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2 22:43
격조했습니다(?)
이만큼 자랐습니다.
아직 17개월 갓 넘었을 뿐이지만 이제 슬슬 아가가 아닌 어린이의 비주얼에 근접해가고 있죠.
돌 지나도록 못 걸어서 과연 걷기는 할 것인가... 싶었던 게 무색하게 혼자서 두 발로 발발대며 잘 돌아다니구요.
거실에 냅두고 설거지하고 있을 때 다다다다 달려와서 다리에 폭 하고 안기는 맛이 아주... (표현 왜 이래;;)
그런만큼 가만히 있으려 하질 않고 자꾸 집 밖으로 나가자고 떼를 써서 놀아주기가 2배 피곤해진 기분이 있긴 합니다만.
크면 클 수록 늘어가는 재롱에 그냥 허허허 즐거워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
그리고 요즘 육아 재미에 한 가지 포인트가 되어주는 게 있으니 바로 제 어머니께서 보내주시는 사진들입니다.
두둥. ㅋㅋㅋ (입가에 묻은 건 체리입니다. 놀라지 마시길. ^^;)
애 엄마가 휴직을 끝내고 다시 출근하게될 때, 누구에게 아기를 맡겨야 하는지 한동안 아주 고민이었거든요.
친정 어머니는 건강 문제로 불가능하시고. 제 어머니께 맡기면 애 엄마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육아 도우미를 쓰자...
라고 고민하는 와중에 그걸 눈치채고 불호령을 내리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직 크지도 않은 갓난 아가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기냐며 (혹시나 오해하시는 분 있을까봐 덧붙입니다만, 그냥 제 어머니 생각일 뿐입니다.) 당장 근처로 이사오라고(!!?).
그래서 시키는대로 이사를 갔고 결국 어머니께서 애를 봐주시게 되었죠.
근데 이 양반에게 '내가 찍어 보내는 아기 사진을 크고 선명하게 보시라'고 사드린 스마트폰이 이 때부터 의외의 활약을 하게 되니,
어머니께서 매일매일 애 보다가 틈틈이 사진을 찍어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보내주시는 겁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제 어머니께선 평생 카메라 셔터 몇 번 눌러본 적 없으시고, 스마트폰은 커녕 피쳐폰도 문자 메시지 확인을 못 하시던 그런 분이거든요.
손주에 대한 사랑 하나로 일생 유지한 라이프 스타일을 이렇게 간단히 바꿔 버리시는 걸 보면서 참 제가 장가 늦게 가고 애를 늦게 가진 게 결과적으로 부모님껜 엄청난 스트레스였구나... 라는 걸 깨닫습니다. 하지만 뭐. 결국 내 인생입니다만? <-
암튼.
이 할머니의 사진들은 재밌는 게, 참으로 자비심이 없습니다. ㅋㅋ
이렇게 초점 나가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애 입가에 침방울이 거대하게 맺히다 못 해 흘러내려도
구도가 이상해도
유난히 다리가 짧아 보여도
표정이 바보 같아도(...)
아침에 눈 뜨고 얼굴이 팅팅 부어 있어도 아무 상관 없죠.
왜냐면 할머니 눈엔 그냥 다 예쁘기만 하거든요. ㅋㅋㅋ
게다가 이런 미래를 예측하지 못 했기에 제가 부모님께 해드린 핸드폰은 '카메라 따윈 장식일 뿐이죠!'로 유명한 LG 옵티머스 G-pro... orz
이것저것 일상을 시시콜콜하게 다 찍으시지만 아무래도 가장 많이 찍으시는 사진은
밥 먹는 사진입니다.
아무래도 세대가 세대이다 보니 제 어머니께서 가장 신경쓰고 애쓰시는 게 식사거든요.
일생은 가족, 친지, 손주들 뭐 해 먹이고 살 오르는(...) 걸 구경하는 재미와 보람으로 사신 분이라 아들놈에게도 자비심이 없습니다. ㅋㅋ
먹고.
또 먹고.
계속 먹고.
그냥 먹고...
