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는 어디까지 알고 보는 게 도움이 될까요? 예고편 감상? 대략적인 시놉시스 확인? 아예 모르고 봐야 재밌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긴 하지만요. 


 '이야기'라는 건 단서 몇 개만으로도 유형화가 가능해요. 그리고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몇몇 소재가 주어지고, 그게 어떤 장르에 속해있는지 알고 보면 어느정도 전개를 맞출 수 있죠. 하지만 그 능력을 너무 과신해 버리면 헛다리를 짚곤 하더라고요.



 1.아무 단서도 예고편도 없이 넷플릭스 영화인 아이 케임 바이를 봤어요.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해 쓰려는 건 아니고, 영화에 어떤 장르에 속해 있는지 편견을 지니고 보게 되면 감상에 큰 무리가 따른다...는 경험을 써보려고요.



 2.일단 영화는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그래피티를 그리는 두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해요. 이 장면만 봐도 알 수 있었죠. 이제 저 둘은 다음 번 침입을 할 때 어떤 미스테리어스한 강적의 집을 고르는 실수를 할 것이고, 거기서 한판 대결이 있을 거라는 걸요. 그것이 이 영화의 얼개일 것이다...라고 굳게 판단해 버렸어요. 사실 그것 자체는 옳았어요.



 3.그리고 어떤 저택에 침입하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는 장면. 주인공의 친구는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를 보고 집주인(판사)에게 '당신과 많이 닮았네요. 당신 아버지인가요?'라고 말해요. 여기서 나는 주인공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었어요. 보통 저런 장면이 나오면 '사실 저 초상화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라 집주인 본인'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어서 그 집주인이 집을 비우고 동년배의 친구와 스쿼시를 치는 장면. 경찰 간부라는 친구를 체력으로 압도하며 전혀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저 빌런이 90% 뱀파이어일 거라고 확신했어요. 닮은 초상화라는 소재와, 운동을 잘 안하는 이미지인 판사 직업을 가진 빌런이 경찰을 체력으로 압도하는 장면이 배치됐다면 대개는 그렇게 생각하겠죠. 나는 뱀파이어물을 보는 자세로 영화로 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쐐기를 박는 장면. 그 빌런의 집 지하실에는 (당연히)누군가가 납치되어 있었어요. 한데 납치된 사람의 비주얼이...뭔가 피를 빨린 듯한 비주얼이었거든요. '아 가둬놓고 피를 빨아먹으려고 납치했구나.'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죠.



 4.휴.



 5.한데 문제는 이 영화는 뱀파이어물이 아니라 그냥 현실적인 스릴러였어요. 초자연적인 존재는 전혀 없었고 빌런은 그냥 나이 많은 변태 할아버지였어요. 당연히 빌런을 압박하는 방법도 십자가나 마늘이 아니라 증거를 수집하고 신고하는 거였고요. 처음에는 '주인공들이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줄 모르니까 저러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보니 그냥 상대가 인간이라서 그런 거였어요.


 영화가 거의 끝날 때쯤에야 나는 이 영화가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사실 조금만 편견을 덜어내고 봤으면, 빌런 할배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단서는 널려 있었는데 한 시간도 넘게 그걸 인정하지 않고 '저 할배는 뱀파이어야. 이제 곧 능력을 발휘할거야. 이제 곧...'이라고 믿으며 영화를 봤어요. 그리고 그 판사가 평범하게 마무리되는 걸 보고 나서야 '아 저녀석은 뱀파이어가 아니었구나.'라고 인정했죠.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그 할배가 뱀파이어라면 뱀파이어 능력을 써야만 했었던 위기의 순간들은 꽤 많았어요.



 6.어쨌든. 아이 케임 바이가 아주 훌륭한 영화까지는 아니었지만, 괜히 장르적 편견을 가지고 봐서 영화 한편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끝났어요. 뭔가 아쉽다고나 할까. 앞으로는 영화를 볼 때 너무 사전정보 없이 보는 것보다는 예고편을 보고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코스요리로 치면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요. 그야 요즘 영화들은 애피타이저를 너무 많이 퍼줘서 문제지만.



 7.요전번에 확증 편향에 대해 썼었죠. 글을 써놓고 보니 영화도 특정 장르일 거라는 확증편향에 갇히면 감상을 방해하네요. 


 하지만 뭐. 장르까지 착각해가며 영화를 감상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앞으로는 예고편은 안봐도, 어떤 장르에 속해 있는 영화인지는 확인하고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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