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에 나왔습니다. 1시간 46분. 이번에도 스포일러 있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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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트가 좀 구린 느낌이지만 걍 고해상도 사진 때문에 이걸로 골라봤습니다.)



 -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중에 더 유명한, 그리고 더 인기 많은 영화는 뭘까요? 

 그 시절 기준으로 생각하자면 뭐... 아마 개봉 당시엔 '8월의 크리스마스'의 판정승이 될 것 같았습니다. '봄날은 간다'는 보고 나와서 영화 내용이 뭐 이러냐고 실망하고 짜증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거의 대동단결에 가까웠던 대호평 분위기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죠. 

 그런데 재밌게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람들, 정확히는 제가 알고 만나는 사람들이나 제가 가는 커뮤니티 등지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좀 탑골스런 이미지인데 반해 '봄날은 간다'는 오히려 연애 영화의 기본, 디폴트, 바이블 뭐 이런 이미지에요. 언급도 훨씬 많이 됩니다. 라면 때문일까요.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는 문제도 있구요. ㅋㅋ 

 그래서 아무 합리적 근거 없는 <<<<<제 느낌>>>>>으로는 2022년 현재 둘 중에 더 존재감이 큰 영화를 골라 보라면 '봄날은 간다'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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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전반에선 내내 졸거나 자거나 졸립고 피곤한 상태인 우리 영애씨.)



 -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봄날은 간다'가 이룩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신파 정서와 뽕끼를 뺀 정갈한 멜로드라마라는 당시 한국에선 보기 드물었던 새 장르를 개척했다면, '봄날은 간다'는 리얼리즘 로맨스랄까... 실연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흔한 클리셰나 미화를 줄이고 그 상황을 맞은 자들의 찌질함을 리얼하게 묘사하며 또 그걸 그냥 매우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무언가로 묘사한 영화였죠. 나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낭만적인 것도 아니고. 

 뭣보다 사랑의 배신자(...)를 그렇게 묘사한 영화는 흔치 않았어요. 아무 낭만적, 운명적, 불가항력의 핑계 없이 그냥 단순 변심으로 배신했는데도 전혀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지 않는 것 말이죠. 갑작스런 리얼 '연애질' 다큐 분위기에 '8월의 크리스마스'식 로맨티시즘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많은 관객들이 성질을 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사랑이 변하는 건 그냥 자연의 섭리라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왜 변하냐고 따지는 건 니가 아직 덜 커서 그래!! 라고 일갈하는 로맨스 무비라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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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 먹고 보고 싶다고 새벽 서너시에 무작정 달려가는 민폐를 저질러도 서로 마냥 좋기만한 그 봄날. 은 결국 가게 마련이지요.)



 - 여전히 남성 입장의 이야깁니다. 저번 영화의 한석규에 이어서 이번엔 업그레이드 한석규(...)라는 평을 듣던 유지태를 캐스팅해서 이 젊은이 입장을 따라가죠. 그렇다보니 당시 관객들 중 상당수가 이영애의 변심을 이해 못하고 유지태의 당혹스러움에 감정 이입해서 이영애 캐릭터를 비난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진짜 옛날 이야기지만 제 주변 사람들은 대체로 남녀로 갈려서 '이해 안 돼!!!', '왜 그게 이해 안 돼!!?'라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당시엔 이영애의 입장을 거의 보여 주지 않았던 감독의 실수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이게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어차피 유지태 입장의 이야긴데 유지태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관객들에게 굳이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겠죠. 오히려 그래서 더 리얼하단 느낌도 들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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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이란 세월 동안 한국 영화판도 질적으로 급변했을 것이고. 또 바뀐 촬영 감독의 스타일 영향도 있었겠죠. 암튼 때깔이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 한 가지 놀라운 건 화면빨입니다. 전작으로부터 고작 3년 후에 나온 영화인데 때깔이 완전히 달라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방화 시절 분위기로 뽑아낸 최대치의 훌륭한 비주얼이었다면 이 영화의 비주얼은 그냥 현대적이에요. 21년이란 세월이 거의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같은 넷플릭스에 있는 버전으로 연달아 보면 정말 차이가 확연하거든요.

 하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의 살짝 구식 느낌 드는 비주얼은 그 나름대로 그 영화의 톤에 완벽하게 어울리구요. 이 영화의 쨍하고 선명한 비주얼은  또 그대로 이 영화의 분위기에 찰싹 달라 붙습니다. 뭐가 낫고 뭐가 못하고를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둘 다 좋았어요. 특히 초반 대나무밭 장면에서 둘이 녹음기를 가운데 두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장면에서 빛과 그림자가 두 사람 얼굴을 스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네요. 마지막의 벚꽃 재회씬도 좋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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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가장 애틋하고 낭만적인 장면... 인데 고해상도 짤이 없네요. ㅠㅜ)



 - 전작에서 정원의 아버지, 영정 사진 할머니를 통해 표현했던 애틋한 정서를 이번 영화에선 유지태의 치매 할머니를 통해 뽑아내죠. 이번에도 참 적절하게 잘 먹혔던 것 같습니다. 곱게 꽃단장 하고 젊은 시절의 기억 속에서 걸어가던 할머니의 뒷모습 장면은 주인공들의 리얼 다큐스런 연애에 비해 몇 배로 로맨틱하고 그만큼 더 먹먹했어요. 영화 제목도, 인용한 노래도, 그 안에 담긴 정서도 모두 요 할머니 이야기로 집중되며 압축 제시되는 느낌이었구요. 물론 결국엔 주인공들의 그 리얼하고 하찮은 사랑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구요. 저번 영화도 그랬지만 참 빈틈 없이 잘 짠 이야기였네요. 농담이 아니라 한국에 허진호만한 멜로 장인이 또 있었던가... 라는 생각을 해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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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오오오오오~~~~ㅎ을 때죠. 좋을 때야. 몇 달만 지나 보렴. 으하하.)



