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륨이 짧은 편이라는 말이 많더니만.

정말로 하루에 1~2시간씩 1주일 하니까 딱 엔딩이네요.

게임 한참 많이 하던 미혼 내지는 기혼 무자녀(...) 시절 같았음 조금 짧구나... 하고 불만이었을 텐데.

요즘처럼 게임 할 시간과 체력을 내기 힘든 시절에는 오히려 감사합니다. ㅋㅋㅋ

제가 그래서 요즘 rpg들은 잘 손을 안 대고 살고 있고 그래서 아직도 그토록 모두에게 칭송 받는 위쳐3을 구입도 안 한 거죠. 근데 스팀에서 할인 알림을;


아니 뭐 어쨌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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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짤.)


이 게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짤 얘기 부터 조금만 하자면.

제목에 '7'을 우겨 넣은 센스가 좋구요. 

이 게임이 어쩌다 보니 서양쪽과 동양쪽에서 서로 다른 제목 (레지던트 이블/바이오 하자드) 으로 불려 온 게임인데.

이번 편에서 두 제목을 하나로 묶어 수십년간 따로 놀았던 제목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깜찍합니다. ㅋㅋ

서양에선 '레지던트 이블7: 바이오하자드' 이고 동양권에선 '바이오하자드7: 레지던트 이블' 이에요.


암튼 그럼 이제 게임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사실 이 시리즈는 4편을 이후로 쭉 쉴 틈 없고 빈 틈 없이 줄기차게 내리막길이었다는 게 중론입니다. 판매량과 상관 없이 말이죠.

뭐 그럴만도 한 것이... 

간단히 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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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슨 전대물 히어로/히로인들처럼 생긴 애들이 떼로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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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좀비... 도 아닌 그냥 각종 크리쳐 무쌍을 찍고 노는 게임에 무슨 공포감 따위가 남아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공포감은 둘째 치더라도 게임의 재미와 완성도도 점점 내리막길이었어요.

4편의 성공에 삘 받아서 그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 자체는 나무랄 수 없겠지만 그 후로 10년이 넘도록 그 '시스템 자체'를 그대로 우려 먹다 보니 게임이 너무 구려졌었습니다. 시리즈는 계속되는데 나아지는 건 그래픽 뿐. 스토리는 안 그래도 별로였던 게 점점 더 나빠지는데 그 와중에 허세스럽게 스케일만 대빵 키워 놓아서 완전히 수습 불가 상태였고. 게임 시스템은 10여년전 그대로 발전이 없어서 유저 편의성 개판이고 조작부터 시점, 캐릭터 움직임까지 불필요하게 답답해서 짜증만 유발하구요. 중간에 '데드 스페이스' 같은 신선한 TPS 호러의 성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째라고 그래픽만 키워서 내놓았던 6편에서 이런 문제점들이 정점을 찍으면서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은 거의 깔끔하게 증발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서조차 '리부트를 해야 할 시점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뭐 그러던 와중에...


일단 7편의 짤을 하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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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위의 짤을 보며 비교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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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같은 시리즈라고 느껴지십니까. ㅋㅋㅋㅋ


이렇게 거의 완벽하게 갈아 엎은 '느낌'의 신작이 발매되며 호평을 받는 대반전을 이룩해냈습니다.


일단은 서양 작가를 영입해서 전작들과 차별화되는 방향으로 쥐어 짜낸 스토리가 호평의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수상쩍도록 돈이 많으면서 그 돈을 끔찍하도록 비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가운데 엘레베이터랑 꼭대기에 사무실 하나 있는 수백층짜리 타워 좀 그만 지으라고!!!) 말도 안 되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는 괴상한 회사가 등장하고. 그걸 또 일개 전투 요원 한 두 명이 총질 몇 번으로 막아내는 것의 반복이었던 저연령 대상 액션 모험 애니메이션 시리즈 같은 기존 스토리 공식을 저 멀리 던져 버렸죠.

대신에 '실종된 아내를 찾으러 미국 시골 마을의 폐가에 들렀다가 살인마 가족에게 납치 감금된 동네 아저씨' 라는 미쿡 저예산 B급 호러삘 물씬 나는 스토리를 선택했습니다. 세계 정복 저지 같은 건 언급도 안 되고 그냥 어떻게든 살아 남고, 어떻게든 아내를 구출하는 것만이 목표죠.

