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영화구요. 무려 두 시간 18분이나 되는 미스테리/멜로네요. 스포일러 없게 적는다는 핑계로 글의 무식함을 정당화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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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론 다른 갬성 터지는 버전의 포스터보다 이게 좀 더 재밌고 맘에 듭니다.)



 - 등산 마니아 아저씨 한 명이 어느 산 꼭대기 벼랑에서 낙사합니다. 실족사일 수도 있지만 이 양반에게 격하게 두들겨 맞고 살던 젊은(탕웨이가 한국 나이로 44세이긴 합니다만 암튼 상대적으로!!) 중국인 아내가 범인일 수도 있죠. 사건을 맡은 박해일 형사님은 당연히 순식간에 이 분에게 빠져들구요. 엄... 적다 보니 과연 이게 소개가 필요한 내용인가 싶어 이만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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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둘이 곧 어떤 관계가 될지 모르고 볼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읍니까.)



 - 영화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의 초반. 그러니까 영화 도입부가 좀 당황스럽습니다. 이게 그래뵈도 멜로 갬성으로 나아갈 영화인데 차분히 빌드업을 한다기 보단 살짝 부산스럽게 이것저것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면서 '용건만 간단히' 식으로 착착착 스피디하게 전개 돼요. 거기에다가 박찬욱 특유의 개그 코드까지 촘촘히 박혀 있어서 거의 코미디 영화 느낌까지. '나중에 어쩌려고 이렇게 스타트를 끊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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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전반부에서 이정현과 함께 나오는 장면들은 거의 다 코미디에 가깝죠.)



 - 근데 생각해보면 그래요. 어차피 이 영화의 도입부 이야기는 그냥 흔한 헐리웃 장르물 클리셰 부품들의 재조립이거든요. 아마도 살인범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여자에게 치명치명하게 빠져드는 남자 형사 이야기 말이죠. 이야기 쓰는 사람도 알고 관객들도 알며 이야기 쓰는 사람들은 이걸 관객들도 이미 다 알고 올 거라는 걸 아니까. 이걸 감정적으로 진지하게 설득하기 보단 이런 식으로 빠르게 전개하며 다른 쪽(?)에 힘을 쏟기로 한 것 같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전반부에선 박해일의 해준 캐릭터가 살짝 하찮아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멀쩡한 처자식 두고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던 양반이 갑작스런 불장난에 아주 격하게 급행으로 빠져드는 데에 대한 설명이 굳이 없어요. 솔직히 영화 전개만 놓고 보면 그냥 '예뻐서!!!'로 밖에 안 보이는데. 어쨌든 그게 탕웨이라 설득은 되지만 그래도 좀 그렇죠. ㅋㅋ 영화가 굳이 관객들에게 해준의 입장을 깊이 이해시키려 하지는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끝까지 보고 나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탕웨이의 영화이고 탕웨이가 연기한 송서래의 영화더라구요. 관객들이 굳이 박해일과 해준 입장을 이해하지 않아도 송서래는 충분히 빛나기 때문에 이입은 됩니다. 일단 전 그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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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입을 안 할 수가 없게 만드는 그 분!! 존재 자체가 개연성!!!)



 - 그렇다고 해서 해준의 캐릭터가 정말 하찮았다는 건 아닙니다. ㅋㅋ 비록 송서래를 더욱 빛내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이지만 그 역할을 정말 충실히 잘 했다고 느꼈으니까요. 영화 내내 해준이 하는 일들은 결국 거의 대부분이 송서래의 능력과 매력을 드러내고 꾸며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본인의 캐릭터도 꾸준히 견고하게, 납득이 가게끔 유지 하고 마지막엔 결국 관객들의 감정도 이끌어 내요. 이 정도면 훌륭하죠.


 그런데 재밌었던 건, 여기에서 상당히 독특한 방식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둘의 대화요. 한국말을 잘 하는 해준이 대체로 대화를 주도하지만 이 양반은 말투도 살짝 어색한 문어체 겉멋 말투인 데다가 본인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하질 않아요. (마지막의 '당신이 사랑한다고 한 말' 같은 게 대표적이죠) 반면에 송서래는 아주 서툰 한국어를 짧게 구사하지만 언제나 본인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합니다. 극중에서 해준이 감탄하기도 하죠. 한국말 참 잘 하신다고.

