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잡담...가산디지털단지

2022.08.07 05:09

안유미 조회 수:573


 1.서울의 안가본 곳...이랄까. 아직 맛보지 못한 곳을 다 돌아보기 위해 안가본 곳을 한번씩 가보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탐험은 대체로 '역'이나 역을 중심으로 한 상권일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면 한번쯤 한남동을 돌아보고 싶지만 '한남동'이라는 게 한남역을 말하는 건지 한남역과는 상관없이 조성된 부촌을 말하는 건지 헷갈리거든요. 범위 또한 어디에서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특정 역과, 역을 끼고 형성된 상권을 둘러보는 정도예요.



 2.요전엔 5528번을 잘못 탔어요. 무언가 버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들어간다...싶은 느낌이 들었고 가본 적 없는 방향으로 향하더라고요. 버스 노선표를 보니 가리봉을 지나 가산디지털역으로 가고 있었어요.


 가리봉이라면 범죄도시에서 나온 그 동네 아닌가? 가산디지털역이라면 조선족이 많다는 곳 아닌가...? 라고 고민했어요. 어차피 버스를 잘못 탄 김에 안가본 동네를 탐방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창밖 풍경을 보고 내릴지 말지 결정해보기로 했죠.



 3.가리봉 쪽을 지나며 창밖을 보니 그럭저럭 상권이 형성된 것 같긴 했는데...뭔가 드문드문 있는 느낌이라 꽤나 발품을 팔아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결국 가산디지털단지 역에서 내리기로 했죠. 가산디지털단지역 뒤에도 종점까지는 몇 개의 역이 더 있었는데, 가산디지털단지역(이하 가디역) 같은 메인 역 뒤에는 조금 낙후된 곳이 나오지 않을까...싶어서 그냥 내렸어요. 원래는 우영우를 봐야 할 시간이었지만 버스를 잘못 탄 김에 그냥 새로운 동네 탐방으로 전환한 거죠.



 4.휴.



 5.가디역에서 내려서 느낀 첫 느낌은 마곡역과 매우 비슷하다-였어요. 크게 뽑힌 건물들 안에 아케이드식으로 여러 상가가 입점해 있고, 길거리에도 이런저런 가게가 죽 늘어서 있었어요.


 식사를 하기엔 늦었고 커피를 혼자서 마시는 것도 별로라 술집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원래라면 나의 감을 믿고 술집이 있을 만한 곳을 걸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네이버 지도를 켜서 근처의 술집들을 물색해봤죠. 그렇게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의 술집들이 입점해 있는 방식은 문정역과 비슷했어요. 길가가 아닌, 큼직한 아케이드 상권 안에 이런저런 술집들이 입점해 있는 스타일이었죠. 



 6.개인적으로 아케이드 구조의 상권을 돌아보는 걸 좋아해요. 밖을 걸을 때는 전혀 알 수 없는 가게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보면 빼곡히 입점해 있거든요. 여러분은 그런 걸 보면 어떤 기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전율을 느끼곤 해요.


 이렇게 수많은 가게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창업이 되고, 그 가게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가게가 돌아가기 위해 고용된 수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거니까요. 내가 처음 가는 곳인데 그곳에 그렇게 많은 밥집...호프집...술집, 온갖 위락시설들이 빼곡히 입점해 있고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 고용된 사람들이 내가 와서 관측하기 한참 전부터 분주히 살아왔었다는 것 말이죠.


 그날 가본 곳은 무슨 라이언스밸리라는 곳이었는데 A동 B동 C동이 따로 있을정도로 컸어요. 그리고 코로나 때와는 달리 그 늦은 시간까지도 아케이드 내의 가게에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라이언스밸리 정도 규모의 아케이드나 몰은 서울에 수십곳은 있고, 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우글거리며 서로의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니...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전율이 느껴지는 거죠.



 7.그런 아케이드 내에는 가끔 오래된 자영업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있어요. 가디역은 아니고 광화문이나 경복궁 쪽 낡은 아케이드 말이죠.