기본 설정을 이렇게 기존 세계관과 최대한 멀리 떼어내서 독립 시켜 버리다 보니 이미 수습 불가 수준으로 망가졌던 시리즈의 세계관을 감당할 필요가 없어졌고 그래서 멀쩡한 이야기를 짜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자체가 괜찮아요. 흔하긴 해도 군더더기 없고 큰 무리수 없이 매끈하게 이어집니다. 

거기에 시리즈 처음으로 선택한 1인칭 시점 덕에 생전에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서 느껴 보지 못 했던 '몰입감' 이라는 것이 적어도 초반에는 폭발하구요.

끝까지 오버 없이 무난하게 이어지는 스토리 끝에 소소하지만 논리적이고 주어진 떡밥들을 충실히 소화해내는 반전으로 만족감을 줍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니지만, '평범한 척하지만 실은 무안단물급 체력과 금강불괴급 맷집을 가진 주인공'에 대해 거의 대부분 이야기 속 설정으로 설명이 가능한 흔치 않은 게임이기도 합니다. ㅋㅋ


암튼 그래서 역대 최고의 바이오 하자드 스토리이지만 사실 뭐 엄청 대단할 것까진 아니고.

반대로 엄청 대단할 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실공히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최고의 스토리라 하겠습니다.


더불어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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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디자인까지 갈아 엎어 버렸는데, 확실히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기존의 일본 애니 / 망가삘 충만한 캐릭터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톤의 이야기였으니까요.


덕택에 일본 게임 느낌이 별로 없고 그냥 서양산 호러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드는데... 뭐 원래 디자인 좋아하던 팬들은 많이 실망했겠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저 스타일은 이제 더 이상은 무리거든요. 일본 망가의 영향력이 강한 아시아쪽을 제외하면 정말 소수 덕후들이나 좋아할 모양새라...

그리고 따지고 보면 캡콤은 머나먼 옛날, 80~90년대부터 마블 히어로들이나 에일리언, 프레데터 같은 소재들로 게임 만들어 서양에 팔아 먹던 회사이니 나름 역사와 전통의 스타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뭐, 스토리는 그렇구요.


다음으로 게임 플레이 부분은...

몇 년 전의 깜짝 히트 저예산 호러 게임이었던 '아웃라스트'를 벤치마킹했다는 평이 중론이고 또 초반 전개(미치광이들의 집에 사로 잡혀 도망다니며 길 찾는 무력남의 1인칭 고생담)를 보면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끝까지 클리어하고 나면 사실 아웃라스트 생각은 전혀 안 나고 그냥 '아. 정체는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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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리즈 짤과 7편 짤의 중간 정도 되어 보이지 않습니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외전인 '레벨레이션스', 그 중에서도 2편이요.

이 시리즈 자체가 본가 넘버링 시리즈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적인 요소들을 도입하며 저예산으로 가볍게 만들어진 작품들인데.

그래서 여기에서 호응 좋았던 부분들을 대거 본편에 채택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일단 스토리의 뼈대가 셀프 표절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흡사한 구석이 많구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언급은 생략합니다.)

게임 플레이의 측면을 봐도 비슷합니다. 주인공들이 납치되어 별다른 무기 없이 좀비 한 마리에도 절절 매면서 흉가를 헤매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차 무기를 얻고 스킬(?)이 늘어나면서 액션 게임화 되는 전개.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플레이하며 과거 파트에서 했던 행동이 현재 파트 플레이에 변경점을 가져 오는 구조. 그리고 쌩뚱맞게 딱 한 번 갑작스레 주어지는 선택의 결과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전개까지.


다만 레벨레이션스는 저렴하게 만들어진 외전격 시리즈라 아무래도 싼 티(...)가 많이 나는데 반해 정식 넘버링 작품인 7은 때깔을 비롯한 게임의 모든 부분이 레벨레이션스보다 잘 다듬어져 있고 그래서 종합적으로 더 재밌습니다. 간단히 말해 레벨레이션스2가 재밌으셨다면 7편은 훨씬 재밌으실 거란 얘기. 다만 일본 아니메풍 섹시 미녀에 대한 기대는 접으시고


그리고 4편 이전의 '올드 스쿨'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스타일을 많이 되살린 느낌이라 올드 콘솔 게이머(...)들 입장에선 반가우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퍼즐 풀이라든가 액션의 구성이라든가. 여러모로 최근작들 스타일보단 오래된 작품들의 냄새를 많이 풍겨요.



아...


