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날 옛적.. 제가 사원시절이었습니다. 

야간 당직 근무중이었는데 현장에서 부상자가 있다고 빨리 차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부랴부랴 가보니 현장직 직원이 머리에 피묻은 압박붕대를 대고 있더군요. 부상자랑 반장을 차에 태우고 부랴부랴 출발했습니다.

가면서 안전팀장에게 전화를 하니 회사 지정병원으로 가라고 하고 (저는 운전을 하고 있으니) 반장님을 바꿔달라고 합니다.

반장님이 이야기하는 상황을 들으니 부상자는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안전모가 걸리적거리니까 안전모를 벗고 청소를 하다가 쇠기둥에 머리를 찍어서 두피가 찢어진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병원에서 네바늘 꿰메었다고 하더군요) 

안전팀장은 가벼운 부상(?)이니 산재처리하지 말고 일단 개인보험으로 처리하고 영수증을 주면 비용처리를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지만, 경상이나 후유증이 남지 않는 전치 몇주 이하 중상은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회사내에서 자체적으로 처리하는게 이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희 회사는 몇년전까지 노동부 지정 안전사업장인지 뭔지 그랬습니다. 


윈리원칙대로 하면 부상자는 산재처리를 해야 하고, 규정을 어기고 안전모를 벗은 것에 대해 징계를 받아야 하고, 현장 감독자인 반장은 감독책임에 따른 경고를 받아야 하고, 생산팀장과 계장, 안전팀장은 안전규정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하였는지 점검을 받고 제대로 안했으면 또 징계를 받아야 하고 등등의 후속조치가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안전팀장은 그냥 비공식적으로 처리 하는 것으로 숨겼죠.



2. 

역시 몇년전.. 대리시절일겁니다.

현장 직원과 이야기중이었는데, 현장 운전실 밖에서 작업을 하던 직원이 기계에 손이 끼었습니다. 저랑 이야기하던 직원이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고 나가서 손을 빼냈습니다. 장갑이 피투성이었는데 다행히 절단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손가락 3개와 손등이 골절되었다고 하더군요) 반장과 계장이 달려오고 바로 차에 태워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도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1시간 거리의 다른 '지정병원'이었는데 그 병원이 산업재해 전문이라 손가락을 살릴 가능성이 높아서 그리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저는 현장에서 목격자로서 공장장과 안전팀장, 생산팀장 등에게 여러번 상황을 증언했습니다. 이때는 후유증이 생길지도 모르는 중상이라 은폐는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된 후속조치는 없었습니다.



3.

몇년전에 H모 회사에서 1년사이에 열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연달아 터졌습니다. 그중에는 한번에 5명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그 뒤로 노동부에서 산업재해사고에 대해 칼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하더라도 원청사에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저희 회사에서 사망 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입사하고 처음 발생한 사망사고였습니다. 게다가 사망자는 협력사(하청업체) 직원이었습니다.

금요일 야간에 발생했었는지라 저는 월요일에 출근하고 들었는데 담당자 및 공장장이 해당 업체 사장과 함께 재빨리 유족을 찾아가 사과하고 '성의있는 합의금'을 제시해서 주말내에 정리가 되어 크게 이슈화가 되지는 않았지만, 사망사고는 산재 은폐 이런거 안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래 막장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라고 해도 사람 죽은건 은폐안됩니다. 

그런데.. 역시 후속조치는 없었습니다.



4. 

그런데 작년에 또 사망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저희 회사 정직원이었습니다.

그분이 하던 작업은 필수적인 작업이 아닌 '교육훈련'차원에서 하던 일이었고, 교육내용도 현장을 잘 모르는 본사 교육부서에서 떨어진 일이었고, 공장의 교육부서는 그냥 하라니까 하는거라며 제대로 관리를 안했었다가 발생하였습니다. (애초에 무인설비가 돌아다니는 곳에서 설비가 돌아가는데 들어가라는게 비정상이었습니다.)

작년초에 공장장이 바뀌었는데, 공장장은 크게 화를 냈고 해당 교육과 관련한 부서와 책임자들은 줄줄이 징계와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공장장은 '규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직원과 그걸 방치하는 관리자는 엄벌하겠다'라고 자주 말합니다. 

그 뒤로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전치 1주짜리던, 전치 10주짜리던 상관없이 사고내용과 상황, 보완조치에 대해 공유를 합니다. 현장직원들은 계장이 안전조회때 전파교육을 하고 사무직들은 매월 2회 하는 전체 회의때 교육을 합니다. 중재해가 발생하면 줄줄이 징계받고요.

(저는 이런 공유, 교육을 넘어 회사 게시판에 사고 발생할때마다 게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장장이 그러더군요. '안전규정에는 예외가 없고, 현장 직원이 규정대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게 관리자의 할일' 이라고요.

웃기는건.. 작년에는 공장장이 이런 얘기 잘 안했는데, 오너 바뀌고 나서는 엄청 자주 합니다. 결국 오너가 문제였던 것일까요..



5.

이번에 119 돌려보냈다가 사망사고난 회사는... 노동지청에서 탈탈 털겁니다. 지청장은 해당 지역 병원에게 '너네 이 회사/협력사 직원들의 모든 외상치료기록을 내놔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거 산재인데 은폐한거 같지?' 라고 생각되는 것들 추려서 걸리면 건당 얼마씩 벌금을 냅니다. (그런데 건당 몇백밖에 안할겁니다. 아마..) 공장장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경찰조사 받고 미필적 고의 어쩌구 하면서 기소당하겠죠. 하지만 실형 나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집행유예 아니면 벌금형 나오겠죠.  

한국의 '까라면 까라' 분위기상.. 이런건 오너나 경영자들을 쎄게 처벌하지 않는한... 근절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옛 안전팀장도 같은 월급쟁이 노동자가 다쳤는데 은폐하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위에서 싫어하니까 그랬겠지.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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