 그리고 이게 이 둘의 캐릭터로 그대로 연결이 되며 스토리에도 그대로 연결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 그걸 얻기 위해 해야할 일들을 정확하게 알고 그걸 해내는 송서래와 어리버리 헤매다가 때늦은 깨달음과 함께 끝을 맞는 해준. 


 그리고 이건 뭐라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그냥 두 사람이 마주하고 대사 치는 게 듣기가 좋아요. 문어체 한국어, 어색한 한국어, 중국어가 이리저리 뒤섞이며 흘러가는데 음... 역시 모르겠습니다. 그냥 듣기 좋더라구요. 그동안 본 한국 영화들 중에 대사 듣는 맛이 가장 좋았던 영화였어요. 제대로 된 일상 한국어 대화가 별로 없는데 말이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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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이런 류의 '용의자에게 홀렸어요' 스릴러 주인공 치고는 꽤 유능하고 또 성실한 우리 해준씨. 고경표 반가웠구요.)



 - 헐리웃 고전들을 다수 인용하며 짜맞춰진 영화... 라는 얘길 다들 하시죠. 뭐 그런 거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팍팍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는 걸 보면 매니아들 눈에는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떠오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봤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 그런 것 분석은 제 능력 밖이구요. ㅋㅋ


 근데 그냥 설정이나 장면들만 가져온 게 아니라 화면 연출까지 '헐리웃 클래식' 느낌 낭낭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바닷가의 라스트씬 같은 게 그랬구요. 그러니까 그냥 고전을 가져다가 이야기를 짜맞추기만 한 게 아니라 박찬욱 본인 스타일로 헐리웃 고전 영화를 만들어 봤다. 뭐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그런 느낌 덕에 21세기에 이런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느낄 수도 있는 거부감 같은 게 거의 중화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킹왕짱 우윳빛깔 송서래씨의 캐릭터와 행동 말이죠. 사실 요즘 영화의 여성 캐릭터라고 보기엔 되게 옛스러운 느낌이 강합니다. 인물 성격도 그렇고 행동도 그래요. 뭔가 좀 요즘 사람들의 기준으로 불만을 사거나 심지어 까일 만한 구석이 없지 않은 캐릭터인데. 영화의 고풍스런 분위기 덕에 그게 그냥 고전 헐리웃 영화 정서인 걸로 커버가 됩니다. 


 아. 물론 그런 분위기로 '잘 만들었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어설프게 만들었다면 택도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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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막 노골적으로 갬성 터지는 장면이 나와도 괜찮습니다. 심지어 탕웨이 머리에 달린 저 조명등까지 낭만적!)



 - 이야기를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두 가지 사건을 보여주고. 그러면서 실상은 1부가 사건과 힌트편, 2부가 해설편과 같은 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죠. 1부의 주인공은 해준, 2부의 주인공은 송서래라는 식이구요. 이것도 상당히 잘 짜 놨습니다. 앞부분에서 뿌려 놓은 떡밥들을 뒷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싹싹 쓸어 담으며 이야기를 완성하는 솜씨도 좋았고. 감독 본인이 참고했다고 밝힌 '밀회' 처럼 같은 장면을 다른 시점으로 바꾸어 보여주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장면도 좋았구요. 


 뭣보다 그렇게 머리를 잔뜩 굴려서 만들어낸 형식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영화에 종종 따라 붙는 '머리 굴려 계산해서 만든 티가 역력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게 후반부에 가면 이야기가 거의 송서래 과몰입 모드가 되는데, 캐릭터도 훌륭하지만 탕웨이가 워낙 연기를 잘 해버려서 잡념 없이 감정적으로 몰입이 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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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의 '당신의 미결이 되고 싶어요'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전반부의 요 장면... 인데 박해일 얼굴 왜 이리 cg 같나요;)



 - 그동안 스포일러 피한다고 영화 관련 정보를 아예 피해버려서 유명한 배우들이 이렇게 우루루 나오는 줄은 몰랐네요. 이정현, 박정민, 고경표, 박용우 같은 분들부터 신인 내지는 덜 유명한 쪽으로는 이학주, 고민시 같은 분들도 있고 또 김신영... ㅋㅋㅋㅋ 결국 주인공 둘이 거의 다 해먹는 영화라 다들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맡은 역할들 잘 해주셨구요.


