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치의 실체

2016.11.18 15:18

Bigcat 조회 수:1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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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초상, 루이 레오폴드 부알리, 1793년,



 지난 대선 전, 그러니까 2012년 가을이던가…여튼 이쯤에 충남대학교에서 <다시 보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연사는 최갑수 교수였죠(서울대, 서양사학) 소주제는 '아이티 혁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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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olition de l'esclavage (27 Avril 1848)


  (그러니까 사실 그 강연은 종래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일반적인 강연은 아니었고, 당시 프랑스가 지배하던 중남미 식민지 아이티의 노예제도와 - 거기에 거대한 설탕과 커피 플랜테이션이 있었거든요. - 혁명에 따른 노예해방 정책 그리고 그 이후에 터진 흑인들의 해방전쟁과 그 몰락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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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생 루베르튀르(Francois Dominique Toussaint' L' Ouverture), 1743(4)년 추정 ~ 1803년


아이티의 흑인 노예 해방자ㆍ장군. 노예로서 흑인의 반란(1793), 신출귀몰의 작전으로서 'L'ouverture'라는 이름을 얻었다. 프랑스가 노예를 해방한(1793) 후 프랑스 공화당에 속하고, 군대에 들어가 소장이 되었다(1794). 뒤에 영국군이 아이티를 점령하자 이것을 격퇴하고(1798) 리고의 반란을 진압(1799) 자유 헌법을 제정하여 대통령이 되고(1800), 전() 아이티를 평정(1801), 신정부를 조직했다. 나폴레옹 1세의 노예적 부활에 반항하여 체포되고, 프랑스에 이송되어 옥사했다. '흑인 자코뱅(Jacobin Noir)'으로서 노예 해방사에 주목할 만한 인물이고, 워즈워드의 시에 찬미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투생 루베르튀르 [Francois Dominique Toussaint' L' Ouverture] (인명사전, 2002. 1. 10., 민중서관)




 그러니 프랑스 혁명이 한국의 군사혁명...-_-;;…과 뭔가 연관이 있을거라고 기대하고 들으러 온 노인 분들과…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더하고 큰 소리 날 상황 직전까지도 가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상대가 중년 남성에 서울대 교수였으니, 확실히 그 앞에서 주춤들 하긴 하더군요.


각설하고, 사실 제가 그 강연에서 가장 인상깊게 들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다면 - 그러니까 230년전 대혁명 때로 말입니다 - 그 때 만일 두 사람을 만난다면 말이죠. 프랑스의 로베스피에르와 그 시절 우리 역사에는 (왕은 정조였고) 그의 신하인 정약용을 만날 수 있을겁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과연 누구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정약용? 왜요? 단지 우리 조상이라서? 아닐겁니다. 여러분이 만일 오늘날 한국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저 230년전 사람들과 해야 한다면, 정약용은 아예 여러분이 하는 이야기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겁니다. 그러나 로베스피에르는 아닙니다. 저 사람과는 대화가 가능합니다. 물론 불어만 할 줄 안다면…"



 농담처럼 붙인 마지막 말만 웃어넘긴다면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였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이루는 '근대성'이라는 것이 바로 어디서 시작되었던 것인지 명확하게 짚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봉준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제가 덧붙여서 말씀드린다면, 만일 과거 조상을 만나 현재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만날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정약용이 아니라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죠. 타임머신 시차를 조정해야겠네요. 230년전이 아니라 130년 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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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우금치 전투(1894년, 11월) 역사화, 2만명의 농민군이 5천명의 관군-일본 연합군과 싸운 우금치 전투는 말로는 전투라고 하지만 실지로는 농기구와 죽창으로 무장한 일반 군중을 기관총 - 정확히는 영국제 자동소총, 방아쇠 한 번에 12발 연속 발사 - 으로 학살한 사건


http://blog.daum.net/robin0924/64


 지난 90년대 초에 프랑스의 파리 1대학에서(여기에 혁명사 연구소가 있습니다) 어떤 프랑스의 역사학도가 조선의 동학농민운동을 동아시아의 시민혁명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가 통과되었다는 기사를 본 이후…급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사실입니다.


뭐랄까…그 전까지는 제게 동학농민운동이란 망해가는 나라의 역사에서 한스러운 상처이기만 했었는데, 의외로 새로운 세상을 품었던 역동성이 그 안에서 느껴지더군요. 확실히 역사란, 사관이 정말 중요한듯 합니다.


