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연애시대는 지나갔는가.

2015.12.01 00:06

zoro 조회 수:2242

사람이 말이죠. 움츠린 채 땅의 양분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다가 태양이 맑은 어느 순간 숨겨놓았던 꽃봉오리를 활짝 하고 펴는 시기가 있기 마련인데요.

머리가 커서 이성을 보며 연애라는걸 좌충우돌 시작하다보니, 세끼 밥먹는 것 처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나의 연애시대를 살게 되었죠. 그 때는 몰랐어요. 한동안 활짝 만개하였던 것이 서서히 이파리가 하나씩 떨어져 지는 날이 있을줄은. 즐거운 마음으로 선택했어요. 아, 이번에 나의 연애상대. 가벼운 마음이었던건 아닙니다. 언제나 진심을 다하고 솔직하게 살았어요.

분명 제게도 있었어요. 갑질하던 연애의 시대가. 내게 마음이 있어 주위를 맴도는줄 알면서도 끝까지 모른척을 하고, 더듬거리며 하는 고백에 어떤 농담으로 돌려 벗어날지. 무리 중 다른 남자애를 좋아한다고 하면 마음에도 없으면서 자존심 상해하던 건방짐에 턱이 천장 끝에 닿아있던 한심한 나날들.

그 봉우리는 다 말라서 겨울에 스러질 일만 남은거라는걸, 자신을 선뜻 깨닫는건 현자말고는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따위로 행동하면 안돼. 바짓가랑이라도 붙들고 사정을 해도 될까 말까한 연애를 예전처럼 아 하면 어 하고 받아줄줄 알고 한심하게 삽질의 연속입니다. 아, 이젠 지나갔구나. 나의 연애시대. 눈발 날리는 밤에 멍하니 움츠리고 서서 생각을 해봤어요. 왜 내가 이렇게 사인을 보내는데 따라오지 않는거지? 왜? 왜? 친구가 한마디합니다. 아직 소년이네. 정신차려.

사랑이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이나 더욱 한심한건 지속 가능한 연애. 지킬 줄을 모른다는거예요. 내가 좋아하고 네가 좋아하는 일은 정말 기적같은 일인데, 그래서 그만큼 소중한데. 꽃이 피어있을 때 대단원의 막을 내렸어야 했어요. 잘 지내다 틀어지면 끝내는게 그냥 수순이었는데. 막 나는 닥치고 무조건 시키는대로 다 들어주면 되나? 안될껄. 그걸 배웠어야 하는게 네 지난 연애인데. 뭘했냐. 대체.

그런데, 이런 지경임에도 불구하고, 기특하게도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내게 지나갔던 그 날들은 진정한 연애의 시대는 아니었지. 우리는 가끔 신이 내린듯한 사랑을 하는 늙은 연인을 보고 감동할 때가 있는데, 마지막으로 그런 것, 그거 한 번 시작해보고 그걸로 그냥 이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고 생각을 합니다. 신이시여. 제게 제발 한번만 마지막 한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더 이상 경거망동 안하고 진짜 그냥 잘하고 희생하고 살겠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내 사람에게 이불같은 존재라면 그걸로 족합니다. 더 이상 내 자아같은건 중2도 아니고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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