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가 보고 싶네요

2020.11.17 10:51

Sonny 조회 수: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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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도 독립영화를 몇편 봤던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도 제 인생 최초의 독립영화는 박석영 감독의 <들꽃>처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별로 유명하지도 않고 배우나 감독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독립영화라는 걸 제대로 보고 싶다! 해서 골랐던 영화가 이 영화여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근육질 3040의 마초남성들이 분노하며 뭔가를 뒤집어엎는 메이저리티 영화 사이에서 10대 여자들이 세상을 헤매기만 하는 영화가 유달리 가슴에 꽂혀서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10대 여자들이 가장 위태롭고 처절한 존재들이라고 인식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지금은 없어진 명동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보고 달시 파켓(기생충 자막을 번역하신 바로 그!!)의 진행 아래 감독과 배우들의 gv도 봤었는데 무척 설레고 그랬습니다. 영화는 별로 즐거운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결말까지 가도 어떤 답도 나오진 않아요. 그저 남은 자들끼리 서로 안고 달래줄 뿐.


그 이후로 인디스페이스에 종종 갔었습니다. 공간이 갖는 의미가 개개인에게 다르겠지만 저에게 종로 3가와 그 보석점 거리는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객석이 많이 차는 일이 거의 없는 그 극장에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배우들이 자본주의와 한참 먼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우울한 깨달음으로 치닫는 이야기들을 참 많이 보곤 했습니다. 그 땐 그런 영화들을 놓치기 싫었던 것 같아요. 인디스페이스를 찾아가서, 그곳에서 독립영화들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 조금 특별하게 남기도 했습니다. 대형자본영화들보다 이런 영화들이 제 삶과 훨씬 더 닮아있었으니까요. 정형화되지 않은 이야기에서 솔직하게 일그러지거나 멍해지는 캐릭터들의 얼굴이 오랜 잔상으로 남곤 했습니다. 요즘은 시간도 없고 극장을 간다는 것 자체가 감염의 위험을 품고 있는 거라 독립영화는 더더욱 못보고 있습니다만... 인디스페이스를 찾을 때마다 그 곳만의 이상한 아늑함이 있어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행위가 현실에서의 도피라면 거짓말인 게 분명한 환상과 꿈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더 아프고 비루한 영화들의 이야기 속에서 삶의 환우로서 가지는 동지애 같은 걸 느끼곤 했습니다. 승리나 번영이 아닌, 투쟁으로 싹도 피우지 못한 채 말라가는 어떤 삶들 말입니다.


한동안 독립영화들이 좀 싫기도 했습니다. 푸르스름한 냉기와 회백색의 무관심 속에서 한없이 밀려나가기만 하는 사람들... 그래도 그런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못생긴 진실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요. 독립영화는 저의 정서적 고향처럼 느껴집니다. 너무 오래 떠나와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요새는 그냥 어떤 영화든 인디스페이스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 <해일 앞에서>라는 페미니즘 단체의 투쟁을 그린 다큐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못봤습니다. 아릿하고 소소한 기쁨과 슬픔을 다시 느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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