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 라는 표현을 썼는데, '원작'이 아니기 때문이죠. 같은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전설의 레전드급 대접을 받는 영화이고 원제는 The Innocents. 1961년작이며 흑백 영화에 상영 시간은 100분 정도 되구요. 스포일러 없이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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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보라 카!!!)



 - 바로 어제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이야기를 해서 도입부 스토리를 또 얘기하는 게 좀 그렇습니다만... ㅋㅋ

 드라마와는 달리 액자 형식은 없고 그 외엔 출발점의 이야기는 거의 같습니다. 젊고 총명한 여성이 부모 잃은 애들 사는 대저택에 상주 가정교사로 채용되구요. 거기로 가서 만난 애들은 천사 같고 예쁘죠. 근데 문득 수상한 남자의 존재를 목격하게 되는데 그 남자는 이미 얼마 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그 집 마부였든가 그런 것 같고... 또 이 집 애들을 본인 바로 전에 담당했던 가정교사는 그 남자랑 연애하다 그 남자가 죽은 후 본인도 목숨을 끊었대요. 그리고 그 집안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겠죠.



 - 100분 밖에 안 되는 영화이다 보니 스토리나 등장 인물, 이야기 구조가 상대적으로 아주 간결하고 전개도 빠릅니다.

 예를 들어 영화판에서 등장하는 대사가 있는 고용인은 가정부 '그로스 여사' 한 명 뿐이에요. 도입부의 취업 인터뷰 장면을 빼고 생각하면 주인공과 여사님, 그리고 애들 둘 + 유령 밖에 안 나오죠. 사실 다른 하인이 잠깐 나오긴 하는데 딱 한 장면에 대사도 한 마디 정도.


 그리고 인물들의 디테일은 다 간략화 되고, 그마저도 사건의 전개 와중에 흘리듯 슬쩍슬쩍 제시됩니다. 사실 전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플래시백으로 직접 보여주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런 점은 아주 좋았네요.


 대신에 몇 안 되는 등장 인물들은 다 맡은 역할이 선명합니다. 기독교 가치관에 근거해서 악령이 애들을 장악했다고 믿고 해결하려는 주인공 vs 이놈에 가정교사가 뭘 잘못 먹었는지 단단히 맛이 가서 애들 다 망친다고 생각하는 가정부. 실재하는지 아닌진 아리송하지만 어쨌거나 주인공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성격의 악령들. 진짜로 악령이 들린 건지 아님 걍 주인공 취향이 아닌 것 뿐인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인공을 서서히 무너뜨리며 핀치로 몰고 가는 어린이들. 

 그리고 모두가 스토리상 자신이 맡은 역할을 참말로 잘 해 냅니다. 참 깔끔해서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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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천사들이!! 라고 생각했건만...)



 -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데보라 카의 연기였습니다. 거의 영화 내내 원탑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요.

 관객들로 하여금 '얘가 진짜 악령을 만난 신실한 여성인 건지 본인 마음 속 욕망을 자제 못하고 폭주하는 미친 자인 건지 참 애매하네' 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인데, 이 양반 표정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그런 기분이 듭니다. 처음에는 걍 건전하고 열정적인 선생이네 싶다가,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점점 의심이 들고 막판엔 뭐라고 생각해야할지 헷갈리게 되는 캐릭터인데, 되게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받도록 이끌어갑니다. 걍 고전 명작 영화에 여럿 나오신 스타 배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카 여사님. ㅠㅜ


 그리고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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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우시구요... 

 라고 적었는데 이미지를 다시 보니 오른쪽 팔이 꼭 몸에서 떨어져서 이상한 곳에 붙어 있는 것 같... ㄷㄷㄷ



 - 암튼 드라마판의 끈적끈적한 멜로 갬성 같은 건 1도 찾아볼 수 없는 심플, 건조, 핵심만 말하고 홱 끝내 버리는 영화이구요.

 그런 성격을 효과적으로 구현해주는 게 가정부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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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분이 나온 짤을 찾기가 힘들어서... 표정이 좀 별로여도 양해해주세요 배우님. ㅋㅋ)


 활달 수더분하고 성격 좋은 사람으로 나오지만 주인공이 악령 얘길 할 때마다 '그게 아니라 사실은 이런 거겠지?' 라고 칼반박을 하는데.

 그게 하나 같이 다 그럴싸하고 주인공이 설파하는 악령 스토리보단 훨씬 믿을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그냥 영화 끝까지 가요. ㅋㅋ

 물론 관객들 입장에선 계속해서 귀신이 화면에 등장하니 주인공 쪽을 좀 더 믿게 되지만, 애초에 그 귀신을 보는 게 주인공 뿐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 아줌마 설명대로 '그냥 니가 정신 나가서 헛걸 보는겨!'라고 생각해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되죠.


 ...근데 보면서 계속 드라마판의 가정부 아줌마가 생각나서 웃겼어요. 이름도 같은데 둘의 스타일이나 성격, 그리고 역할이 달라도 너무 다르거든요. ㅋㅋㅋ



 - 어차피 드라마판을 본 김에 함께 챙겨보게된 상황이니 좀 더 비교를 해보자면.