말이 너무 길어져서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ㅋㅋㅋ



게임 시작부터 첫 번째 보스전까지는 거의 명작 호러 게임이라고 불러도 아쉽지 않을 정도입니다.

다만 초반을 넘겨 액션의 비중이 커지면서부터는 호러는 날아가 버리고 익숙한 바이오 하자드식 액션의 향기가 커지긴 합니다만. 

뭐 '무력한 주인공의 숨바꼭질 게임' 장르의 호러들을 많이 접해 본 입장에선 중반 이후의 변화도 적절한 면이 있었다고 봐요.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 저항 못 하고 도망만 다니는 게임은 결국 필연적으로 질리게 되어 있거든요. 게임 내용이 무서운 게 아니라 아무 카타르시스 없이 도망만 다니는 상황이 지긋지긋해서 게임 실행시키는 게 두려워지는(...)

하지만 어쨌거나 후반부는 그냥 액션 게임이 된다... 라는 건 기억해 두시고.


호러 게임을 기피하는 분들이 많이들 생각하시는 '난이도'의 측면에서 보자면,

위에서 얘기했듯이 초반만 넘기면 그리 어려울 것 없는 흔한 바이오하자드 (혹은 그냥 TPS 액션) 게임 정도의 난이도구요.

게임 속 퍼즐들도 뭐 단순하고 힌트도 많이 주어져서 스트레스를 주지 않습니다. 다만 퍼즐 풀러 가는 그 길 자체가 스투뤠스

그래서 노멀 난이도 기준으로는 호러 게임에 특별히 약하신 분이 아니라면 좀 어렵지만 그럭저럭 할만한 게임입니다.

(역시 노멀 난이도 기준으로 체력 회복, 무기 아이템이 충분히 쏟아지는 편입니다. 전 아끼고 아끼다가 막판 보스 전에서 아까워서 의미 없이 난사해버렸;)


시작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활동하는 배경의 숫자가 아주 한정적이고 그게 다 어둡고 좁고 미로처럼 꼬여 있다 보니 (게다가 나오는 몬스터의 종류도 한 대 여섯가지 정도?) 스펙터클... 이런 건 없습니다.

대신 나름 신경 쓴 어두컴컴 불쾌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는 꽤 잘 살아 있는 편이구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스토리가 대단할 건 없어도 꽤 매끈매끈하니 괜찮습니다.


고로


아웃라스트, 더 이블 위딘,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등의 호러 게임으로 단련되신 분들이라면 가볍게 웃으면서 플레이해볼만한 난이도에 저 작품들보다 돈은 많이 들여 때깔 좋은 게임입니다. 저 게임들이 맘에 드셨다면 해 보실만 하구요.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호러 게임에 진입 장벽을 느끼시던 분들 입장에서 한 번 시도해 볼만한 게임이기도 하겠습니다. 특히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들을 몇 편이라도 즐겨 보신 분들이라면 초반 한 두 시간만 버티고 나면 수월하게 진행하실 수 있을 거에요. 

4편 이후로 액션 게임화 된 바이오 하자드보다 이전 시리즈들이 진국이었다! 고 외치시는 분들에겐 아주 반가운 게임이 되겠고.


하지만 뭐 호러를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애초에 해 보실 이유가 없겠죠. ㅋㅋㅋ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초반은 확실히 무섭고 역겹고 또 어렵습니다.

그리고 (게임 설정상 어울리긴 하지만) 둔하고 느린 조작감, 불편한 조준감 같은 요소들로 스트레스 받는 걸 많이 싫어하는 분들이라면 손 대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꼭 이런 부분에서 고집을 놓지 않더라구요. 느릿느릿 걸어오는 몹들 헤드샷 한 번 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


끝!



...그리고 사족입니다. ㅋㅋㅋ


- 막판에 특별 출연해주시는 전통의 수퍼 히어로 한 분께선 원래 얼굴에서 7편풍으로 성형을 심하게 하셔서 다음 시리즈 주인공 하시기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ㅋㅋㅋ

- 7편은 나름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편이라 아무래도 8편이 나온다면 예전 이야기들이 나와야할 것 같은데. 그 땐 도대체 어떻게 밀린 숙제들을 해결해 나갈지 궁금하네요. 7편은 사실 좀 편법처럼 만들어진 이야기라. ㅋ

- 혹시라도 망할까봐 캡콤이 머리를 많이 썼더군요. 독립적인 이야기, 저예산 제작. '망하면 흑역사로 묻어 버리지 뭐' 라는 제작진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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