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걸스가 ‘밴드’로, 그것도 ‘진짜 밴드’로 컴백한다는 보도자료가 돌고, 또 소속사가 선공개 영상을 통해 ‘우리 의외로 꽤 한다’는 걸 보여준 상황에서 비평가들이 이들에게 ‘전문가 수준’의 밴드 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 대한 비난도 맞고요. 밴드라기엔 악기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 밴드라면서 사실상 악기는 댄스 음악 안무의 소품 정도로 보인다, 밴드라면서 음악이 밴드 음악이 아니다…이 중 어느것하나 반박할 수 있는 게, 사실은 없어요. 적어도 저는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거’까지 어쩔 수는 없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까지 뭐라고 하는 건 너무 가혹하죠. 만약 ‘밴드로서 함량 미달이니 그들은 인기를 얻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그 평론가는 멍청입니다. 비평가로서의 월권이고요.

 

제가 느끼는 이 ‘호감’은 저 스스로도 사실 좀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제가 호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이들이 비판받는 부분과 거의 맞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악기를 거의 무대에서 허우적대는 수준으로 다루는 모습이 좋고, 악기를 댄스 음악의 소품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좋고, 밴드 음악이든 아니든 그냥 노래가 마음에 들어요.

 

거듭 적지만 이들은 ‘아직’실력자들은 아닙니다. 방송 첫 무대 전에 기자들을 모아두고 그들이 보여준 공연은, ‘저희가 너무 긴장되서…’라는 부연설명이 필요한 수준이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보여준 공연은 ‘남들 앞에서 악기를 연주해본 적이 없어서…’라는 변명이 필요한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리더 예은이 각각의 공연 후에 그런 말을 하기도 했고요. 뭐 그게 정말 부연설명이나 변명을 할 의도로 한 말인가는 또 다른 토론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하지만 자신의 능력 밖의 것임이 명백히 보임에도 애를 애를 쓰는 그 모습 자체가 저는 좋게 보입니다. 단호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은, 이들이 비록 능력은 모자랄지언정 ‘밴드’라는 콘셉트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정말로 악기 연습을 아주 많이 했고, 단기간 연습한 것 치곤 꽤 하는데다, 이런저런 한계 속에서 ‘밴드’라는 정체성을 잡으려 애쓰는 게 보여요. 음악적 변화가 크게 필요한 시기이고, 특히 ‘고인걸스’라는 조롱섞인 말이 돌 정도로 쇄신의 필요성이 간절했던 상황에서 이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도전’이고, 그 앞에 이른바 ‘전문가 기준’을 갖다댈만큼 저는 예쁘고 성실한 아가씨들한테 모질지를 못해요.

 

저게 악기냐, 안무 소품이지. 하는 비난도 마찬가지. 심지어 팬들조차 ‘악기 치워라 의미없다’는 말을 하는 판인데, 전 이것도 마음에 들어요. 일단 악기 때문에 동선이 크게 제한되는 것은 맞습니다만 팔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정도 안무를 만들어낸 것 역시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몇몇 안무 동작들은 동작의 제한 덕에 도리어 창의성을 획득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뭣보다 ‘아이돌 미모’의 여성이 드럼을 치면서 랩을 하는 거, 적어도 저는 처음 봤습니다. 엄청 신기했어요. 아 물론 드럼치면서 보컬도 하고 랩도 하고 다 하기야 하죠. 하지만 ‘유빈’이잖아요.

 

거듭 적지만 이건 원더걸스 ‘쉴드’가 아닙니다. 다만 인정할 거 다 인정해도 그 안에 나름의 ‘좋은 것’들이 있다는 이야기. 밴드 컨셉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거란 그들의 말이 밴드로서의 그들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남깁니다. 계속 봤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진짜 밴드다운 밴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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