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 남깁니다. 영화라는 것도 오랜만에 봤고요. 영화 보고 나서 듀게에서 검색해보고 다른 분들의 후기를 읽는 게 소소하면서 쫄깃한 즐거움이네요.


뭐든 기대가 크면 감흥이 적죠. 그렇지만 스릴러/공포 영화를 평소 못 보기 때문에 이런 입소문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아예 안 봤을지도 몰라요. 혹은, 한창 영화를 많이 봐서 또 뭐 볼 수 있는 거 남은 거 없나...할 때였으면 시놉 한 줄만 보고 갔다가 완전 다른 장르 때문에 제대로 뒷통수 맞았을지도 모르겠네요.



1. 예고편을 원래 잘 안 보는 편인데, 얘기가 많길래 영화 본 후에 예고편을 보니 왜 이렇게 스포를 했는지 모를 일이네요? 로맨스 영화처럼 보여주다가 어라..근데 뭔가가 좀 이상하다..에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럼 너무 불친절한 트레일러인가요.



2. 좋았던 점은 

 1) 친구 역할 덕분에 웃게 됐던 점이요. 덕분에 B급 스릴러코미디 느낌이 났달까요. 스릴러 못 보는 저로선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분 글을 보고 나니, 단지 웃기는 역할만 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네요. '~했대' '~할지도 몰라' 라는 괴담의 실체는 공포인데 원래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반대로 얘기하면 부풀려질만한 독한 씨앗을 품은 사건이 소문이 되죠. 일상적인 공포가 괴담으로까지 발전해서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상실하게되는, 허무맹랑한 공포의 아이러니가 코미디로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 긴장감을 와장창 깨버리는 그 호들갑의 톤이 말 그대로 '재밌었어요'.

더 포장을 한다면,

관객에게 '뭘 이런 걸 가지고 놀라고 겁 먹고 그래? 실상은 더한데 ㅎㅎ' 라고 하는 것도 같네요. (제4의 벽 와장창)


 2) 인종차별의 이슈가 이렇게까지 대중 오락 영화에서 중요한 코드로 쓰였다는 점이요. 시대는 정말 변하고/진화하고 있는 걸까요?

 써놓고 보니 영화 내부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외부적 요소에 대한 이야기네요.

2-1) 그런데 전 시놉만 대충 보고, 이 영화를 문라이트 - 히든 피겨스 - 에 이은 흐름으로 파악했었거든요. ㅋㅋㅋ 아 이번에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 결혼 허락을 얻으려는 과정을 소재로 하여 인종차별 문제를 풀어가는 '드라마'구나, 라고요.ㅋ 큰일날 뻔 했어요.



3. 근데 바로 위에 쓴 점이, 제가 아쉽게 느낀 점이에요.

 이상하죠. 저는 이 영화가 가진 문제의식이 기대만큼 깊진 않다는 점에 실망을 했거든요. 아 물론 영화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거였지만요. 제가 '이상하죠.' 라고 쓴 건, 다음과 같은 이유인데요.

 중반까지 영화를 끌고 가는 건, '뭔가 이상한데...이상한데...내가 오해하는 걸까? 피해 경험이 많다보니 그로 인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에 대한 혼란이잖아요. 그게 사실 '진.짜.로. 이상한 것이었다!!' 가 되니, 거기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납작해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어떻게 탈출할까'에 대한 액션밖에 남지 않은 듯 하고, 지금까지 미스테리해서 입체적이었던 백인 인물들도 그냥 '미친 또라이'로, 마찬가지로 단순해졌던 것 같고요.


3-1. 그래서 저는 그게 정말로 '혼란이었을 뿐'이었고, 백인들은 그럴 의도는 아니었고, 하지만 일상성에 뿌리깊은 차별적 시선과 언행들이 가득했고, 그들은 딱히 그걸 고칠 생각은 없고, 그래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차별받는 흑인/약자들은 그러한, '폭력의 의도를 가지지 않아서 더 탈출구 없는 폭력'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 자체가 매순간 공포다.. 라는 식의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너무 주제넘게 소설을 쓰고 있죠, 지금? ㅎㅎ)


3-2. 제가 '이상하죠'라고 썼던 건 바로 이 이유에요. 현실은 더한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데, 영화에서 폭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니까 오히려 '에이..왜 그걸 진짜 그렇다고 말해버리니~'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뭔가 제 생각이 모순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위에 쓴대로 3-1.의 이야기였으면, 현실의 폭력을 왜 은폐하지? 라는 생각이 또 들었을텐데.


3-3. 만약 3-1.의 흐름이었으면 좀 더 아트하우스적인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아트하우스가 더 고급져서 좋았을 거란 얘기가 아니고요. 지금의 대중적인 톤이랑은 그냥 '달랐을' 거라는 뜻입니다.



4.

문제의식이 깊진 않았던 것 같다고 썼지만, 그렇게 매도할 건 아니란 생각이 뒤늦게 드네요.

단지 흑인이라서 차별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뱡향이고, 반전의 실체는 바로 그 이중적인 태도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거였던 것 같네요.


'흑인들이 이건 참 굉장하단 말이지? 와우~' <--- 라는 태도가 주는 뭔가 불편한 느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다른 분 댓글에 있었던 '흑형'이라는 표현도요.

이걸, '여자들이 이건 참 잘한단 말이지? 와우~' '지방애들이 이건 참 잘한단 말이지? 와우~' 이렇게 바꿔보면 아, 차별적인 언행이구나, 라는 실감이 나는데,

저 가끔 헷갈리거든요.

신체적인 능력..? 달리기? 리듬을 타는 능력, 이른바 '소울', 그것들에 대해 '역시 흑인들이 이건 우월해' 라고 하는 게 차별적인 언행인지, 저 스스로 판단이 아리까리해요.


물론, 위에 언급한 모든 것들이 다 비흑인 입장에서 흑인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옳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젠가 정희진 님 글에서, 다리가 없어서 두 팔로 오랫동안 목발을 짚고 다닌 장애인에게 '팔 근력이 대단하시군요!' 라고 말하는 게 과연 칭찬이겠느냐 는 글을 봤던 기억이 나요.

그걸 생각하면, '소울'에 대한 찬사도, 좀 께름칙한 생각이 드는데요.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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