격렬한 감정과 고통스런 감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신시아 닉슨은 차분하고 느린 움직임과 풍부한 얼굴 표정이 조화된 훌륭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디킨슨을 비애에 젖어 있거나 나약하거나 신비한 존재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의지와 고집을 지녔으며 때로는 괴팍함을 드러내는 선량한 사람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배우로서 이런 역을 연기했다는 것은 복인 것 같습니다.

소설도 그렇지만 영화를 보며 얻는 효용 중에 어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에 정당성을 한 스푼 정도 더할 수 있다란 점을 생각합니다. 통념적, 종교적 규율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 싫어서 사람을 안 만나고 집 안에서만 산다는 것이 무어 그리 큰 일도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 날씨가 화창하다고 내가 꼭 밖에 나가야 할까요, 내가 밖에 안 나가도 날씨는 날씨대로 화창하고 있겠지요. 

아래는 목사의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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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영화에서 가장 밝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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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새벽의 방문자를 맞이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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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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