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작이구요. 런닝타임은 94분. 장르는 에로 코믹 환타지... 정도 되려나요. ㅋㅋ 스포일러 있습니다. 결말을 안다고 소감이 나빠질 수는 없는 영화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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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었'데'요!!!)



 - 무대는 그냥 '한국의 그 언젠가 옛날'입니다. 복식들이 아주 익숙한 걸 보면 아마 대략 조선시대쯤 되겠지만 별 의미 없구요.

 암튼 어느 양반댁에서 한 밤중에 머슴들이 남자 하나를 이불로 둘둘 말아다 내다 버리면서 시작합니다. 양기를 다 빨렸네 어쨌네 그러는데 잠시 후에 보면 의외로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남자가 일어나네요. 그러니까 그 마을 과부 마님과 즐거운 시간 보낸 후에 처리(?)된 모양입니다만. 아무 의미 없는 장면이라 이만 생략.


 동네 과부님이 주인공입니다. 집 앞에서 아무리 봐도 딜도(...) 모양의 나무 몽둥이를 줍고 이게 뭐야... 하다가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말하는 순간 펑!! 하며 몽둥이는 왕상투에 상의 탈의하고 바지 한 쪽은 허벅지까지 걷어 올린 터프가이로 변신해서 과부에게 달려들죠. 그리고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을엔 지진이 일어나서 사람들 다 자빠지고 집안 물건들 다 떨어지고 박살나고... 진원지였던 과부의 집은 그냥 폭삭 내려 앉아 버려요. ㅋㅋㅋ 마을 사람들은 쟤 참 안됐네... 하지만 우리 과부님은 그저 행복하고 씐날 뿐이구요. 그런데 갑작스런 과부님의 변화에 의심을 품은 이웃 아줌마가 치밀한 미행과 감시 끝에 물건의 정체를 알아내 훔쳐가고. 과부는 되찾으려 하고. 그러다 결국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나고. 결국 마을 처자들이 모두 이 몽둥이 쟁탈전에 뛰어들면서 마을은 혼돈의 카오스로 변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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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주인공 두 분입니다. 한 분 아니구요. 두 분 맞습니다. ㅋㅋㅋ)



 - 일단 놀랐던 부분 하나. 전 이게 비디오용으로만 출시된 에로 영화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극장 개봉작이더군요. 그러니까 그 시절에 유행했던 사극 에로 영화들 중 하나였던 겁니다. 1993년이라는 개봉 시기를 생각하면 아마도 거의 기나긴 유행의 막판에 나온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구요. 그러니까 '변강쇠' 같은 류의 영화들 중 최종 형태쯤 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맞을 것 같네요.

 

 그리고... 솔직히 이 글 읽으시는 분들 중에 이 영화를 아예 모르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될지 궁금하네요. ㅋㅋㅋ 이거 되게 유명한 영화였죠. 극장 개봉 땐 쥐도 새도 모르게 내렸던 모양이지만 비디오 출시 후 이 간지나는 제목(...)과 파격적인 스토리 때문에 암암리에 화제가 되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봤고, 또 안 본 사람들도 줄거리는 다 아는 영화였어요. 저는 그냥 구전되는 전설만 전해 들은 경우였는데. 사실 볼 기회가 한 번 있었어요. 군대에서 휴가 나갔다 복귀할 때 부대 앞 비디오 가게에서 영화 하나를 빌려가는 풍습이 있었는데 제가 일병 때 고참들이 이 영화를 주문해서 빌려왔었거든요. 하지만 일 하느라 정작 보지는 못 했고. 대략 20여년만에 왓챠에 있는 걸 발견하고 그 때의 한(...)을 풀었습니다. 고마워요 왓챠.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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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라이벌 역의 이미지님. 뭔가 성함이 익숙하다 했는데 나름 오래오래 활동하셨던 분이었네요.)



 - 또 이제 와서 이 영화 얘길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독 양병간입니다. 2015년에 한국 호러 팬들을 충격과 환희에 빠트렸던 명작 호러 '무서운 집'을 만든 분이잖아요. 그래서 그 영화 개봉 당시에 또 이 영화 얘기가 돌기도 했었구요. 그래서 그런가, 이거 화질이 되게 깨끗하고 좋습니다? ㅋㅋㅋㅋ 정말 그 시절 어지간한 메이저 한국 영화들보다 영상이 깨끗하고 좋아요. 아마도 어딘가에 원본 필름이 잘 보관되어 있었던 모양인데. 그랬다는 사실도 괴상하게 웃기네요. 한국처럼 이런 거 보관 안 하기로 유명한 동네에서 다른 메이저 영화들을 다 제끼고 이렇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니 양병간 당신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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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짤은 고해상도가 없네요. 우리의 왕상투 히어로!!!)



 - 그래서 양병간, '무서운 집'을 먼저 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좀 놀랐습니다. 전 '무서운 집'이 되게 순수하게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이 영화를 보니 그 영화는 일부러 못 만든 영화였나봐요. 뭐 100% 고의는 아니었겠습니다만, 이 영화도 촌티 풀풀나는 '방화' 시절 한국 영화의 스타일이 되게 진하거든요. 그래도 의외로 그 시절 방화 기준 기본은 충분히 하는 평작 퀄리티의 영화였어요. 촬영이든 편집이든, 심지어 스토리 조차도 뭐 그렇게 막 허접하지 않습니다. 물론 잘 만든 영화 같은 건 전혀 아닙니다만. 기본도 안 된 허접때기... 는 아니라는 게 충격의 반전이었네요. 로케이션도 잘 했고 나름 엑스트라도 많이 써서 군중씬 비슷한 것도 자주 나와요. ㅋㅋ 의외로 매끈해서 실망했을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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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짤로 보면 그냥 멀쩡한 사극 같지 않습니까!!)



