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약속예찬

2019.09.04 22:22

Sonny 조회 수:472

당일 오후, 노을이 슬슬 지려하는 그 순간, 저녁 여섯시라는 촉박한 약속시간에 부리나케 뛰어야 한다면 어쩌겠습니까. 전날 밤 이미 짜놓은 생활계획표에 평행하는 가로 두 줄을 슥슥 긋고 수입을 포기하며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면? 그래도 즐겁습니다. 예정에 없던 사건은 그저 변덕스러운 시간이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온 한 주의 목표가 됩니다. 나도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갑자기 놀려고 평일에 생고생을 했구나... 중요한 건 정말로 그 시간이 즐거운지 여부가 아닙니다. 아 일이 있는데... 그럼 그냥 그럴까? 하고 서두르며 발걸음에 실리는 그 기대감이죠.

급약속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은 참 귀합니다. 우리는 대개 모르면 모르니까, 알면 아는 대로 좀 보고 놀고 떠들고 싶은 마음을 꾸깃꾸깃 넣어놓은 채 다음을 기약하게 되잖아요. 사실 우리가 그리스 신화 속 올림푸스 12신이면 모르겠는데, 영원히 사는 거 아니고 기껏 잡아놓은 약속은 생계의 다양한 변수가 뒤흔들고. 정해놓은 약속들의 위안이 불안한 가운데서 급약속이란 외려 나도 모르게 당첨되어있던 쿠폰 같습니다. 어라, 약속을 주웠네?

별 거 없어요. 그냥 술마시고 수다떨고. 그래도 중요한 건 그 약속이 생기는 순간의 파격과 약속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대감이죠. 대개 무슨 일이 생겼다하면 그건 정말로 트러블이고 고통이기에 이 예외적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사전계획과 약속 없이는 하루하루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리멸렬 평온하게 흘러갑니다. 그 안에서 갈라져 터져 나오는 누군가의 변덕 혹은 충동은 우리를 삶의 트레드밀 바깥으로 확 밀쳐내구요. 그제서야 울퉁불퉁해지는 삶의 변곡선 위에서 곱씹어요. 이 잔잔한 하루의 껍질을 벗고 툭 튀어나온 누군가의 재촉은 얼마나 즐겁고 소소한 경이인지. 전 그렇게 부를만한 배짱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충동에 성실히 복무할 무모함은 언제나 가득해요. 나오라구요? 넵 가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0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7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15
125890 비 키퍼 보고 나서 [4] 라인하르트012 2024.04.03 263
125889 오늘의 조금 특이한 텀블벅 소개 DAIN 2024.04.03 204
125888 프레임드 #754 [4] Lunagazer 2024.04.03 64
125887 위기의 롯데를 구한 김원중의 포효/롯데-한화 경기 TV 시청률 5년 사이 최고치 '2.411%' daviddain 2024.04.03 101
125886 스팀덱 oled를 사고 싶다가 catgotmy 2024.04.03 89
125885 이강인,음바페보다 많이 팔린 유니폼 daviddain 2024.04.03 187
125884 핫초코 daviddain 2024.04.03 98
125883 후쿠오카 어게인 칼리토 2024.04.03 185
125882 [영화바낭] 이게 다 돌도끼님 때문입니다. '킹콩' 오리지널 버전 봤어요 [6] 로이배티 2024.04.03 289
125881 [넷플릭스] 눈물의 여왕, 5회까지 감상. [2] S.S.S. 2024.04.03 399
125880 게임에 대해 catgotmy 2024.04.02 126
125879 2024 갤럽 피셜 프로야구 인기팀 순위] 롯데 - 기아 - 한화 - LG - 삼성 [4] daviddain 2024.04.02 170
125878 치즈 어디서 사나요 [2] catgotmy 2024.04.02 243
125877 에피소드 #83 [4] Lunagazer 2024.04.02 74
125876 프레임드 #753 [4] Lunagazer 2024.04.02 87
125875 [넷플릭스바낭] 오랜 세월만의 숙제 해결. '그것: 두 번째 이야기' 잡담입니다 [16] 로이배티 2024.04.02 410
125874 근래에 감명깊게 듣고 있는 곡의 감상 [1] 부치빅 2024.04.01 233
125873 프레임드 #752 [6] Lunagazer 2024.04.01 74
125872 대파 시위 하고 왔습니다... [11] Sonny 2024.04.01 633
125871 [일상바낭] 여러분 저 짤렸어요!!!!!!! 우하하하하하하하하!!!! [14] 쏘맥 2024.04.01 68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