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작이니 올해로 20주년 되겠습니다. 런닝타임은 90분. 스포일러 있어요. 어차피 보지 말라는 글이라 아무 말 막 할 겁니다. ㅋㅋㅋ 혹시 이 영화에 대해 좋은 기억과 감정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글은 피해주시길. 제게 악감정 생기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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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배우들 나이는 개봉 당시 기준 김태우 32세, 김민정 21세였네요.)



 - 영화 포스터에 자랑스럽게 적혀 있듯이 김태우는 32세. 보습 학원 국어 강사입니다. 대학 시절 똑똑하고 말 잘 하고 리더십 있는 인기 캐릭터였던 것 같지만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 보려다가 아무 것도 못 하고 그냥 자포자기 상태로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를 하며 먹고 살죠. 게다가 다들 자리 잡고 잘 나가는 대학 시절 친구들 & 옛 애인 때문에 더욱 더 쭈굴쭈굴. 괜히 직장에서 일부러 아싸 놀이를 하고, 학생들 앞에서 쏘쿨, 시니컬한 척 폼 잡고 그러고 살아요.

 역시 김민정은 포스터대로 17세, 고1입니다. 집안에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김태우 못지 않게 쏘쿨, 시니컬, 폼을 잡으며 원조 교제로 용돈 벌이도 하고 다닙니다만. 아직 애라 그런가, 새로 옮겨간 학원에서 만난 김태우 선생의 쏘쿨함에 그만 사랑을 느껴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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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에 여성팬 꽤 많았던 김태우쌤. 극중에서 한 번 나오는 '살 좀 찌우세요' 라는 대사를 위해 다이어트까지 하셨다고.)



 - 윗 문단만 읽어봐도 제가 이 영화를 왜 재미 없게 봤는지 짐작이 가시겠죠. ㅋㅋㅋ

 그러니까 뭔 컨셉인진 알겠어요. 아직 어려서 세상이 힘들고 세상에 상처 받은 17세와 나이는 좀 먹었다지만 그래봤자 별 다를 것 없이 세상이 힘들고 상처 받은 32세가 만나서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 뭐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 가 될 예정이었던 거겠죠.


 근데 전혀 공감이 안 됩니다. 특히 김태우 캐릭터 말이죠. 이 분의 문제는 상당히 현실적인데 그 현실적인 디테일에 공감이 안 간다는 겁니다.

 아니 뭐 인생 맘대로 안 풀리니 의기소침하고, 그러다 좀 찌질해지고 그런 건 알겠는데. 아 이걸 뭐라 해야 하나... 그러니까 옛날 홍상수 영화 캐릭터의 말 적은 버전 같아요. (그러고보니 이 분 실제로 홍상수 영화에도 나오셨죠 ㅋㅋ) 가만 보면 세상 탓, 남 탓으로 버티는 양반 같은데 가만 보면 본인부터가 딱히 열심히 사는 것도 아니구요. 매우 평범한 기준으로 평가할 때 뭐가 그리 상처였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초반에 이런저런 장면들로 좀 보여주긴 하는데 '고작 그것 때문에?' 라는 느낌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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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여자가 슬픈 일로 바로 뒤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유는 몰라요. 그냥 감성으로 느껴야!!)


 김민정의 경우엔 좀 낫습니다만. 이 분의 문제는 그냥 비현실적이라는 겁니다.

 그냥 뭐 17세니까, 그땐 그럴 수 있지! 라고 납득해줄 순 있지만... 사실 이 캐릭터는 아무 설명 없이 그냥 삐뚤어져 있다가 나중에 딱 한 장면에서 1분짜리 대사로 자기 처지를 요약 설명해서 끝내버려요. 그래도 뭐... 17세니까!!! 라고 넘길 순 있는데요. 그냥 캐릭터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대사들이 굉장히 구리고 캐릭터의 행동이나 성격이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냥 세기말 갬성을 위한 캐릭터 같은 느낌.


