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대화...(미친짓)

2017.12.30 17:15

여은성 조회 수:1063


 1.전에 일기에 나온 29라는 닉네임의 사람이 있죠. 29라고 쓰니까 어쩐지 호칭 같지가 않아서 자꾸 설명하게 돼요. 그래서 그 사람이 다시 등장하게 되면 다른 닉네임을 정해줘야 하나...라고 고민중이예요.



 2.이전에 썼던가요? 1조원 사이즈의 부자집이라고 해도 얌전히 살아야만 하는 남자가 있다...라고 말이죠. 그 사람은 29의 동창이예요. 아침에는 일을 나가고 저녁에는 늦지 않게 시간을 지켜서 돌아와야 하고 술은 일 단위가 아니라 달 단위로 가벼운 술자리를 가지는 게 전부예요. 왜냐면 그게 그 집의 가풍이니까요. 그야 여행을 가거나 가구를 살 때 씀씀이가 크긴 하지만 그래봐야 그건 일상일 뿐이잖아요.


 나는 처음에 그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빌어먹을! 1조라고요! 1조! 그야 그게 본인 돈은 아니지만, 가업이 1조단위의 규모인데 미친짓은커녕 일반적인 유흥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니...! '가풍이 그렇다'라는 어이없는 이유로 말이죠. 그 남자가 가여웠어요. 물론 내 관점에서요. 실제로 그 남자는 만족하며 살 수도 있겠죠.


 

 3.나는 그렇거든요. 많은 돈이란 건 풍족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미친짓을 하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생활비라는 건 그렇잖아요. 생활비가 많아져봐야 생활은 여전히 생활이고 일상은 여전히 일상일 뿐이예요. 미친짓에 손을 대지 않는다면 돈이란 건 고작 조금 더 비싼 짜장면, 조금 더 비싼 술, 조금 더 넓은 집, 조금 더 푹신한 침대, 다리를 쭉 펼 수 있는 비행기 좌석...이런것들을 누릴 수 있게 해줄 뿐이라고요. 


 좀더 넓게 생각해 봐도 승마 클럽에 가서 말을 빌려 타는 대신 자신의 소유인 말을 탈 수도 있게 되는 정도...1월에도 전혀 붐빌 일 없는 피트니스클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되는 정도...그것뿐이예요. 하지만 말을 빌려서 타거나 붐비는 피트니스에서 운동 좀 하면 어때요? 그래도 여전히 승마고, 여전히 운동이잖아요. 본질이 바뀌지는 않아요.


 그래서 돈에 대해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됐어요. '미친짓에 쓸 수 없는 1조원보다는, 미친짓에 쓸 수 있는 얼마간의 돈이 더 낫다.' 라고 말이죠. 



 4.휴.



 5.친구는 종종 이상한 소리를 하긴 했어요. 돈을 쓸 수가 없다고요. 그래서 '그건 네 돈이잖아?'라고 물으면 '물론 내 돈이야. 하지만 내 돈이 아니지.'라는 요상한 대답이 돌아왔죠. 좀 이상해서 '어쨌건간에 네 명의로 되어 있는 건 맞는 거지?'라고 하면 '그야 그렇지.'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그러던 와중 작년에 친구의 개가 매우 아팠어요. 아프다기보다...수명이 다한 거지만요. 대학교 때부터 봐왔던 개니까 인간 나이로 치면 장수한 거긴 했어요. 그래서 어쩔 도리가 없었죠. 하지만 가족같은 개가 죽는다...라는 사실이 매우 마음아팠던 것 같아요. 반려견과 여러 번 이별해 본 사람은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으로 이별한다면 그럴 것 같긴 했어요. 



 6.그래서 친구는 그 개가 죽을 것 같이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면 동물병원에 가서 수백만원을 내고 목숨줄을 이어놓고, 며칠 후 또 죽을 것 같이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면 동물병원에 가서 수백만원을 내고 또다시 목숨줄을 이어놓는 걸 반복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게 여러 번 반복되자 친구의 아버지도 알게 되었고 그 분은 역정을 냈어요. 지금 무슨 미친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요. 친구는 '다 제 돈으로 하는 건데 무슨 상관이죠.'라고 말했고 아버지에게 '네가 가진 돈 중 진짜로 네 돈인 건 하나도 없단다.'라고 비웃음을 들었다고 했어요.



