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유년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집은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죠. 그게 1988년. (나이 나오나요..)

아파트래봤자 두 동밖에 없는 규모가 작은 아파트였는데,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쌍문동 골목 딱 그 분위기였습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엄마의 쪽지가 저를 반겼지요. OOO호에 있다. XXX호 가서 밥 무라.

그 날은 엄마들이 OOO 호에 모여 화투를 치는 날인 겁니다!

그럴 때면 저와 제 또래 친구들은 XXX호에 모여 같이 밥을 먹었죠.

그러고 나서 노는 거라고는 아파트 공터에서 맨날 피구 피구 피구... 자전거 자전거 자전거...


현관문도 늘 열어 놓고 살았습니다.

엄마가 야 위에 가서 고춧가루 좀 얻어온나. 하면 올라가서 아줌마 고춧가루 좀 주세요. 어 그래 요 있다. 이런 식이었어요.

우리집 난방 파이프 공사할 땐 2주 정도 윗집에 가서 살았던 적도 있고요.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땐 친한 집끼리 버스를 대절해서 놀러도 자주 갔죠.

버스 안에서 아저씨 아줌마들은 응팔의 부모님들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요. 저도 같이 췄어요.

그 땐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 저의 엄마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잘 어울렸던 집 중에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고 해야 할까.. 여튼 기억에 남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아저씨를 변호사 아저씨라고 불렀죠.

우리 윗집 윗집에 살았던 그 아저씨는 제가 그 집에 찾아갈 때마다 늘 등나무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어린 저의 눈에도 OOO호 아저씬 다른 아저씨들이랑은 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저씨가 괜히 멋있어 보여서 나도 책을 읽기 위한 의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니까요...

 

십 몇년이 흘러 저는 TV에서 그 아저씨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옆에 있던 모습을요.

아저씨 밑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자막이 뜨더군요.

지금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라고 불리는 그 분, 그 아저씨.

지난 총선 땐가요? 1000만원대의 의자라며 문제가 됐던 바로 그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으시는 사진을 본적이 있어요. 

어릴때 봤던 모습 그대로라 기분이 묘하더군요.

트윗으로 쪽지를 보냈어요.

- 아저씨 저 기억나세요? OOO호 OOO에요. 

- 그럼 기억하지 잘 지내니.


오늘 듀게에서 아저씨.. 아니 ㅎㅎ 대표님 얘기가 나오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네요.

우리의 모든 삶은 연결돼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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