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음] 매드 맥스

2015.05.1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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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배경으로 하는 두 시간 짜리 영화인지라, 다 보고 나면 목이 마르다는 평을 미리 듣고 갔습니다. 물병 하나로 홀짝홀짝 목을 축이다보니 영화가 끝나있더군요. 


이 영화는 (스토리가 아니라) 시라고 어떤 관람객이 평가를 올렸던데, 그 말에 공감합니다. 마치 잘 쓰여진 시처럼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백이십분에 해당하는 영화를샅샅이 뒤져봐도 잘라낼 데가 거의 없지 싶어요. 기껏해야 한 두 군데 정도. 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배경을 무척 싫어하는데, 이 작품은 감탄하면서 봤네요. 특히 초반부분 맥스가 도망가는 장면은 영화감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두고두고 레퍼런스로 써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장면이 오페라처럼 진행이 되요. 제가 영화를 보면서 이만큼 충격을 받은 건 두번째입니다. 첫번째는 영화 "호빗" - 48프레임 3D 비주얼을 봤을 때였습니다. 이제까지 이런 시각적 쇼크를 겪어본 적이 없다. 피터잭슨 감독은 지금까지의 영화가 아닌 다른 뭔가를 느끼게 해주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맥스 4"에서 영화 그 자체의 본령을 보여준 것 같네요. 


제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장면은 검푸른 소금뻘에서 막대기에 지탱하여 걷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맥스네 일행이 아니고, 거기서 거주하는 것같이 보이던, 반쯤은 학처럼 보이고 반쯤은 인간으로 보이던 거주민들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맥스가 사막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소금뻘에서 뭔가를 잡아먹고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요. 마지막 부분에 물 나오기를 기다리던 군중들의 모습과 함께, 어디서나 사람 목숨이 모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사는 현재의 지구를 지구본 들여다보듯이 보다가, 지구 여기 저기의 조그만 지옥을 두 세군데 정도 합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요? 컬트, 강간, 사육, 납치, 부족한 자원. 60년 전에 한반도도 이런 모양이었죠. 제가 어렸을 때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듣던 전쟁이 이랬습니다. 피난통에 아기를 길바닥에 버려두고 가는 일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예쁜 아기가 버려져 있어서 주워오려고 하니까, 부모님들이 야단을 치면서, 남들은 자식을 버리면서도 살려고 하는데 너는 남의 자식을 데려오려고 하느냐고 소리를 들었다고요. 작년에 '보코하람'에게 납치되었던 나이지리아의 여학생들도 생각나구요. 어린 시절에 납치되어서 감금당한 상태로 아이를 낳고 갇혀 있다가 재작년에 클리블랜드에서 구출되었던 아만다 베리씨의 이야기도 생각나더군요. 제 윗 세대만 해도 강간당해서 결혼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어요. 부잣집 양아치 도련님에게 기차간에서 강간당해서 결혼한 여학생, 선보러 나갔다가 납치당해서 피범벅이 되도록 강간당하고 결혼한 여대생, 깡패에게 강간당해서 결혼한 미장원 아가씨. 여간해서는 잘 전해지지 않지만 나이먹고 술 한 잔 나눌 수 있는 때가 되면 언뜻언뜻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 


젊은 남자들이 워보이로서 목숨을 버리는 장면들도 현실을 생각나게 했어요. 석유를 위한 이라크 전쟁에서 앳된 젊은이들이 죽어가던 것도 생각나고. 1, 2차 세계대전에서 죽어가던 젊은이들을 찍은 기록사진들, 그 깨끗한 목덜미가 생각났지요. 눅스 역으로 니콜라스 홀트가 캐스팅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예요. 그 맑고 파란 눈동자가 아니면, 미친 놈에서 가련한 청년까지 단숨에 넘나드는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한 두 번쯤은 다시 보라면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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