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는 어제 봤고 오늘 간단하게 뭐라도 적어볼까... 하는데 마침 듀나님께서 리뷰를 올리셨더라구요.

읽어봤더니 제가 하고픈 얘긴 거의 다 들어 있고 심지어... 라기 보단 당연히도 저보다 잘 적으셔서 글을 쓸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어차피 내 글은 바이트 낭비니까. 라는 마음으로... ㅋㅋ


일단 이 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감상 포인트-_-를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다들 아시다시피(?) 대단히 못 만든 영화입니다만. 어쩔 수 없이 (감독 본인의 능력 부족과 예산의 한계 등등) 못 만든 부분과 일부러 못 만든 부분이 와장창창 뒤섞여 있어서 분간이 안 된다는 게 매력 포인트입니다. 고로 될 수 있으면 감독 인터뷰나 기타 영화 제작에 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해두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배우의 발연기(인터넷에서 레전드급으로 칭송받는 발연기 배우들을 몽땅 모아 놓아도 이 분에게 대적할 순 없습니다!) 가 너무나도 황홀해서 '혹시 저 분 xx xxx 아냐? ㅋㅋ' 이러면서 봤는데 방금 아래 로즈마리님께서 링크해 주신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맞는 것 같더라구요. ㅋㅋㅋ


그리고 정말로 정말로 진실로 참으로 혼자 봐선 안 되는 영화입니다. iptv VOD로 출시되어 있긴 한데, 그래도 보시려면 가족 친지 친구 누구라도 불러다 놓고 함께 보세요. 깔깔대고 함께 비웃(...)으며 볼 여건이 안 된다면 그냥 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혹시라도 혼자 보게 된다면 친구에게 전화라도 하세요. "야, 나 지금 공포 영화 보는 중인데 주인공이 10분째 요리하고 있엌ㅋㅋㅋㅋ" 라고 누군가에게 한 마디라도 해 줄 수 있어야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괴작 영화, 자타공인 엄청 못 만든 영화를 일부러 즐기는 취미가 없으시다면 그냥 스킵하시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전 듀나님 리뷰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고사' 1편을 극장가서 보고 만족했던 사람입니...

(리뷰는 여기 있습니다. http://www.djuna.kr/movies/gosa.html )



암튼 이제 소감을 간단히 적자면.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는 없지만 (그런 게 있을 수도 없습니다) 이 영화가 웃기는 포인트들에 대한 얘기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건 어쩌면 스포일러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 초반 30분은 정말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봤는데 중간엔 좀 늘어지더라구요. 아무래도 중학교 학예회에서 방송반 애들이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틀 것 같은 스토리로 90분을 버티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래서 그렇게 밥을 열심히 먹고 청소를 오래하며 김장까지 하는 것 같습니다;) 반복이 심해서 지루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인공과 귀신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지는 끝부분은 중반보단 낫구요. 하지만 역시 가장 재밌었던 건 초반이었습니다. 대학생 때 영화 공부해 보겠답시고 열심히 고전 아트하우스 영화들 구해다 보며 졸음과 싸우던 추억들이 막 떠오르더라구요. 상영 시간 동안 집 청소가 10분이고 요리 한 번 하면 요리 과정 부터 다 먹고 커피 한 잔 하는 모습까지 다 보여주고 그러는 동안 정말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ㅋㅋ 이게 권위 있는 예술 영화였다면 그런 걸 보면서도 롱테이크니 소격 효과니 뭐니 떠올리면서  '혹시 이것은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기 위한 예술적 결단이 아닐까!' 같은 고민 같은 걸 해야 했겠지만 이건 그딴 거 없이 걍 웃어 버리면 되니까 참 좋더라구요. 하하. 특히 장시간(대략 10여분)에 걸친 샌드위치 식사를 마친 주인공이 '사람 사는 낙 중에 먹는 즐거움이 최고지!' 라는 대사를 치는 순간 마룻바닥을 굴렀습니다. ㅠㅜ


- 주인공 아줌마의 귀신에 대한 반응도 너무 웃겨요.