어쩌다 하루 종일 애가 밥 안 먹는다고 떼를 쓴 날엔 사진도 안 옵니다. ㅋㅋ
밥 먹는 사진은 디폴트. 애가 밥 잘 먹으면 힘이 나서 노는 사진도 여러 장 찍어 보내주시고 그러죠.
이렇게 놀이터에서 왕따놀이하는 사진이라든가.
피아노 치는 사진. (폼 하나는 그럭저럭... ㅋ)
사촌 형들 따라 공부하는 '척' 하는 사진.
입이 비죽 나와서 밖에 나가자고 시위하는 사진 등등.
근데 한참을, 몇 개월간 이렇게 어머니께서 찍어 보내주시는 사진들을 보다 보니 느껴지는 게.
이 분이 저보다 사진을 한참 더 잘 찍으신다는 겁니다. -_-;;
어차피 저 같은 사람이 사진 작가를 할 것도 아니고 전시회를 할 것도 아니고.
결국 이런 일상 스냅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분위기와 생동감, 그 안에서 풍기는 감정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머니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아들놈이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을 때의 표정, 감정, 분위기 같은 게 그대로 느껴집니다.
제가 돈x랄로 구입한 비싼 카메라로 열심히 머리 굴려 찍어도 안 되는 그런 분위기가 어머니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느껴져요.
그리고 뭣보다도 제 아들놈에 대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느껴져서 아들 입장에선 뭉클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사진에서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물론 제 어머니를 모르는 이 곳 분들께서 보시기에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ㅋㅋㅋ
암튼 뭐 그렇습니다.
거창한 말 다 집어 치우고 어머니께서 정말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 아들놈 크는 거 다 보시고 이렇게 베푸시는 사랑, 많이 보답받은 후에 정말 천천히, 행복하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얼굴이 아아아주 살짝 드러나긴 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 겠죠?
라고 적어 놓고 시간 좀 지나면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암튼 울 엄니께서 만수무강하시길 빌 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효도하려고 애를 써봐야겠어요. orz
2015.06.02 23:00
2015.06.02 23:12
저도 한때 조카를 수염나기 전까지 덕질(...)했던 이모지만, 손주에 대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덕심은 참으로 모든 걸 가능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들은 손주가 아무리 이뻐도 자라면서 지 엄마(당신의 딸)를 너무 힘들게 애를 먹이면 속상해하시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내리사랑도 맞지만 또 한편으론 고생하는 아이엄마에 대해 여전히 엄마의 마음을 갖고 계신지라. 사람 마음이 '한 다리 건너 천리'라고 중얼거리곤 하시더군요.
2015.06.03 00:04
스크롤 내릴수록 함박웃음 짓게 되네요 하하.
아기 너무 이쁘게 잘 크고 있군요. 할머니가 찍은 손주 사진에 애정이 깊게 담긴 느낌이라 더욱 좋아요.
하 마지막 사진....정말 좋아요ㅜ
2015.06.03 00:10
오, 첫 번째 사진 보자마자 차갑고 까칠한 도시 소년의 표정에 사로잡혔어요.
그런데 바로 다음 사진에서 순식간에 농촌 총각의 표정으로 변하는군요. ^^
(저런 표정은 아무한테나 보여주는 게 아닐 텐데 손주도 할머니를 참 좋아하나 봐요.)
뒤에서 안아주는 마지막 사진은 할머니의 일편단심 사랑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싸르르하네요.
2015.06.03 01:29
2015.06.03 08:42
잘 먹고 잘 자라고 있네요. 특히 잘 먹는것 부럽습니다. ㅠ.ㅠ
마지막 사진이랑 왕따 놀이 사진이 특히 좋은 것 같아요. ㅎㅎㅎ
2015.06.03 09:09
아유 뽈롱한 볼살 하며 눈 하며 튀어나온 뒤통수 하며,고루고루 귀엽고 영리하게 생겼어요.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실듯.