 7.프라이팬이라는,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치킨집에서 그 얘기를 듣고 좀 이해가 갔어요. 아무리 자신의 명의가 되었다고 해도 눈에 띄는 지출을 하기엔 눈치가 보이는 돈...당당하지 못한 돈이 있다는 걸요. 


 그야 나라면, 내 명의로 되어 있으니까 펑펑 썼겠지만 나는 염치가 없으니까 가능한 거고요. 친구에겐 염치라는 게 있거든요. 그래서 말했어요. 그런 조소를 듣지 않으려면 아버지를 뛰어넘는 수밖에 없겠다고요. 친구는 '어떻게 아버지를 뛰어넘지?'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말했어요.


 '이봐, 여긴 한국이라고. 한국에서 아버지를 뛰어넘는 건 쉬워. 아버지보다 돈을 더 많이 가지면 돼.'


 친구가 이상해하는 얼굴로 쳐다봐서 말을 약간 정정했어요. 


 '아, 그러니까 '정답이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쉬운'거라는 뜻이야. 한국처럼 단순한 곳이 아닌 곳에서는 정답조차 없는 문제니까.'


 친구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라고 물었어요. '글쎄. 일단 10배로 뛰어오를 주식을 찾아내야겠지. 그리고...흠. 한번 더 찾아내야겠지.'라고 대답했어요. '바늘구멍을 두 번만 통과하면 돼.'라는 말과 같은 말이었죠.



 8.'그런데 아버지를 왜 뛰어넘어야 하는 거지? 그 다음엔 뭘 하지?'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미친짓을 당당히 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요. 미친짓을 몰래 하거나, 들킬까봐 겁나서 못 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하기 위해서 말이죠.


 여기서 말하는 미친짓은 꼭 이상한 걸 말하는 게 아니예요. 예를 들면 위에 쓴 개의 일화도 그래요. 친구가 자꾸만 그 개를 살려놓는다는 말을 듣고 내 돈도 아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그 돈이 아까웠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해 봤죠.


 '이봐...그런데 그 녀석은 아픈 것도 아니고 그냥 기력이 쇠한 거잖아. 녀석은 좋은 인생을 살았어. 계속 인위적으로 숨을 붙여놓는 게 정말 녀석을 위한 걸까?'


 그러자 친구는 '글쎄...그래도 숨을 몰아쉬는 걸 보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다시 말해 봤어요.


 '이봐, 고통을 며칠 더 연장시키는 데 그 돈을 쓰느니 텐프로에 가서 뿌려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야. 더 합리적이고. 아마 그 녀석도 그걸 바랄걸. 네가 그 돈을 자신을 며칠 더 살리는 데 쓰는 대신 텐프로에 가져가길 말이야.'

 

 친구는 '꼭 풀잎이를 위해서 그러는 건 아냐. 그냥 내가 최선을 다해두고 싶은 거지. 나중에 후회할 일 없도록 말이야.'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답을 듣고 이해했어요. 이게 친구 나름대로의 미친짓이라는 걸요. 모든 사람들에겐 나름대로의 미친짓이 있잖아요?   


 그래서 친구가 미친짓을 당당히 할 수 있게 되었으면...하고 바라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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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이럴 수도 있겠네요. '이건 작년 시점이잖아? 최근 글에서 친구가 포르셰를 산다고 했으니 이제 그 친구는 당당하게 미친짓을 할 수 있게 된 거 아니야?'라고 말이죠.


 하지만 아니예요. 전에도 썼지만, '무언가를 산다'는 건 돈의 교환가치적 측면을 활용하는 것뿐이잖아요. 실물을 사면 실물은 계속 손에 남으니까요. 다음 주에도 다음 달에도 다음 해에도 말이죠. 그러니까 비싼 걸 사든 싼 걸 사든 돈과 실물을 교환한다는 시점에서 그건 합리적인 일을 하는 거예요.


 일기에 쓰는 미친짓은,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종류의 것만을 말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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