 장담하는데, 틀림없이 그 프랑스 역사학도는 동학농민 운동을 진압한 조선 정부의 정책, 그러니까 청나라 - 일본의 군대를 끌어들인 사례를 중점적으로 연구했을 겁니다. 안봐도 비디오인게, 대혁명의 공포정치는 바로 이것 때문에 시작됐거든요. 왕실과 왕당파가 해외의 적들과 연합해서 프랑스를 침략하려 한다. 그러니 이 반역자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 한다...공포정치의 주 희생자들은 왕실과 의회의 왕당파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 - 특히 이것 때문에 방데에서 반혁명 무장 봉기를 일으킨 농민들이 혁명군에게 끔찍한 학살을 당했죠.....(무려 그 희생자가 20만이나 됩니다...!!!) 영국군이 끊임없이 방데 반란군을 도우려고 상륙을 시도했거든요. (이 시기에 라자르 오슈 장군이 맹활약을 하는데 - 나폴레옹은 방데 지역으로 전속명령이 떨어지자 거부하고 도망다니기 바쁘...난 절대 싫어요! 내가 방데에 왜 갑니까? 프랑스 인 너님들끼리 동족상잔 열씨미 하세요....어이구....ㅠ......여튼 이 얘기는 나중에 좀 자세히 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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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
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 공저/한혜인 역 | 모시는사람들 | 2014년 11월


동학농민군 희생자에 대한 연구는 일본쪽에서 더 자세한 연구가 진행되더군요. 무엇보다도 근대 일본군의 첫 해외출병인데다가 이 전쟁의 결과로 동아시아 3국의 균형이 개박살...이 났거든요. 10년전에만 해도 농민군 희생자를 20만으로 추산하던데, 최근에는 연구자료가 더 보강이 되서 그런지, 사상자로 추산할 경우 무려 30만에서 40만까지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사실상 조선왕조는 이렇게 망한 거죠. 제 스스로 끌어들인 외적 손에...그 프랑스 연구자는 틀림없이 이 역사적 사실에 꽂혔을겁니다.




물론 현 한국 사학계에서는…일단 프랑스 혁명과 단선적인 비교는 맞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문적인 엄밀성으로 봐서는 사실 그 얘기가 더 일리있긴 하죠. 일단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들은 모두 성리학자들이라 프랑스처럼 새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기 보다는, 정통 성리학적 민본주의로 돌아가려는 의식이 더 강했거든요. 


 그러나 대혁명 지도자들도 처음에는 영국식 입헌군주제를 선호했지, 아직은 공화국에 대한 비전은 없던 상태였죠. 그러다 왕의 도망을 비롯하여 라파예트의 군사 쿠데타 음모의 사전 발각, 인권선언은 그냥 종이에 쓰고 그 발안자들끼리나 서로 돌려 보면서 흐뭇해하다가 말거라는 불안감에 겹쳐, 거기다 대외전쟁까지 터지면서 그 가운데 혁명파 부르주아가 탄생하게 되고- 혁명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  이것이 본격적으로 '대혁명'이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죠. 만일 일본의 침략만 없었다면, 동학농민운동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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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파 부르주아의 대표들, 왼쪽부터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그리고 마라(정말 실제 인물 성격 그대로 그린 듯.)






다시 로베스피에르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간만에 이 책을 꺼내서 다시 읽고 있습니다. 역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로베스피에르 역시 명과 암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공포정치, 길로틴…그런데 이런 끔찍한 이미지의 정치가와 그의 동료들이 오늘날 유럽 사민주의 - 프랑스 사회당,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등등 - 의 모태라는 건 정말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합니다. 과연 우리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정말 어떻게 태어난 것이었던가부터 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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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념형 인간이라고 하죠. 어떻게 보면 한 편으로는 정말 두려운 존재들이기도 한데, 근대 시기에 첫 출연한 이러한 인간의 유형에 대해 탐구해 보는 것도 재밌을 듯 합니다.


언젠가 미라보가 로베스피에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이 둘은 삼부회 소집 때(1879) 처음 만났죠.


 "....저 자는 이제껏 봤던 모든 유형의 인간들과 달라. 모두들 그를 주시해라! 로베스피에르는 정말 끝까지 갈 사람이다!"




미라보가 정말 사람 하나는 잘 보는군요. (물론 그는 당통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요즘 시국에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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