2015.06.03 09:44
2015.06.03 10:39
세호/ 저희 아버지도 몇 년간 우울하던 인생에 꽃이 피었다고 할 정도로 큰 변화를 겪으셨... 으나 그게 또 시간이 지나니 약빨이 서서히 떨어지는 게 보이더라구요. 하하. 결국 저희 집에선 할머니가 최고입니다. ^^;
효도에 대한 말씀은 새겨 들을 구석이 있군요. 흠... 그렇네요. 굳이 저까지 효도를 할 필요가!!!?
spooky/ 아아 수염... orz
제 장모님도 비슷하셨어요. 처음에는 애는 하나도 안 예쁘고 그냥 딸 고생하니까 도와야지. 라는 마음으로 저희 집에 오시다가 애가 좀 자라서 애교를 떨기 시작하니 딸>손주에서 딸<손주로 역전 현상이 일어나더라구요. 요즘엔 그냥 손주 보려 오셔서 손주 보고 가십니다. ㅋㅋ
보름달/ 정말 그냥 사진인데도 보다보면 애정이 팍팍 느껴지고 드러나는 게 신기하더라구요. 이런 게 순수한 감정의 힘인가... 라는 오골오골한 생각까지 해 보게 됩니다.
underground/ 첫 번째 사진이 제가 찍은 사진이고 두 번째 부터가 어머니 사진이죠. 결국 실상은 농촌 총각에 가깝습니다. ㅋㅋㅋ
네. 아들놈도 할머니를 참 좋아해서 제 입장에선 정말 좋습니다. 원래 아들에겐 제가 압도적인 1위였는데 요즘 슬슬 위협받고 있어요. 하하.
은밀한 생/ 본인의 복 받은 팔자도 모르고 밥 안 먹겠다고 떼를 쓸 땐 참 화도 납니다만. 얘가 뭘 알겠냐... 라고 생각하며 참곤 하지요. ^^;
신비로운 건 모르겠으나 눈이 커서 사진으로 잘 조작하면 잘 생겼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 그럽니다. 하하. 하지만 나이 먹으면 느끼해질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가라/ 사실은 전혀 잘 먹지 않습니다. 저 사진들이 잘 먹을 때 찍은 사진들일 뿐이죠. 입이 짧아서 살도 잘 안 붙고 어머니 고생이 심해요. ㅠㅜ
저도 마지막 사진은 제가 찍어 놓고 스스로 감탄했습니... (쿨럭;)
보리/ '요즘 사는 낙이 이 녀석 하나 뿐이다' 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하지요. 영리한 건 아니지는 않은 것 같긴 한데 겁이 참 많아서 웃겨요. 하하.
golondrina/ 아이고 저런... 힘드시겠어요. ㅠㅜ 저도 주변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보고 들어서 제가 참 운이 좋다 싶고 어머니께 감사한 마음도 커지고 그렇습니다. 그래도 어린이집 일찍 가면 사회성 발달이라든가 오히려 좋은 점도 많다고 하니 너무 걱정 마시길. 글 좋게 보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06.03 18:55
너무 예쁘게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군요 ㅠ_ㅠ... 로이배티님 어머님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만수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저도 빨리 제 부모님께 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ㅠ_ㅠ... (하지만 어느 세월에)
2015.06.04 13:22
하지만 부모님들께 손주를 안겨 드렸을 때 마냥 기뻐하시는 것만은 아니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ㅋㅋ
아기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하고 어머니 만수무강 빌어주셔서 감사해요!!
저희 장인장모님을 보면서도 느끼는건데 손주에 대한 조부모님들의 사랑이란건 정말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거 같습니다. 장모님이야 당연히 아이를 예뻐하고 사랑하실거라 생각했지만 장인어른이 보이시는 반응이 그정도 일줄은... 정말이지 '우리 장인어른이 달라졌어요'에 나가셔야 할 정도로 제가 알던 그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시더군요 (그분이 웃으시는걸 아이 태어나고 첨 봤습니다)
단, 저는 로샘님과는 달리 효도를 더 할 생각은 안하는데... 그냥 아들녀석이 저 대신 잘 하고 있어서 말입니다...쿨럭쿨럭 (리모콘 효도가 최곱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