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0 17:49
핸드폰에서 팝콘 튀는 소리가 난다. 순간 내 심장도 그 존재를 느낄 정도로 살짝 더 뛰고, 입가에 숨길 수 없이 미소를 짓는다. 핸드폰을 보기도 전에 누가 메시지를 보냈는 지 알고 있다. 이 소리가 나는 엡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건 S 뿐이니까. 메시지를 보기도 전에 어떤 내용인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하다.
....
이 글에 S는 제가 예전에 쓴 비행기 늦어져서 만난 친구 입니다. 처음에 글쓸때 그의 중국이름의 이니셜인 Y라고 했는데, 제가 중국이름 발음 하는 걸 듣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 그냥 그의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했어요.
그는 나와는 달리 articulate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외국어여서인지 그 사람의 성격때문인지 알수 없지만, 늘 간단하다. 화려한 언어, 긴 문장이 아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 행복합니다 가 그가 내게 하는 감정 표현 전부이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한번은 아직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살았을 때, 금요일에 우리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던 거 같은 데 그때 전등 갈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걸 잊어버렸다. 그리고 일요일, 미안하지만, 전등을 갈아 줄 수 있냐고, 저녁때 올래요? 라고 문자를 보내자 그의 답은, 저녁 전 혹은 저녁 뒤에 가겠습니다 이었다. 읽으면서 갸웃거리고 있을 때 온 다음 문자는, 나를 위해 또 저녁하지 말아요. 당신도 일을 하는 사람인데, 내 생각에 당신은 주말에 더 쉬어야 해요 였다. 내가 음, 공장에서 만들어진 만두를 먹는다면요? 라고 문자를 보내자 그러면 저녁먹을 시간에 오겠다고 웃는 얼굴의 스마일리와 함께 답변을 보냈다.
어느 날 시내에서 점심먹고 돌아다닐때 내가 초밥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자 그가 다음에는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 순간 정말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그 다음이 정말로 올거란 생각이, 우리 둘이 그 다음을 만들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남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 관계가 지금의 형태가 되기 전에 그는 내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내가 원하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내가 원한다는 것은 확신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건 이것이 당신에게 올바른 행동인가 입니다 라고 말했다. 내가 만난 그 어떤 남자들 보다, 나 보다도, 어린 그는 그 누구보다 어른이다.
우리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자신에게 정직하고 올바르다 믿는 결정을 내리는 습관을 지닌 사람이라고 믿고, 가볍게 나를 상처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이들이 만든 상처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이 내 마음에 자리잡을 때 그 믿음대로 그를 대할려고 노력한다. 나는 지난 경험으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경험이 될 수 있는 지,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지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를 상처줄 수 없을 정도로만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한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에는 무게가 있고, 무게가 있는 관계는 기쁨을 주는 만큼 상처도 줄 수 있다. 바보같은 짓인 지 모르겠지만, 보장된 평온과 불확실한 기쁨 사이에서 난 조심스레 마음이 가는대로 놓아두고 있다.
…..
‘나 스웨덴에 있어요. 지금 기차탔습니다. 피곤해요. 당신은 어때요? ’
2015.08.10 17:56
2015.08.10 17:59
Dito!
2015.08.10 17:59
아주 어른 같아요 어른이 되는게 꼭 좋을까 꼭은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2015.08.10 20:00
좋은 의미의 어른이요 :)
2015.08.10 18:56
2015.08.10 20:08
이제 겨우 시작인걸요. 아름다운 관계가 되도록 노력합니다
2015.08.10 19:14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유려한 수사와 뉘앙스를 내것처럼 부릴 수 없다는 것이 어쩌면 더 정직한 내 속내를 알게 하는 체험이었다고 했던 목수정의 글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외국어로 말할 때 사람들은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진실해지는 것 같아요. 두 분의 조심스러운 속마음이 서로를 따뜻하게 만났으면 합니다.
2015.08.10 20:21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대화 할 때 가끔 삐꺽거리기도 하죠. 저는 그러면 굉장히 많이 길게 설명하려는 타입인데 S는 근본적인 것을 묻고 말하고 그러고 나면 서로를 믿자 입니다. 본인의 선의를 믿듯이 저의 선의도 믿어줍니다. 굉장한 위안이에요.
2015.08.10 20:08
단편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네요. 그런데 현실이라니, 제가 다 두근거려요!
2015.08.10 20:21
감사합니다. :)
2015.08.10 20:53
2015.08.10 21:10
저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란 칭찬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저 자신을 아는데요....
2015.08.11 00:25
2015.08.11 16:11
감사합니다. 지금은 화요일 아침 직장입니다. 아직은 한가한 주에요.
2015.08.11 09:06
괜히 흐뭇하네요.
2015.08.11 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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