 - 또 저번 영화와 마찬가지로 두 배우 모두 좋은 연기 보여줍니다만, 역시나 캐스팅과 연기 지도의 힘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이영애를 보니 그렇더라구요. 이 분은 화면에 잡힐 때 몸짓, 손짓, 표정 하나마다 다 디테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그냥 배우가 본인 느낌대로 연기한 것 같지가 않아요. 아니 물론 배우는 잘 했구요. 그냥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얘깁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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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즈 시절 비주얼의 이영애 필살의 예쁜 척 연기 퍼레이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래도 안 반할꼬야? 라는 듯한 이 확신의 교태!! ㅋㅋㅋ)



 - 전편(?)의 사진사에 이어 이번엔 녹음 기사라는 전문직을 등장시키고 있는데요.

 '8월의 크리스마스' 때처럼 주인공의 직업이 캐릭터와 작품의 주제까지 한 큐에 꿰어 버리는 위엄을 보여주진 못합니다만. 그래도 참 잘 써먹었어요. 그 핑계로 남녀 주인공이 한적하고 아름다운 풍광 찾아 떠돌아다니는 것도 자연스레 설명이 되고. 정원이 찍은 다림의 사진처럼 여기선 이영애의 '사랑의 기쁨' 허밍 녹음이 나오죠. 흘러가버릴 순간을 잡아두고 간직하는 것. 그 시절 로맨스물들에서 뭔가 튀는 직업을 등장시키는 게 유행이었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걍 '폼나는 무언가'로 얄팍하게 화면 꾸미는 정도로만 써먹고 마는 데에 비해서 허진호는 참 설정 잘 잡아서 집요하게 잘 써먹는다 싶었습니다.


 덧붙여서 음악도 이 영화가 더 잘 활용했어요. '미워도 다시 한 번'과 '사랑의 기쁨'을 조금씩 변형해가며 계속 반복 등장시키는데, 그때 그때 참 절묘하게 튀어나와서 분위기 잘 잡아주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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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람이 될 거야!!! 라는 다른 영화 대사가 떠오릅니다.)



 - 암튼 참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갓 연애 시작한 커플들이 보면 안 될 영화'라는 당시 평가대로 사랑이란 감정의 허무함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또 결국엔 그걸 로맨틱한 무언가로 표현해내는 게 절묘했구요. 전작에서 철저하게 가둬두었던 사랑의 그다지 아름답고 깔끔하지 못한 측면을 이야기 전면에 확 드러냄으로써 리얼리티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단아하게, 아름답게 영화를 빚어내는 실력도 감탄스러웠어요. 또 그냥 전편 대비 허진호의 실력이 성장한 측면도 보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편집 타이밍이나 이야기 측면에서 아주 살짝 군더더기 같은 게 보였는데 이 영화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어디 하나 흠을 잡아내기가 어렵더군요.

 결론은... 이제와서 두 편을 연달아 보고 나니 제 취향은 확실히 이 영화였다는 거. ㅋㅋㅋ 옛날에 재밌게 보고 다시 안 보신 분들 계시다면 시간 날 때 다시 한 번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 때보다 지금 보니 더 훌륭해 보이는 영화였어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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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아름답읍니다.)



 + 그 전설의 '라면' 장면에서 살짝 당황했습니다. 실제 대사는 그냥 '라면 먹을래요?'였더군요. 게다가 진짜로 라면 먹고 그냥 잠만 잤어요!!! 물론 유혹의 대사였다는 점에서 맥락은 기억대로입니다만 디테일이 달라서. 아마도 이후에 코미디 프로 같은 데서 수십 수백번 반복되는 걸 보면서 제 기억이 왜곡됐나 봐요. 전 당연히 '라면 먹고 갈래요?'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무슨 차인데;;



 ++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 뇌리에 가장 강력하게 박혔던 장면은 유지태가 이영애 차를 긁다가 현장에서 발각되는 부분이었어요. 극장에서 보다가 제 몸이 실시간으로 배배 꼬이는 고통스러운 기분이었는데. 역시나 다시 보니 그냥 피식 웃음만 나오더군요. 짜아식... 



 +++ 개봉 당시 이영애의 캐릭터가 많은 관객들에게 공분을 불러 일으켰던 문제의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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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지금은 그냥 끄덕끄덕하며 납득하게 됩니다. 아마 그 때 화 내던 사람들 중 대부분도 저와 같지 않을까 싶구요. ㅋㅋ

 근데 이걸 지금 다시 보니 '애니홀'의 마지막 장면 생각이 좀 나더군요. 감독은 미워해도 작품은 미워할 수가 없... (쿨럭;)



 ++++ 역시 '8월의 크리스마스' 때문일까요. 제작 투자부터 요소요소에 일본 회사와 사람들이 참여한 게 눈에 띄더군요. 아시다시피 엔드 크레딧에만 흘러 나오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도 일본인 작곡이구요. 나중엔 배용준 데리고 영화 찍었던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니었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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