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06 14:59
요 며칠 시끄러웠던 그 동시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어린 시절 폭력적인 것에 매료(?)되는 건 꽤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전 누군가와 치고받고 싸운 적도 없고, 스포츠라도 사람이 진짜로 맞는 게 싫어서 격투기도 싫어하고,
열받아서 종이 찢어발기는 정도를 제외하면(이것도 극히 드묾)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때리거나 부수거나 하는 일도 없기에
스스로 폭력적인 성향은 낮은 편이라 평가하는 사람입니다.(성격은 더러워도 폭력적이진 않지-랄까요)
그런데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어른이 된 입장에서는 약간 섬뜩할 만큼 잔인한 장면을 즐기기도 했어요.
예전에 중학생 때였나, 친구가 어린 시절에 사극 보고 인형놀이로 고문하는 장면(주리를 틀라! 이런거요)을 재연했다길래
"으앜ㅋㅋ ㅅㅈ 왜 그러고 놀았어?ㅋㅋㅋㅋㅋ" 이런 반응을 보였는데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저도 꼬꼬마 때 사촌언니 및 동생들이랑 사약 먹고 죽는 장면을 연기하고 놀았던 기억이 나는 겁니다.
인형 주리 틀고 놀았던 친구나, 사약 주고 받으며 놀았던 저나 사촌들이나 모두 사회에 무해하고 멀쩡한 성인으로 자랐고요.
예나 지금이나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토끼나 강아지나 병아리 같은 작은 동물을 안거나 만질 때면
아 예쁘다-> 작고 연약하다-> 내가 얘 목을 확 비틀어 버리면 죽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흐르기도 했고요.
죽겠지? 생각 다음엔 '아니다, 아니다, 목 안 비튼다' 이런 심정으로 두마리 짐승 모두를 안심시켰으며
한번도 실행한 적은 없지만 여튼 '죽이는 게 나쁘다'라는 개념이 잡힌 나이에도 이런 잔혹한 상상을 했던 거죠.
무슨 영화 속 악귀같은 꼬맹이처럼 눈빛을 바꾸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당연한 듯이 그런 생각이 들었고
또 그만큼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생각이 안 들었던 거 같아요.
애든 어른이든 위의 사례와 같은 폭력적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심각한 문제인 거고,
나이가 들어서도 잔인한 상상에 사로잡혀 있다거나 하면 그 또한 문제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아이들이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노는 건 대충 정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는 성장 과정인 것 같습니다.
물론 어른이 보기엔 많이 괴상하고, 걱정도 되고, 실제로 길게 지켜봐도 이상한 애가 있기도 하겠지만요.
2015.05.06 15:14
2015.05.06 15:21
2015.05.06 15:20
연민과 폭력 두 가지 본능의 싸움 같아요. 그리고 심지어 취학전 아이들도 '암묵적으로 금지된 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 금기를 깨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 같고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겪어 본 사람이 더 잘 하더군요.
문제가 있는 애인지 겪을 과정을 겪고 있을 뿐인지를 일반인이 판단하기는 어렵겠죠.
조카가 예닐곱 무렵에 '자살해 버려' 소리를 어디선가 배워와서 경악시킨 적이 있는데, 자살에 이르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깊이를 보통 유치원생이 알 리가 없지요. 대부분 이런 경험의 부족으로 연민보다 폭력이 잘 표출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성인이 된 후에도 역지사지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의 개인차가 있고요.
2015.05.06 15:26
말씀하신 어릴 때 경험은 폭력 성향이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유치원생이 병아리도 새니까 날 줄 알 거라고 생각하고 창밖에서 떨어트린다거나. 결과적으로는 폭력적이고 잔인하지만 그런 행동에 이르는 동기는 조금도 폭력적이지 않잖아요? 저도 어릴 때 동기들과 싸울 때도 주먹이 나간 적이 없고 화가 난다고 물건 집어던지는 것조차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만, 어렸을 때는(초등 저학년) 개미만 보이면 다리를 뜯곤 했어요. 딱히 이유는 없었고, 그렇게 하면 개미가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고려나 그러한 인식조차 없는 상태로
2015.05.06 15:32
거기에 대해 좀 궁금한 것이, 저는 개미 다리는 안 뜯어 봤지만 송충이를 나뭇가지로 눌러 죽이는 건 많이 해봤거든요; 무언가를 '내가' 망가뜨린 것에 쾌감을 느꼈던 건지, 아니면 오그라드는 모습이 단지 시각적으로 재미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어요. 요새는 하라 해도 못 하겠습니다.
2015.05.06 16:04
제 경우는 좀 모순되는 게, 애들이 장난으로 곤충이나 지렁이 같은 작은 동물을 죽이거나 괴롭히는 걸 기를 쓰고 말리던 동물애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손아귀에 든 생명을 보면서 이렇게 하면 죽겠지? 이랬거든요. 죽이는 게 나쁘단 걸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던 거죠. 조금 딴 얘긴데 그냥 '죽음'이란 개념 자체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시외로 나가면서 차밖으로 저수지나 연못 같은 게 지나가면 늘 하는 질문이 "저기 빠지면 죽나?"였거든요. 쓰다보니 제가 점점 이상한 꼬맹이가 되어 가는군요.
2015.05.06 16:19
2015.05.06 16:36
죽음에 대한 매료와 생에 대한 확신을 갖고자 하는 욕구가 어느 시기보다도 크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릴때는 누구나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2015.05.06 16:46
네 저도 이게 보편적인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어른 입장에선 또 이게 냅두면 지나갈 상태인 건지 아니면 애가 진짜 이상한 건지 분명하게 확인할 길이 없는 혼란스런 시기인 것도 같고요.
2015.05.06 19:43
'폭력'을 '나쁜 것' 으로 놓으면서 동시에 아주 넓은 범주로 규정해버리는 작업까지 해버리면
아주 기이한 결론에 이를 수 있죠. (ex: 스포츠는 '아름다운 폭력'이다.)
정신과 육체는 함께 가는 것인데 어째선지 최근 한국에서는 모든 육체적(물리적) 언어를 폭력으로 규정하는 경향이
...
점점 심해지는 듯 합니다.
2015.05.06 20:58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해서 직접 경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곧잘 상상하는 것 같습니다. 앞에 앉은 고양이와 잘 지내면서도 한번 때리면 어떻게 대할까 이런거요.
그리고, 폭력적인 성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른 식으로 남거든요. 스포츠를 좋아한다거나, 심즈의 심을 굶겨죽인다거나 어떤식으로든 폭력적인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방식의 차이일뿐인것 같구요. 인간은 폭력을 좋아합니다. 횡으로 베느냐 종으로 베느냐의 차이일뿐, 베고 찌르는 건 똑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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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폭력적인 것에 관심 두는게 아니라 감정 표현의 섬세한 구분을 못하니 도덕적 경중을 따지지 않는거 아닐까요. 기준 없는 관찰자 시점에선 결과가 크게 보이는 것이 구분하기 쉽고 더 쉽게 보이겠죠. 다치면 아프다, 죽는다의 개념은 직접 겪어보기 전엔 추상적이고 또 어릴때일수록 축척된 정보가 적기때문에 미루어 상상하는 능력도 성인보다 떨어지게 마련이죠. 다리가 잘려본적 없어도 '다리가 잘리면 아플것이다' 와 같은 추론 능력은 날때부터 갖는게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