귀신 출현 ->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소리 지르며 지하부터 4층까지 계단 질주 -> 아니, 내가 뭘 잘못 본 거겠지. 밥이나 먹자. -> 아냐 내가 잘못 본 걸리가 없어! 난 귀신이 무섭지 않아! 덤벼라 귀신아! -> 귀신 출현 -> 꺄아아아아아아아!! 라고 소리 지르며... 이 패턴의 무한 반복입니다만. (근데 사실 '무한'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귀신이 많이 나오지도 않습니다. 아줌마가 밥 먹고 청소하느라 바쁘셔서. ㅠㅜ) 이걸 한 번 보면 그냥 피식하고 말겠는데 세 번 네 번 반복을 하니 훌륭한 유머가 되더라구요. ㅋㅋㅋ


- 또 빼놓을 수 없는 게 주인공 배우의 연기죠.

일단 위에도 적었듯이 못 합니다. 그냥 못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놀라울 정도로 못 해서 왠지 프로 배우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암튼 그렇게 못 하는 와중에 대사들이 상당히 어색한 문어체라서 결과적으로 웃음을 자아 냅니다만. 80년대나 90년대 초반까지는 실제로 극장용 영화들에서 멀쩡한 배우들이 그런 말투와 그런 톤으로 대사를 쳤다는 게 문득 떠오르면서 생각이 복잡해지더라구요. 과연 이건 감독이 사람들 웃기자고 잡은 설정인지. 아님 90년대 중반에 끊긴 본인의 경력 탓에 아직도 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정서 때문인 건지. 혹은 그런 자신의 뒤쳐짐을 개그로 승화 시킨 것인지. 

근데 뭐 어쨌거나 전 웃었으니 됐구요. ㅋㅋ


- 주인공 아줌마가 영화 내내 하도 청소나 요리를 열심히 해서 같이 보던 가족분께서 '감독이 배우 착취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는데. 착취라기 보단 걍 청소 열심히 하는 건 빌린 장소에서 영화를 찍다 보니 깨끗하게 청소해서 돌려주려고. 그리고 요리 열심히 하는 건 감독이랑 둘이 식사는 해야 하니까 그런 것 같았습니다... 라고 적고 보니 착취 맞네요. 아아 눈물이. ㅠㅜ


- 초반의 '못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풍으로 웃기기'는 제게 정말 잘 먹혔는데, 막판 귀신과 대결씬에서 튀어나오는 '그냥 대놓고 웃기기'는 좀 그냥 그랬습니다. 어쩌면 그게 양병간 감독의 한계일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구요. 그게 분명히 90년대 초였다면 사람들이 아주 좋아할 법한 개그 코드인데. 아무래도 지금 보기엔 너무 낡았더라구요.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스타일의 개그라 웃긴 웃었구요. ㅋㅋ


-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성실하게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주인공에게 자꾸 귀신이 달라붙자 주인공이 짜증을 내며 '아니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이제 좀 쉬어보려는데!!!' 라며 화를 내는 장면이었습니다. 난데 없이 감정 이입 200%(...)


- 근데 의외로 꽤 괜찮은 호러 장면이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나오긴 했습니다. 워낙 낄낄대고 웃던 중이고 엄청 짧게 지나가 버려서 진짜로 무서움을 느끼진 않았지만 장면 자체는 꽤 괜찮았어요.


- 촬영 장비들이 궁금해지더군요. 4000원짜리 HD 화질로 봤는데 조금만 어두워져도 픽셀이 막 뭉개지고(...) 그냥 1080p 촬영 되는 핸드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은 화면들이었거든요.


- 주인공이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 보겠다며 소설책을 읽는 장면이 나옵니다. 역시나 필요 이상으로 길게 읽어서 웃기는 장면인데 심지어 글 내용도 웃겨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지구가 돌고 있단 얘길 했더니 아버지께서 개소리하지 말라고,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붙어서 밥 먹고 노냐며 야단치셨다. 나중에 돌아가시던 날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 날 얘길 하며 내가 무식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셨다' 는 내용이었는데. 실제로 있는 소설일까요? 혹시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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