 덧붙여서 이야기 전개도 되게 헐겁습니다. 역시 세기말 갬성 때문이었을까요. 둘이 어째서 어떻게 끌리는지, 어떻게 서로를 알아가고 어떻게 이해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그냥 없다시피 합니다. 그냥 끌리고 바로 사랑하지만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영문을 알 수 없게 서로를 멀리하다가 마지막엔 그냥 다시 통해요. 도대체 왜 결말 직전에 김태우가 운전 면허 시험 보는 걸 그리 길게 보여주는지, 뭐땀시 갑자기 주저 앉아 대성통곡을 하는지 우린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감성이 통하면 감동 받으시고. 아님 말고라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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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체통 뒤에 사람 있어요.)



 - 이것 역시 주인공은 김태우입니다. 따져보면 근 한 달 동안 제가 본 한국 로맨스 영화들 중에 여성이 실질적 주인공이거나 최소한 남자 주인공과 동등한 위치였던 영화가 하나도 없는데 ('미술관 옆 동물원'은 다르려나요...) 이 영화도 마찬가지구요. 시작부터 굉장히 김태우 과몰입 모드로 시작해서 끝까지 김태우 과몰입으로 끝납니다. 애초에 김민정은 90분 런닝타임 중에 25분쯤 되어서야 대사 같은 걸 치기 시작하거든요. ㅋㅋ 그러니까 결국 어느 날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진 어리고 예쁜 여자 덕에 삶의 의미를 되찾는 망한 예술가 아저씨 이야기가 되는데요.


 보니깐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던데 대체 어쩌다 이런 얘기가 나왔나... 했더니 각본은 다른 사람이 썼더라구요. 그래서 그 분을 검색해보니 1974년생에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2000년에 이 영화 시나리오가 공모에 당선되었다는 정보가 나오네요. 음... 섣부르고 또 작가님껜 죄송한 짐작이지만 이 영화의 김태우 과몰입 모드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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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 같은 축복 때문에 넋이 나간 김태우 선생님의 모습입니다.)



 - 근데 뭐 다 좋습니다. 나이 든 예술가가 젊은이 만나는 이야기 자체야 요즘도 계속 만들어지는 인기 장르(?)이고. 어린 여자랑 연애하는 남자 이야기라고 해서 다짜고짜 안 좋은 소리부터 할 필요도 없구요. 근데 문제는 앞서 말 했듯이 설득력이 없는 데다가, 이야기의 상상력이 넘나 세기말 수준으로 단순하다는 겁니다. 


 왜 뭐냐 그, '인생 바닥'이라는 상황을 꼭 굳이 성적인 무언가로 나타내야 직성이 풀리던 그 시절 유행 있잖아요. 그래서 김태우는 성매매 여성을 찾고 김민정은 원조 교제를 합니다. 이게 이들의 상처와 고독을 상징하는 장치에요. 한 번 나오고 마는 것도 아니고 상당한 비중을 갖고 자꾸 나와요. 그리고 김민정 캐릭터는 후반에 원조교제 아저씨의 애를 임신하고, 낙태를 하죠. 

 또 두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간들(...)의 묘사도 좀 그렇습니다. 김태우네 학원 선생들, 대학 동창들은 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매우 속물적으로 굴면서 김태우를 따돌리구요. 김민정은 뭐, 함께하는 인물이 원조교제 장년 아저씨 하나 뿐이니 말 할 것도 없네요. 암튼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에요. 이 지구에서 오직 주인공 둘만이 순수하고 상처 받은 사람이다... 라는 식으로 몰아가니 이야기의 설득력이 떨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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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판기 옆에 저 분이 바로 원조교제남이신데요. 짤이 흐려도 다들 어떤 배우신지 알아보실 듯. ㅋㅋ)



 - 암튼 이러저러한 관계로 '로맨스'는 처음부터 사망이나 다름 없는 상태이고 마지막까지 전혀 살아나지 못합니다. 김태우는 걍 인생 구질구질하고 비참한데 예쁜 여자애가 들이대니까 좋아서 사귀는 것 같고. 김민정은 애초에 김태우를 구원하기 위해 태어나 살아 온 캐릭터니까 당연히 그러는 것 같고 그래요. 여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상처받은 자들의 유대' 역시 마찬가지죠. 한 놈은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대신 뭐 그 정도로 저러는지 공감이 안 되고. 다른 한 놈은 그냥 작가의 환상 속에서 툭 떨어진 느낌이라 둘이 나중에 뭘 하든 감동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시 말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지금도 '갸들이 서로 이해를 하긴 한겨? 어떻게??'라는 의문이 사라지질 않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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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김민정은 참으로...)