 그런 곳들을 둘러보다가 굉장히 공들여 인테리어가 된 중국음식점 같은 곳을 보면 그래요. 그곳에 놓여있는 등이나 격자같은 곳에 조금씩 쌓인 먼지...낡아빠진 흔적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죠.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 이 중국음식점을 열었고, 이 음식점을 하면서 자식들을 낳고...그들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보내고 대학을 보내고 어쩌면 결혼까지 시켰을 수도 있는 아주 긴 세월. 한 곳에서 오랫동안 요식업을 하면서 한 명의 아이를 어른으로 키워내는 세월을 겪고도 계속해서 오늘도 내일도 내년에도 계속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되는 음식점이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곤 하죠. 그리고 2022년의 내가, 별 생각 없이 변덕으로 발을 들이긴 했지만 그 중국음식점에 쌓인 먼지와 손때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도 말이죠. 


 길가를 걸어가면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가게...굳이 아케이드 식당가에 들어가 또 지하 1~2층으로 내려가서 어딘가 구석 자리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그런 음식점을 보면, 이렇게 발품 팔아서 먼 길을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되곤 해요.



 8.아, 말이 샜네요. 어쨌든 가산디지털단지 역의 가게들은...신도시여서 그런지 그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가게는 없었어요. 그래도 아케이드를 구경하는 재미,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활기를 느끼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다가...이젠 정말 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다죠. 그곳에 있는 술집들을 털어보고, 다시 가디역에 올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된 거예요.


 왜냐면 치킨이란 건 어느 동네에서 먹든 똑같잖아요? 스타벅스도 어느 동네의 스타벅스를 먹든 똑같고요. 굳이 문정역에 가거나 굳이 구로역에 가거나 굳이 상수역에 갈 일은 결국 술집에 가기 위한 일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동네를 갈 때마다 개인 카페와 바를 늘 털어보죠.



 9.사실 나는 bar에 대해 의구심을 좀 가지고 있어요. 강남이나 아주 부촌에 있는 바 이외의 바들에 대해 말이죠.


 왜냐면 문정역, 가디역, 마곡역, 발산역, 여의도...그 어딜 가봐도 bar는 역 하나에 최소한 10개씩은 있잖아요. 여의도처럼 좀 많다 싶은 곳에는 한 건물마다 7~8개씩 입점해 있고 그런 건물이 십수개는 되거든요. 


 아니 그렇다면 그 수많은 바에서 일할 바텐더들이 다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든단 말이죠. 애초에 그 수많은 바들을 먹여살릴 사람들은 또 어디서 나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고요. 



 10.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이버 지도를 켜서 나오는 bar들...스마트폰 모니터에는 그저 점으로 표현될 뿐인 그 가게들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매번 의심이 들곤 해요. 저렇게 많은 바가 있다고? 저렇게 수많은 바에 취직할 바텐더가 서울엔 그렇게 많이 있는 건가? 저렇게 많은 바를 먹여살릴 부자들이 서울엔 충분히 있는 건가? 라는 의심 말이죠.


 하긴 그래요. 서울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살아요. 그리고 위에 썼듯이 가디역의 라이언스밸리같은 대형 아케이드몰은 서울 안에만 수십개...어쩌면 백 개도 넘게 있고요. 그 모든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고 그 모든사람들이 소비를 하는 중이라니? 동시에...수백 개나 되는 몰이 망하지 않고 계속 돌아가도록 만드는 소비와 수요가 있고...그곳에 전기와 물이 매일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매우 경악스럽단 말이죠.


 어쨌든 그래요.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곳에서만 살면 별생각 안들거든요. 하지만 매일 매주 다른 동네를 다녀보면 어느 순간부터 전율이 느껴지곤 해요. 어딜 가도 큰 주상복합과 몰과 정돈된 거리가 있고 그곳을 꽉꽉 채우는 사람들을 매번 보면 말이죠. 한번도 못본 사람들, 그리고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사람들과 가게들. 그곳에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있는 빛과 열과 물과 전기...그런것들을 오늘 내가 보고있다고 생각하면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다시 한번 놀라게 되죠. 서울은 한국에 비하면 작고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작고 미국은 지구에 비하면 작고 지구는 태양계에 비하면 작고 태양계는 우리은하에 비하면 작고 우리은하 급의 은하는 우주에 넘칠 정도로 많잖아요? 한데 나는 서울의 크기따위에 매일같이 놀라고 있다니 말이죠. 글이 길어졌으니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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