 위에서 뭔가 좀 폄하한 걸로 오해를 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박해일 연기도 아주 좋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용의자에게 삘 꽂혀서 인생 망치는 형사 캐릭터는 뭔가 좀 식상하고 안 매력적인 느낌이 있는데 그게 이만큼 살아난 건 박해일 연기 덕이 컸다고 보구요. 결과적으로 마지막 장면의 애절함도 한층 더 강렬해졌던 것 같습니다. 해준이 그냥 밋밋 무매력으로 자리만 버티고 있는데 송서래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다면 결말의 감흥이 떨어졌겠죠.


 하지만 역시나 이 영화는 탕웨이 꺼! 라는 게 개인적인 결론이었구요. 물론 반박하신다면 님 말씀이 맞습니다.

 특히나 전반부에서 좀 투박해 보이는 상태의 송서래를 연기할 때 감탄했어요. 아니 탕웨이의 비주얼을 하고 투박한 사람인 척 하는데 그게 어울리고 실감이 나네. 그러고 나니 후반부에서 새로운 성격 보이는 게 더 신선해 보이고. 그렇게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애절한 멜로 연기를 시전하고 계신데 그게 또 폭풍 몰입이 되구요. 비주얼이면 비주얼 연기면 연기 다 너무 훌륭해서 왜 한국 영화계는 진작에 이 분을 소처럼 일 시키지 못했는가!! 라는 생각을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네 남편이 실업자 되는 꼴을 원치 않는다면 순순히 한국 영화에 출연하라!!!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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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하하 깐느박 영화에 출연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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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하하 깐느박 영화에 출연했다능! x2)



 - 암튼 뭐 재밌게 봤습니다.

 추리물로서는 딱히 대단한 아이디어 같은 건 없어도 무난한 추리물 재료들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재미를 주는 쪽으로 괜찮았구요.

 멜로로서도 정교하게 짜여진 떡밥 심기 & 풀어내기와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몇몇 인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들 덕에 꽤 잘 먹혔습니다.

 혹은 그냥 '박찬욱 영화'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당연히 재밌을 영화구요. 본격 멜로는 처음이라지만 보다보면 그냥 박찬욱 영화구나... 싶어요. ㅋㅋ

 덧붙여서 고전 영화에 대해서든 뭐든 딱히 아는 거 없어도, 대단한 떡밥 해석력 같은 것 없어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장르물입니다. 깐느 감독상이라든가, 으리으리한 참조 영화 리스트라든가... 이런 거 신경 끄고 봐도 걍 '재밌는 영화'였어요.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부담 없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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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짝 '박쥐' 생각 나더군요.)




 + 올레티비 유료 vod로 봤습니다. 가격이 빨리 떨어졌네요. 칠천 몇 백원이었는데 통신사 포인트로 천 몇 백원 할인 받고 추석 연휴 이벤트로 결제 금액 절반을 티비 포인트로 받고... 뭐 그렇게 봤습니다. 아껴야 잘 살죠!! ㅋㅋㅋ



 ++ 구글에서 이 영화 캐스팅 정보란을 보면 개그맨 김국진씨가 보입니다. 언제 나왔지? 하고 확인해 보니 극중에서 송서래가 사용하는 번역기 목소리를 '성우 김국진'씨가 연기한 거라네요. 구글이 가끔 이럽니다.



 +++ 주인공들이 다 아이폰을 사용하고 워치를 차고 다니며 다른 인물이지만 시리 소환 장면까지 나오는 걸 보니 '파란만장'이랑 '일장춘몽'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쯤 되면 협찬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박찬욱이 애플빠 맞는 듯(...)



 ++++ 쌩뚱맞지만 자라 잡는 장면이 너무 웃겼어요. 김신영의 대사도 웃겼고.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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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중국식?" ㅋㅋㅋㅋㅋㅋㅋㅋ 탕웨이 표정까지 너무 적절합니다만. 맥락 없이 짤만 보면 그냥 알콩달콩 로맨스 장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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