 -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김민정이 너무 예뻐요. (쿨럭;)

 김태우도 '아 이 분 예전에 여자들에게 인기 꽤 많으셨지'라는 추억이 떠오를만큼 수려한 비주얼을 뽐내지만 김민정이 너무 예쁩니다. 네. 진심입니...

 그리고 "선생님은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주 도발적인 질문인데!?" 같은 괴이한 대사들의 향연 속에서도 김태우, 김민정 둘 다 최선을 다 해 연기해주고요. 덕택에 몇몇 장면들은 이야기와 별개로 훈훈하고 감성 터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네요.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그 전설의 OST죠. 루시드 폴 전설의 시작이었던 바로 그!! ㅋㅋㅋ 저도 그 시절에 음악만 되게 많이 들었죠. CD도 샀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진 모르겠고. 리핑해 놓은 파일로 요즘도 종종 듣고 그러는데요. 이걸 영화에서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써먹었더라구요. 몇몇 장면들에서 수록곡들이 거의 풀버전 길이로 흘러나오면서 뮤직비디오 갬성을 조성하는데, 딱 그렇게 음악 깔린 장면들은 감성 터지고 좋았습니다. ㅋㅋㅋ 그래도 영화가 화면은 예쁘게 잡는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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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보면 그 시절엔 버스 정류장이 참 낭만적인 공간으로 많은 작품들에서 사랑받았던 것 같은데. 요즘도 그런가요.)



 - 어차피 다 안 좋은 얘긴데 더 길게 떠들어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단 이 영화를 좋게 보신, 아름다운 추억 갖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정중히 사과를 드리구요(...)

 뭐 솔직히 저도 그 시절에 바로 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전혀 다른 감상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제 당시 나이의 두 배에 육박하도록 나이를 먹어 버린 상황에선 소감이 이따위로 밖에 안 나오네요. ㅋㅋㅋ 너무 늦게 본 제가 죄인입니다. ㅠㅜ

 배우들도 예쁘고 그림도 예쁘고, 거기에 훌륭한 곡들이 예쁘게 잘 입혀진 감성 터지는 영화입니다만. 아직 안 보셨다면 차라리 영화 내용을 편집해서 만든 뮤직비디오를 즐기시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구요. 당시에 이미 좋게 봐 버린 추억이 있는 게 아니라면 이 시점에 굳이 챙겨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으로 마무리합니다.




 + 보면서 진짜 황당했던 것들 중 하나가 김민정의 유일한 친구, 다이어트로 스트레스 받다가 자살한 친구였는데요. 하필 스무살 김민정의 형상을 한 친구가 옆에서 계속 '너 정도면 괜찮아~' 라는 드립을 치니 더 극한 스트레스로 내몰렸던 게 아닌가 하는 뻘생각을 했습니다(...)



 ++ 윤진서가 나오더라구요? 김태우를 쫓아다니는 학원 여학생3 역할인데. 어디서 봤더라... 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ㅋㅋ 



 +++ 참고로 이 영화의 각본을 쓰신 분은 결국 2013년(!)에 '펀치'라는 제목의 장편 소설을 출간하면서 등단의 꿈을 이루셨습니다. '오늘의 소설상'도 받으시고 그러셨던데. 영화 각본을 팔고도 13년이나 더 고생을 하셨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이 글이 굉장히 죄송스러워지네요. 죄송합니다. ㅠㅜ



 ++++ 아 맞다.


 (무려 240p의 구린 화질을 주의하세요.)


 어쨌든 OST는 좋은 영화이니 노래라도. ㅋㅋ 곡은 정말 잘 뽑았어요. 영화 분위기랑도 어울리구요.

 참고로 뮤직비디오는 영화와 별개로 촬영한 거더군요. 영화 속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배우들 목소리만 따 와서 합친 듯.



 제가 그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이거였는데. 이것도 영화 속에 나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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