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사람의 변.

2015.12.16 21:01

젊은익명의슬픔 조회 수:2387

1. 우선, 억울합니다....ㅠㅠ 저라고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어요. 권위적인 어머니 밑에서 대화하는 법을 상대적으로 늦게, 적게 배운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고, 어느순간부터 제게 엄습한 이 우울감도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고...타고난 것도 물론 있겠죠. 그리고 아참 제 자신의 노력의 부족도 빼놓을 순 없겠어요. 하지만 '재밌어지려는 노력'이라니 상상만 해도 막막해요, 어떻게 재밌어지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거죠? 진지하게 방법을 묻고 싶어요. 근데 제가 개그감이 떨어지는데 반해, 혹은 그 때문에, 제 코미디에 대한 기준은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아니면,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코미디 프로를 재밌게 본 적이 없어요. 코미디 영화를 봐도 쉽게 안 웃어요. 특히 미국식 화장실 조크는 경기까지 일으킬 정도로 싫어하죠. 이래서야 글러먹었어요.


2. 제가 인생에서 '재밌는 사람'이 되었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지만, 그것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에요. 제 고등학교 때의 친구에 의하면 전 실로 '사람자석'이었다고 해요. 실제로 그때까지만 해도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와 친밀하게 지냈는데 그때도 제가 '재밌는 사람'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것만 보면 꼭 '재미'가 사람을 사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아요. 그 때의 제 자신은 좀 더 제 자신을 사랑했고, 사랑할만한 근거를 더 많이 갖고 있었죠.(공부도 곧잘하고 운동도 좋아하고 자존감도 전반적으로 더 높은 사람이었어요.


3. 그렇다고 최근에 제게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우울감을 갖게 된 이후 전 좀 더 차분한 사람이 되었고, 주변친구들의 아픔이나 은밀한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유대를 쌓아갔고(야메카운슬러라고나 할까), 저 역시 제 자신의 내밀한 아픔을 공유하면서 깊은 관계를 갖게 된 친구들도 몇 명 생겼고, 그들 덕분에 제 우울한 삶은 많이 구원받았었죠. 


4. 하지만 내일 모처럼의 비번인데,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만나주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시점에서 이미 전 틀려먹은 거죠.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친구들과 내가 덜 친했던 건지, 아니면 제 문제인 건지, 어느쪽인지 양쪽인지 어느 쪽도 아닌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 친구들을 탓하고 싶진 않구요. 오히려 미안하죠. 제겐 아까울 정도로 정말 좋은 사람들인데...다 제 잘못인 거죠. 근데 대체로 이런 관계가 그렇듯,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었던 시기를 둘 중 한 쪽만 극복해도 쉽게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는 것 같아요. 언제부턴가 전 일방적으로 제 아픔을 얘기하고 친구들은 들어주기만 하는 그런 느낌이에요.


5. 내일은 아마 '행복의 정복'을 읽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될 것 같아요. 독서하는 것도 싫지 않지만 외로움을 잘타는 저의 특성상 내일 하루도 힘겨운 휴일이 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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