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

2015.06.06 12:05

여은성 조회 수:905


  1.요즘은 늘 그래요. 전혀 화가 나있지 않거나 머리끝까지 화가 나거나 둘 중 하나죠. 중간은 없어요. 분노조절장애일지도 모르죠. 흠. 하지만 분노조절은 아쉬운 놈들이나 하는 거라는 게 제 원칙이라서요. 분노는 모은다고 원기옥이 되는 게 아니예요. 그냥 독일 뿐이죠. 화가 날 때마다 그 분노는 정확히 왔던 곳을 향해 되돌아가야 하는 거죠. 그러지 않으면 결국 엉뚱한 곳을 향하니까요.


 요즘 최고로 신경을 긁은 사람은 한동안 안 보다가 다시 만나게 된 어떤 아저씨였어요. 저의 수법은 이거예요. 상대를 파악하려면 슬슬 물러나면서 상대를 조언자의 위치로 격상시켜 주는 거죠.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내주면 열 걸음 치고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한 걸음 물러나면 자기도 한 걸음 물러나죠. 뭐 어느 타입이 낫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냥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상대하고 싶은 사람이 달라지는 거죠. 그 아저씨는 첫날 만났을 때 시험해 봤는데 전자였어요.


 어쨌든 그 아저씨가 늘 고집하는 건 글렌리벳을 더 글렌리벳이라고 부르는 거였어요. 그 글렌리벳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술을 마실때마다 주워섬기고 The를 안 붙이고 리벳이라고 말하면 핀잔을 주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냥 그게 그의 캐릭터인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지난번 만났을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그건 그냥 글렌리벳 팔아먹는 장사꾼들이 파는 스토리일 뿐이잖아요. 그딴 스토리에 경도되어서 핀잔을 주는 게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날...흠 어떤 일이 있었고 그를 평생 안보게 됐죠. 뭐 세상에는 60억명의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가 그 아저씨 자리를 대체하겠죠.


 

 2.지난번에 최고의 동기부여는 하찮음에 대해 분노하는 거라고 썼었는데...말은 멋있긴 하지만 당장 배가 부르고 몸이 편하면 그것으로 텐션을 끌어올리는 거도 참 힘들어요. 사실,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복수심이죠. 목표를 달성한다는 측면으로만 보면 복수심이 최고의 동기부여겠죠. 한데 이 복수심이라는 게 무서운 게, 자존감은 하늘을 찌르면서 인내력에 대한 역치가 낮아진 상태면 정말 스스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려요.


 대학교 때였어요. 대학교 1학년을 다니고 1년 휴학하면서 놀았었어요. 그리고 컴백했죠. 문제는 완전 물갈이된 과방 멤버였어요. 어떤 동갑 녀석이 저한테 반말을 쓰는 거예요. 그 당시에 저는 무조건 누구에게든 존대말을 쓰는데 말이죠. 그놈이 계속 저에게 반말을 하는데 저는 도저히 반말을 쓸 수가 없었어요. 같이 반말을 쓰는 걸 누군가 보면 그와 내가 친한 줄 착각할거잖아요. 


 그래서 그녀석이 언젠가는 존대말을 쓰기를 바라며 계속 존대말을 쓰다가...반년쯤 지나고나서 포기했어요. 그리고 마음 속으로 언젠가 그럴 기회가 생기고 누구에게도 의심받지 않을 어떤 순간 이녀석에게 아주 뜨거운 맛을 보여 주겠노라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계속 존대말을 쓰면서 깎듯이 대했죠. 2학년때부터 졸업반 때까지 그랬어요. WBC에서 한국이 미국을 이겨서 모두가 열광할 때도 어느날 햇빛이 아주 뜨겁지도 엷지도 않은 좋은 날 수업 대신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는 날도 이 녀석을 언제 어떤식으로 육체적, 금전적 손실을 입히고 빠져나올까 하는 궁리를 했어요. 그런 계획을 짜고 있다는 걸 가장 친한 사람에게도 절대로 말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죠.


 휴.


 뭐 시간이 지나고 당장 눈앞의 급한 일들 때문에 그를 잊었었어요. 08년 09년 11년 세번의 큰 금융위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작년에 스마트폰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어서 이리저리 연락을 하다가 그 사람과도 연락이 되었어요. 그래서 한번 물어봤어요 왜 그때 처음 봤을 때부터 반말짓거리를 했냐고요. 그러자 그가 내가 자기랑 같은 나이인 줄 몰랐었다고 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에게 한번도 우린 같은 나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3년동안. 참 이상한 일이예요. 고작 반말 썼다고 그 몇년동안 복수심을 불태웠다니.



 3.휴...요즘 쓰는 글을 보면 내용은 다 같아요. 처지를 비관하는 거죠. 그래서 쓰는 글들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좀더 나은 처지를 구축하고 싶다는 푸념이 되죠. 흠. 그런데 문제는 남은 시간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인생 전체로 보면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화려할 수 있는 순간은 이제 한 12년 정도일 거 같아요. 그럼 사실상 제 인생은 12년밖에 안 남아 있는 거죠.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그 기간이 20년 25년쯤 될 수도 있겠죠. 어쨌든간에 제 생각엔 그 기간이 끝나버리면 남은 인생은 처지가 낫든 낫지 않든 무슨 상관인가 싶어요. 그냥 인터넷 비 낼 돈과 빅맥 런치세트 사먹을 돈, 밤 12시에 잠들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수면제 살 돈 이상의 비용은 필요가 없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그때가 되면 돌아오지 못할 화성 이주를 신청해서 화성이라도 한번 가보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안이한 생각이더군요. 젊고 건강하고 온갖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 있더라고요. 화성에서 죽어야 하는 화성 이주를 신청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더이상 소중하지 않은 사람들뿐일 줄 알았는데...화성에 보낼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는 젊고 전문기술도 있고 열정까지 넘치는 사람들을 뽑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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