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2015.05.21 11:05

말하는작은개 조회 수:1289

살인자. 욕설주의.


오늘 무서운 꿈에 놀라며 새벽 5시에 깨어났어요. 꿈에서 저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3인칭 시점으로 따돌림받는 어떤 아이를 보고 있었죠. 고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의 소녀였는데 독해보이면서, 우울해보이기도 하고, 신비로워보이기도 한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아이였어요. 그녀는 아웃사이더였는데 꿈에서, 저는 그녀의 뒤에서 둥둥 떠다니며 그녀가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었죠. 그녀는 왕따를 당했어요. 급식시간이 되어 급식실에 들어가면 그녀의 걸음에 맞춰 홍해가 갈라지듯이 아이들이 싫은 내색을 보이며 피했어요. 왜 그런가 했어요.  그녀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 전혀 상관하지 않는듯 했어요. 풋풋한 소녀미를 풍기며 식판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맛있게 밥을 먹었죠. 아주 당당하게요.


알고보니 그녀가 따돌림당했던 이유는... 사고방식이나 행동거지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기 때문이였어요. 사람이 아니고 귀신이 현신한 것 같다고 할까? 그곳은 남녀공학이 아니고 여자아이들만 다니는 여학교였는데 밖에서 남자를 만나 종종 임신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친구들은 배가 부르기 전에 낙태를 해서 아이를 지우려고 했는데... 그 친구들이 낙태를 하거나, 했거나, 하려고 하는 것을 그녀가 알게 됐어요. 보통은, 친구가 낙태를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보통은 걱정해주잖아요? 그녀는 소식을 듣자 낙태를 하는 것을 매우 환영하면서 박수를 짝짝 치며 환한 웃음을 지었어요. 브라보! 를 외치면서. 마치 친구가 서울대에 합격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기뻐하면서 말이죠.


그것도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건 그 다음이였어요. 낙태를 하고 돌아온 아이들을 향해 비난을 하는 거였죠. 이 살인자! 살인자 년아! 이러면서 깔깔대며 뒤에서 과자나 지우개가루같은것을 던졌던 거 같아요. 그전에 기뻐했던 것이랑 앞뒤가 안맞는 행동인데.... 물론 낙태가 대한민국에선 현재 불법이죠. 그런데, 특히 괴이했던 점이, 그녀가 그 모든 상황속에서 박수를 치며 흥겨워하는데, 즐거워하는 지점이 묘하게 사람들을 뜨악하게 만드는 지점에 있어서 이상했던 거 같아요. 마치 최대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그 불편한 반응을 매우 즐거워하는 것 같았죠.


제가 생각나는 예는 이정도인데.. 그녀의 기괴한 행동들이 여러가지 있었어요. 예를 들면 순정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학교에서 기르는 토끼를 죽인다던가, 학교안에서 칼을 손에 쥐고 다닌다던가,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그녀와 친구들이 함께 있었는데 석연찮은 이유로 친구들이 사망했다던가...


학생들은 결국 그녀를 무서워하게 되었어요. 무서움반 혐오스러움반이였지만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공격을 가하면 수많은 군중속에서 특정화되어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할까 무서워 욕을 한다면 멀리서 했는데, 그나마도 그녀에게 새어나갈까 함부로 욕을 못했던 거 같아요. 그녀는 마치 독재자와 같이 굴었어요. 수많은 학생들이 있는 학교 내에서. 그녀의 눈에 띄면 죽여버린다는 식으로 말이죠. 학교라는 세상을, 공포로 통치하고 있던 여성독재자였어요.


그런데 그녀의 기괴스러운 행동은 수백가지가 넘어서, 유명해져서 자서전을 쓸 정도가 되었죠. 그녀의 주변에서 알수없는 이유로 죽어나간 사람도 수백명이였고요.

그녀는 학교의 아이들을 불꺼진 강당에 모아놓고 막 출판된 따끈따끈한 자서전을 발표했어요. 친히 똑부러진 목소리로 자서전에 쓰여진 자신의 행적들을 읽어나갔어요. 아이들 사이에는 마치 선생님이 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듯한 두려움이 깔렸는데 그녀는 그것을 즐기는 듯 했어요. 그녀의 머리통 뒤에서 계속 꿈을 꾸는 내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던 저도 무서웠어요.


그러던 어느 순간이였어요. 그녀는 고개를 뒤로 휙 돌려서 저를 쳐다봤어요. 숨이 멎는 것 같았죠. 설마설마했어요. 여태까지는 꿈이니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스크린 너머의 사람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너무 현실같았던 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알고보니 지금까지 그녀와 저는 "같은 공간"에 숨쉬고 있었던 거였죠. 그녀가 씩 웃으며 말했어요.


너 거기 있었구나?


사실... 제가 그녀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행적의 뒤를 밟았던 이유는 그녀와 제가 하나의 영혼이기 때문이였죠. 그녀와 저는 지금 이렇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같은 영혼을 가진... 아니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르든 뭐든... 다른 생물체로서 서로를 이어주는 끈같은 것을 가진 소울메이트와 같은 관계였던 거에요. 그녀는 사실 저 자신이기도 했던 거에요. 소름이 끼쳤어요. 그녀와 제가 같은 사람이라는게요. 그런 사람과 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요. 진실을 깨닫고 당황하는 저를 보며 그녀는 씩 웃었어요. 그러더니 위협을 했어요.


널 죽여버릴 거야.


널 죽여버릴 거야. 네가 여기서 100문 100답으로 네가 살면서 저지른 잘못들을 모두 고백한다면 용서해줄게? 하지만 고백하지 않는다면 죽여버리겠어.


그녀가 저를 어떻게 죽일지는 상상이 안됐지만 상상을 하는 것도 무서웠어요. 어떻게 될지 몰랐어요. 저는 그녀의 뒤에 딱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죽이려면 저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고개만 돌리면 제가 붙어있었으니까요. 저는 죽음의 공포속에 울며 불며 그 강당에 모인 아이들에게 저의 죄를 고백했어요. 고해성사는 아니었어요. 나의 잘못을 사하여 주세요 가 아니라 자아비판 같은 거였어요. 자신의 영혼을 찢는 행위였죠.


하지만 죄를 고백하면서도 의구심이 들어 모든 죄를 고백하지 않았어요. 사실 이 모든것이 그녀의 장난이 아닐까? 싶은 거였죠. 저를 놀려주기 위한 장난이요. 잘못을 고백하게 해서 망신시키려고 하기 위한 장난이요.


죄의 고백이 끝난뒤 저는 제 추측이 맞다는 것을 알아차렸죠. 제가 불꺼진 강당에서 눈물의 고백을 하는동안, 제 잘못이 카톡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어요. 전국에서 사람들의 손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했어요. 100가지 잘못에 대한 여러가지 소감이나 평들이 제앞으로 도착했죠. 저는 그녀에게 화를 냈어요.


왜 이런 짓을 한거야? 강당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 아니었어? 너는 나를 애초에 죽일 생각이 없었지?

글쎄... 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건 모르는 일이야.


그녀는 저를 비웃으며 말했어요.


더이상 그녀가 무섭지는 않았어요. 무서움이 많이 덜해져서 적당히 관음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곤 화들짝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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