 - 그래도 잘못된 기대치를 설정해드려선 안 되니, 뭐 요즘 기준으로 보면 분명히 허접때기 맞습니다. 일단 싱크도 잘 안 맞는 성우들의 후시 녹음부터 피식 웃음이 나오구요. 코미디 영화이긴 하지만 배우들 연기는 어디까지가 의도이고 어디까지가 실력인지 헷갈릴만큼 대부분 별로구요. 유명한 배우도 한 명도 없죠. 이야기는 의외로 멀쩡하게 앞뒤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긴 하지만, 중후반쯤 가면 94분이라는 런닝 타임을 감당 못 해서 늘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같은 패턴 개그가 반복되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겠구요. 명색이 에로 영화이고 베드씬이 계속 나오는데도 베드씬 연출들이 딱 방화스럽게 허접해서 정말 야하다는 생각은 1분 1초도 들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은 아니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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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튀어나와 정신을 혼란하게 만들었던 소복 캉캉쇼!!)



 - 분명한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면, 영화가 '적당히'를 몰라요. ㅋㅋㅋㅋ 물론 어디까지나 1993년 기준으로 하는 얘깁니다만. 어차피 요즘엔 이런 류의 영화는 나오지도 않으니 뭐, 한국 에로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만한 파격을 보여주는 영화라 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이게 조선 시대에 실제로 있었던 괴담을 소재로 만든 이야기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영화는 그 괴담의 재현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 소재를 파고 파면서 거침 없이 전진합니다. 처음에 과부 둘이 쟁탈전을 벌일 때까진 그러려니 했지요. 근데 곧 마을 여자들이 몽땅 달려들면서, 수십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가에서, 들판에서, 마을 골목에서 이 몽둥이를 놓고 처절한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막 웃기지는 않아도 스멀스멀 감탄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올라옵니다. ㅋㅋ 거기에다가 나중엔 양반댁 할머니, 지나가던 스님, 어린애들(ㄷㄷ)에다가 원님까지 이 몽둥이와 엮여서 개그를 쳐 주고요. 막판엔 무슨 간절한 러브 스토리까지 전개가 돼요. 그러다 클라이막스의 기적이 벌어지는 순간이 되면 심지어 흐뭇한 기분까지 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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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님 역의 요 분도 굉장히 눈에 익죠. 라떼 시절 티비 좀 보셨던 분들이라면 출연작들 숱하게 기억하실 듯.)



 - 또 여기서 칭찬해줄만한 부분이 그거에요. 1993년이고 하면 뭔가 한국 영화판이 죽어라고 에로틱한 영화들을 뽑아내면서도 계속 결말을 도덕적 엄숙주의로 가든가, 아님 뭔가 교훈적인 메시지를 들이밀며 끝내던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시기였거든요. 근데 이 영화는 그런 쪽으로 아주 시크합니다. 아니 재혼도 힘든 조선시대 과부들이 이런 몽둥이 좋아할 수도 있지 뭐!! 그게 당연하지!!! 라는 식이어서 와 이 감독님 화끈하시네... (각본도 직접 썼습니다) 라는 생각이 들구요. 심지어 결말이 해피 엔딩이에요. 이 몽둥이에 대한 과부의 애절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국 몽둥이가 인간이 되어 위기에 처한 과부를 구해내고 들쳐 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해피엔딩. 성적으로 방탕한(?) 여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느니 그딴 거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소릴 하던 마을 원님은 몽둥이에게...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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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풍당당 해피엔딩!!! 혁신적!)



 - 그래서 뭐. 대충 정리하자면요.

 저는 여전히 '무서운 집'이 이 감독님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보니까 왓챠에도 있던데 언젠간 다시 볼 거에요. ㅋㅋㅋ

 그리고 이 영화는 뭐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 방화 시절 흔한 토속 에로 코미디 맞구요. 이걸 진지하게 '작품성'을 따지며 보는 건 거의 무의미할 겁니다.

 하지만 뭔가 본의가 아니게(?) 시대를 앞서간 센스 덕에 보고 나서 찝찝하거나 불쾌한 기분도 거의 안 남구요. 

 또 이미 말한대로 은근히 예상보다 조금씩 더 막나가는 영화라 실제로 '웃긴다!' 싶은 장면도 없지 않구요.

 걍 즐겁게 봤습니다. ㅋㅋ 런닝타임을 한 10분 줄였음 더 재밌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뭐 지금도 짧으니까. 그 정돈 괜찮았어요.

 이 글 읽고 굳이 보지는 마세요.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전 숙제 하나 더 해결했다는 기쁨에... 하하하.




 + 다 완전 무명 배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연을 맡았던 분은 비슷한 에로 영화 몇 편에 나오다 은퇴하신 듯 하지만 사랑의 라이벌로 나온 이미지님은 조연, 단역을 오가며 아주 유명한 작품들에도 출연하시며 2015년까지도 출연작을 이어가고 계셨군요. 무려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랑 결혼하는 역으로 나오셨었나 봐요. 그리고 몇 년 전에 고독사로 뉴스에 뜨셨던... 이제사 기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몰라 봬서 죄송하고 명복을 빕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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