 의외로 드라마가 이 영화에서 가져온 요소들이 종종 보입니다. 물론 원작이 같으니 그냥 원작에 충실한 부분들 아니냐... 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장면인데도 드라마에서 재현한 부분들이 있어서요. 일단 여기서 남매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드라마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그대로 나오구요. 또 시작 부분에서 주인공이 '여기서부터 내려서 걸어갈게요'라고 하는 부분 같은 것. 그리고 호수가에 서 있는 유령의 이미지 같은 것도 뭔가 좀 비슷한 느낌으로 찍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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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거 말이죠)


 하지만... 캐고 들어가면 굉장히 다릅니다.

 일단 주인공 캐릭터의 성격부터 다르죠. 성적으로 보수적인 관념을 강요 받는 인물이라는 건 같지만 그 이유가 전혀 다르고, 영화판의 주인공은 그런 심리 상태가 이야기 전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드라마판에선 저택에서 벌어지는 중심 사건 자체에는 거의 영향을 안 주죠. 

 악령 커플의 경우에도 그래요. (영화판 주인공의 분석에 따르면) 최종적인 목적은 드라마판의 커플과 비슷하지만 드라마판에선 주인공을 정신 산란하게 만드는 성적인 뉘앙스는 전혀 없는데... 영화판에선 그게 이들의 핵심이자 존재 의의거든요. 본격 19금 에로 귀신

 결정적으로 드라마판에서 악령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고 그걸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만, 이 영화에서 악령의 존재는 끝까지 결론이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하려는 이야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요.


 그러니까 결국, 영화판이 원작 소설을 재구성해서 영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고 결과적으로 '같은 이야기'라면 드라마판은 원작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소설의 핵심 설정과 인물들을 가져다가 만들어낸 사실상 별 상관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 정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둘 중 뭐가 낫네 하고 따져보는 건 의미가 없어요. 그냥 같은 레퍼런스를 취한 다른 이야기니까요. 취향 따라 가는 거죠.



 - 아. 참고로 이 영화 역시 무섭지는 않습니다. 뭐 호러 장면이라고 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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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식으로 그냥 짤로 보면 그게 무서운 장면인지 눈치도 못 챌 장면들 뿐이어서요. ㅋㅋㅋ

 유령들 나오는 장면들보단 주인공이 돌보는 남매들이 갑자기 싸가지 없고 막나가는 행동을 보여줄 때가 차라리 무섭다면 무서웠습니다. 꼬맹이들이 멋모르고 했던 연기(내용이 불건전하고 하니 감독이 일부러 전체 스토리를 안 보여주고 쪽대본만 주고서 연기를 시켰답니다)인데 그걸 상당히 그럴싸하게 기분 나쁜 느낌으로 잘 잡아냈더라구요. 그걸 악령이 들려서라고 믿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느낌.



 - 암튼 대충 정리하자면...

 2021년에 보기에 막 무서운 영화는 아닙니다. 네. 심지어 도입부는 너무 평화로워서 좀 지루하기도 해요.

 하지만 중반 이후로 이야기가 궤도에 오르고 나면 상당히 그럴싸하게 불쾌한 느낌을 전해주고요.

 또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라든가,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가 라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드라마 버전은 이야기가 길고 캐릭터도 많다 보니 이야기 자체는 풍성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친절하고 구구절절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볼 부분 같은 건 별로 남기지 않는 느낌이었거든요.

 결론적으로 둘 다 재밌게 보긴 했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저는 이 쪽이 더 취향에 맞네요. 잘 봤습니다.




 + 1961년 당시는 물론 요즘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도발적인(?) 설정과 장면들이 좀 나옵니다. 영화에서 어린이 캐릭터를 다루는 태도에 대한 것인데... 당시에도 그 장면들이 잘려나가지 않고 무사히 상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근데 오히려 요즘이었으면 더 문제가 될 것 같았네요. 



 ++ 이 영화 관련 글들을 검색해보면 한국에서 붙인 '공포의 대저택'이라는 제목을 성토하는 얘기들이 거의 빠짐 없이 보입니다. 듀나님 리뷰도 그렇구요. ㅋㅋ 근데 imdb에서 원제로 검색을 하면... 똑같은 제목의 다른 영화가 이 영화 포함 8편 이상이 나와요. 이 쪽이나 저 쪽이나 그렇게 좋은 제목은 아니었...



 +++ 남매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둘 다 역할을 참 잘 해줬는데, 이후 필모그래피를 보니 그리 잘 풀리진 않았네요. 그나마 플로라역 하신 분은 80년대까지는 활동을 하셨던데, 마일스 역할 배우는 이 영화 이후로 딱 5년만 더 활동하고 은퇴하신 듯. 이 영화를 찍을 때 한국 나이 13세였으니 스물도 되기 전에, 거의 아역 배우로만 활동하다 접은 셈이 되겠습니다.



 ++++ 데보라 카는 이 영화를 찍을 때 실제 나이가 40이 넘은 상태였어요. 근데 극중에서 캐릭터를 보면 정확한 나이는 안 나오지만 꽤 젊은 설정인 것 같던데... 괜히 궁금하네요. 원작 소설에선 주인공이 몇 살 쯤이었을까요. 이걸 읽긴 읽었는데 대략 25년쯤 전에 읽어서 하나도 기억이 안 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실려 있던 헨리 제임스 단편집을 읽고 책 주인이었던 누나랑 투덜투덜 대화를 나눴던 건 분명히 기억이 나요. 번역이 이상한 건지 내가 멍청한 건지 뭔 얘긴지 잘 모르겠고 재미가 없어... 라고 말하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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