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8 08:08
1. 이번 추석에 저는 친정을 가지 않았습니다. 친정어머니께서 심한 눈병에 걸려 감염을 걱정한 나머지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말 엄마 혼자서 연휴를 보내고 계십니다.
지난번 시아버님이 암수술하셨을때는 시댁 4형제가 몇달간 총출동했는데
비슷한 시기 제 친정어머니께서 수술하셨을때는 친정어머니께서 숨기시는 바람에 제 형제들은 끝까지 모를뻔 했습니다.
시댁에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제 친정으로 간다고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애들은 외할머니댁에 간다고 알고있다가 집으로 오니 어리둥절해합니다.
아직 엄마와 아빠의 양가 사이에 낀 '정치 공학'을 이해하기에는 어립니다. 기밀누설의 위험도 있고요.
2. 처음 시댁에서 명절에 며느리로써의 도리를 하게 되었을때
"이 사람들이 나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애정을 인질로 나를 길들이려 하는구나!" 싶어서 (차마 육두문자 섞인 원본 내용은 못쓰겠군요)
분노에 잠을 못이루었는데
이제는 시엄니께서 기억력 감퇴로 우울해하시니
큰동서랑 저도 예전만큼 기억력이 좋지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드리며 저는 외로워하지 마시라고 위로해드립니다. 차례/제사 준비도 곧잘 하고요.
네 그들이 승리한 겁니다.
시엄니때문에 출산 후 "내 아들을 뺏어간다"는 정신병까지 걸렸던 친구와 장어구이로 점심을 먹는데 맛있다며 시엄니께 사드리고 싶다하더군요.
사는게 다 그렇지요...
3. 친정에서는 제사 문제로 구순의 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큰며느리들 간에 고성이 오가고 있습니다.
내가 90이 되어, 나를 받들던 사람들이 더이상 내 의견에 따르지 않고 나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얘기들을 해올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싶습니다.
지금은 젊고 머리도 잘 돌아가고 신문도 읽고 요즘책도 읽으니 요즘 애들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노안이 와서 책도 신문도 스마트폰도 보기 힘들어지면 어떤 가치를 부여잡고 살아야하나 싶습니다.
불변의 가치가 있을까요 그런 가치를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인정해줄까요
2015.09.28 08:40
2015.09.29 03:16
저도 '부모님에게서 배운 것 + 내가 터득한 것'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데 부처님 손바닥인 것 같고..
이런 생각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제 자식에게 뭘 요구할 수도 없구요.. 그렇습니다. 허허허
2015.09.28 09:07
음... 말씀하신 걸 보니 저희 아버지의 결정이 새삼 놀랍네요. 얼마 전에 말씀하시더라구요. 나 죽거든 제사도 차례도 지내지 말라고요 (무교세요) 그냥 다같이 모여서 너희들 먹고싶은 거 사먹든 해먹든 하고 상차려놓고 절하고 하는 그 예식같은 거, 다들 힘들고 번거롭기만 한 전붙이기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나이 들어갈수록 자신이 생각하는 게 무조건 진리라는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야 할 것 같아요.
2015.09.29 03:18
네 그런 것 같아요. 나를 그들이 하찮게 생각하고 대할 수 있다는 것도 담담히 받아들여야하다니 슬프긴 하지만요.. ㅠ ㅠ
2015.09.28 11:04
2015.09.29 03:24
네 맞아요. 모순적이죠. 그들에게 능력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 폭력이겠죠.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렇게 싫은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저는 지금은 무엇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어야한다고 생각해서 오냐오냐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나이들어 자기방어적이 되고 쓸데없는 것들을 움켜쥐고 놓지않을까봐 걱정이 되지만.. 할 수 없죠. 그때의 저를 지금의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허허허 저도 웃어봅니다.
2015.09.28 11:18
그때가 되도 사는게 다 그렇지요.
2015.09.29 03:26
네 사는게 다 그렇지요.
왜 사냐건 웃지요. 허허허허
왜 고등학교때는 그 시의 그 귀절이 얼마나 인생을 대표하는 것인지 몰랐는지 그저 외우기만 급급했다죠.
2015.09.28 14:00
저에게는 이제 할머니 한 분이 남아계십니다.
잔소리를 하고 걱정을 하고 면박을 주고 하는 게 할머니의 몫이죠.
그리고 할머니의 잔소리는 엄청나서 다들 앞에서는 알겠다고 하지만, 뒤에서는 무시합니다.
노인이 경험한 세상의 법칙과 내 현실의 상황이 당장에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할머니에게 어설피 교회에 대해 얘기했을때,
당신은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왜냐면 교회를 다니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돈 내는 거 때문에요? 그도 그렇지. 가서 가족들 잘 해달라고 해요?
그런거만 하면 쓰나. 세계에 평화도 빌어야지. 보통 힘든게 아녀.
보이는 것은 변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2015.09.29 03:35
제게 할머니는 생각만해도 눈물이 나는 존재인데 '잔소리하고 걱정하고 면박 주고'이런 모습을 뵙기 전에 돌아가셔서일지도 모르죠.
지금 작은 할아버지가 그런 존재이십니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젊었을때 자식들, 조카들에게 잘했던 것도 이제는 약발이 떨어져가고
남은것은 며느리의 희생에 대한 요구 뿐이죠. 에효.
네 맞습니다.
제가 엄마와 할아버지를 이해하는 것도 사람들을 관통하는 뭔가, 변하지 않는게 있기 때문이겠죠.
생각, 감정은 변하지 않더라도 행동은 변할텐데 행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되는 요즘입니다.
2015.09.28 14:27
2015.09.29 03:47
동의합니다. 저도 무슨 정신적 가치냐 그저 내 품위를 지킬 돈이 있어야지(이건희 수준은 상상이 안되서 패스)하는 생각이 살면서 듭니다.
제 집의 경우 큰며느리는 혼자 사시고 연금을 받으셔서 돈에 아쉽지 않습니다.
그저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거죠.
할아버지께서 돈이 많고 큰며느리가 돈이 없으면 문제가 간단할텐데 할아버지께서는 돈이 없고 큰며느리는 돈이 아쉽지 않습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니..비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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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은 각자 살아온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일 텐데 전쟁과 가난을 겪은 부모님 세대와 저희 세대의 가치관이 다르듯, 저희 세대와 자식 세대의 가치관도 다를 수밖에 없겠죠.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니 저희 세대가 가치관이 다른 부모님 세대를 어떻게 대하나를 보고 그대로 따라할 텐데 후환이 두렵네요. ^^