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용왕삼태자

2022.10.12 09:28

돌도끼 조회 수:519

되도록이면 아래에 있는 중국판 용왕삼태자 글을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셨으면 합니다.

http://www.djuna.kr/xe/board/14162421


최동준 감독이 1977년에 발표한 한국영화입니다. 영화크레딧에는 최동준 감독 단독명의이지만 개봉당시 홍보물등에는 진쵸바이라는 사람이 공동감독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이 진쵸바이라는 사람은 영화의 특수촬영 장면들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무술감독, 일부 출연진 등에 중국사람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 크레딧에 중국(대만이든 홍콩이든)영화사와 합작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스토리는 그러니까...
용왕삼태자가 천년째 수련을 하던 도중에 큰 위기를 맞습니다. 위기를 피해 잠시 바위로 변해있었는데 그때 지나가던 아가씨가  잠시 거기 앉았다 갑니다. 그 후 삼태자는 은혜를 갚기 위해 그 아가씨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예... 뭐... 75년 혹은 77년에 나왔다는 대만영화 '용왕삼태자'하고 똑같습니다. 스토리만 같은 게 아니라 장면 나오는 순서도 같고 대사도 같습니다. 그치만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영화 '용왕삼태자'는 한국배우들이 출연해서 한국말로 대사를 합니다. 그러니까, 중국 영화 '용왕삼태자'와 같은 대본을 가지고 한국에서 따로 촬영해서 별개의 영화를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얼핏 표절이 아니냐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인데... 근데, 공동감독이라고 하는 진쵸바이라는 사람이 말입니다. 따로 한자표기는 하고있지않지만 아마도 金超白으로 추정이 되는데... 중국판 '용왕삼태자'를 만든 김성은 감독의 또다른 이름이 김초백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한국판 '용왕삼태자'는 적어도 출처표기는 하고있는 셈인 모양이고, 합작이라 명시하지는 않고있더라도 어떤 합의하에 만들어진 영화일 수도 있겠죠.

한국판에서 여주인공 정금봉역은 70년대 한국 무술영화계를 대표하는 여협 김정란 여사가 맡았습니다. 중국어판에서는 가릉이 했던 역이니 나름 구색이 맞는다 하겠지만... 당시 그쪽 동네에서는 여협을 연기할 여배우들이 넘쳐났었던 데에 비해 한국에서는 김정란 말고 달리 사람이 없긴 하네요.

캐스팅이건 복장이건 미술이건 세트/배경이건 장면구성이건 한국판이 중국판과 비교해서 비슷한 구석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로 대본만 보고 따로 만든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지만 상당히 달라보입니다.
이야기도 완전히 똑같지는 않고 몇몇 부분 차이를 보이는 곳들이 있는데 이건 나름의 변형을 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연출해석상/편집상의 차이에서 생길 수 있는 오차범위 이내인 것도 같고요. 같은 대본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연출하면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지 예시로 삼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두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주인공인 용왕삼태자가 중국판에서는 성인남자였는데 한국판에서는 김정란보다 한참 어린 아역배우 전효진이 연기한다는 겁니다.
배우의 나이가 어려짐으로 해서 중국판에서 볼수있었던 개그캐릭터로서의 면모가 퇴색되는 면이 있습니다. 엉뚱하고 유치한 짓을 많이 벌이는데 이게 한국판에서는 그냥 어린애가 유치한 짓을 하는걸로 보이거든요. 글구, 주색잡기에 빠삭한 놈팽이인데 한국판에서는 배우만 어린애로 바뀌었을 뿐 대본은 그대로라서 그런걸 어린애한테 시킵니다.

군데군데 대사가 좀 이상하거나 감독이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연출한게 아닌가싶은 부분이 보입니다. 중국어 대본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생긴 오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품이나 의상등도 아무래도 중국이 배경인 이야기를 한국에서 만들어 어색해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뭐 당시의 전형적인 한국산 짜가 중국영화의 모습이긴 하지만요.

두 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건 거대괴수들의 격투장면들 뿐입니다. 영화 통틀어 괴수가 나오는 장면은 몇분 안되기 때문에 그냥 별개의 영화 두편으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합작영화라면 보통은 영화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필요최소한의 부분만 독자촬영분을 쓰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반대로 영화 대부분을 따로 만들고 최소한의 장면만 공유한거죠.

거기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최소한의 공유 부분이 애시당초에 '용왕삼태자'와는 관계가 없는 다른 영화의 것이었다는 겁니다.  중국판 '용왕삼태자' 감독이 진쵸바이/김성은이니까 그 괴수 푸티지를 진쵸바이가 만든것이라 간주하고 한국판 크레딧에 특촬감독이라고 이름을 올려준 것이 아닌가싶은데 그 장면들은 진쵸바이가 만든 게 아니라 기존의 다른 대만 환타지 영화, '주홍무'에서 가져와 짜깁기한 겁니다. '주홍무'는 서대균 감독의 작품이고 특수효과 연출을 한 것은 당시 츠부라야 프로덕션 소속이던 타카노 코이치입니다.

애초부터 진쵸바이는 '용왕삼태자'의 특수촬영 장면을 연출했다고 이름을 올릴 자격이 없는거죠.

그러니까... 대만에서 원래 있던 환타지 영화 '주홍무'의 장면을 재활용해서 '용왕삼태자'를 만들었는데 그걸 한국에서 다시 만들면서 대만판이 재활용한 '주홍무'의 장면들을 그대로 가져다쓴 모양새입니다. 그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과연 대만판 '용왕삼태자'를 만든 사람들이 '주홍무' 제작진들에게 정식으로 양해를 구하고 장면을 가져다 쓴 걸지, 한국판 '용왕삼태자'를 만든 사람들은 대만판을 만든 사람들과 정식 합의를 하고 진짜 합작해서 만들었던 걸지... 최소한, 한국판 제작진이 '주홍무'의 제작진에게 양해를 구하고 장면을 가져다 쓰진 않았을 거란 건 분명해보입니다만...

여기 더욱 기괴한 일이 있습니다.
괴수격투의 원본이 되는 그 '주홍무'라는 영화는 한국에도 소개된 영화였다는 겁니다. 71년에 멀쩡히 극장개봉했고, 당시에 '봉신방' '속봉신방' '주홍무'등 대만산 환타지 영화들이 연달아 개봉해 적어도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화제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용왕삼태자'가 개봉한건 77년. 간크게도 불과 6년전에 개봉했던 영화의 장면들을 복붙한 짝퉁영화를 내놓았다는 거죠. 그것도 한국영화가 중국영화 장면을 짜깁기해서... 지금이라면 난리가 나고 관련자들이 매장될 일이죠.
그런데 그게 먹혔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서 '주홍무'는 그런게 있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용왕삼태자'는 꾸준히 회자되면서 장르팬들 사이에서는 나름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괴수영화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본격 괴수액션을 시도한 중요한 영화, 또는 환타지 영화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일찌감치 시도되었던 전설적인 환타지 영화라고요. 아니 이 영화에 나오는 괴수 푸티지는 전부다 '주홍무'에서 복붙한 것들인데 원본은 묻히고 짜깁기 재활용 영화가 전설이 된 거예요.

'용왕삼태자'가 지금과 같은 입지를 갖게된 건 어렸을 때 영화를 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중장년층의 푸시덕입니다. 당대에 '용왕삼태자'를 보고 열광했을 세대는 그보다 몇년 앞서 나왔던 '주홍무'의 존재를 몰랐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주홍무'를 봤던 세대는 '용왕삼태자'를 보지않았거나, 거기 더해서 자신들이 '주홍무'를 보았던 기억, 경험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지 않은거라고 볼수 있겠죠.
만약에 그런 경험이 제대로 전달이 되었더라면 '용왕삼태자'는 나왔던 당대에서부터 재활용 짝퉁 괴작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을테고 조금 덜 존중받았겠죠. 그렇지만 '주홍무'를 본 세대와 '용왕삼태자'를 본 세대사이-불과6년에 불과하지만-에 단절이 생겨서, 그정도의 정보조차 전달이 안되어 이 한국판 '용왕삼태자'만이 독보적인 존재로 남아버린 겁니다. 이러한 세대간의 단절-불과 몇년만 지나고나면 사람들 기억속에서 까맣게 잊혀져버리는-은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에는 늘 벌어져왔던 일인것 같긴 합니다만...


근데... 솔직히 말해서 '주홍무'보다 '용왕삼태자'가 더 재미있긴 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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